허상의시대
창조는 없고 카피만 있는 세상
철학은 없고 기교만 나는 세상
양심은 없고 협잡만 삼는 세상
진심은 없고 꾀만 통하는 세상
집단 이기주의가 법이자 진리인 세상
인간은 돈과 허세의 노예
영혼은 가식과 처세의 자동 판매기
넋 나간 머리 얼빠진 마음
모양만 예쁜 빈 깡통
열정은 소멸됐고
감동은 연출된다
욕망의 신기루에 현혹된 이들은
속물을 숭배하고, 쾌락을 탐닉하며
발정 난 개처럼 탐욕의 똥구덩이로 뛰어든다
인정의 우물은 말라 가고
고삐 풀린 욕망, 이기적인 암세포 덩어리는
수 많은 분신들이 발광하는 카니발에 취해 흔들린다
마음의 흉터와 주름은 늘어 가고
위선과 몰염치가 판 친다
허상뿐인 세상
영혼 없는 허상
탐욕뿐인 영혼
아! 시대는 순결을 잃었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현재 세상을 움직이는 게임의 법칙은 선도, 윤리도, 도덕도, 상식도, 정의도, 그 무엇도 아닌 탐욕이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종교, 교육, 언론 모두 탐욕 집단화 되어서 경쟁하고 있다. 인간관계마저도 실리적이고 이기적인 계산에 의해 맺어지고 유지된다. 연애도, 결혼도, 사랑도, 우정도, 심지어 가족마저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공공연하게 무시되고 폐기처분된다. 합리적 이익사회를 넘어 비상식적인 탐욕 사회로 치닫고 있는 현시대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은 이상에 불과하다. 오직 예외가 있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그리고 일부 숭고한 영혼들의 희생과 봉사 정신일 것이다. 그들의 헌신과 사랑만이 어두운 현실, 암담한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고 등불이다. 이와 같이 비이성적 사고와 탐욕에 물든 인간들은 끝내 잡을 수 없는 신기루에 목 매달며 스스로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좀 먹는다. 그리고 종국엔 자신들이 그토록 목 매달며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재물과 권력들이 실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고 허무함만 남는다. 해서 허상의 시대와 탐욕 사회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유, 평등, 정의의 가치를 수호할 새로운 희망의 시대 정신을 수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결국 탐욕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조종하고 세뇌하려는 악마 세력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한 편의 자작시와 좀 비관적이고 극단적인 서술로 묘사해 봤다. 사실 현실은 위에서 묘사한 것처럼 마냥 비관적이거나 암울하지만은 않다. 우리에겐 여전히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있으며, 이를 명확히 자각하고 있는 ‘깬’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문제들 역시 산적해 있다는 걸 그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가 본서를 통해 ‘이익 사회’라는 개념을 창안하고 제시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에 있다. 그리고 단언컨데 이익 사회 논의를 통해 우리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도출해 낼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우리 앞에 던져진 시대적 화두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익 사회를 정의하자면, 공익(共益)과 사익(私益)이 고루 존재하는 중간 단계인 이익 사회는 공익(共益)과 사익(私益) 추구의 편향 정도에 따라 양 극단이 공리 사회와 탐욕 사회로 대별된다. 그 중간 점이 지대에 잠정적 형태로 각각 공익과 사익 수호에 보다 더 집중하는 방어적 이익 사회(공동체사회)와 공격적 이익 사회(이권 사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사회의 형태는 공익과 사익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공정한 경쟁을 통한 부와 권력의 합리적인 분배 및 역할의 안배가 보장되는 이상 사회로서의 정의 사회이다. 그리고 정의 사회는 생산적 경쟁과 배분을 가능케 하는 환경, 능력과 노력에 따른 개인의 차이와 기회 균등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함은 물론, 공공선과 공공 복지를 수호하는 튼튼한 사회 안전망 및 사회 경제 정의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원숙한 형태의 조화와 협력의 생태계를 특징으로 갖는다.[1]
현실 세계에서 가장 실현 가능한 이상적인 사회의 형태는 방어적 이익 사회(공동체 사회)를 거쳐 공리 사회로 이동하는것이다. 공리 사회는 정의 사회의 특징을 대부분 갖추고 있지만, 보편적 상식이나 인류애 그리고 사익과 공익의 협상을 통해 사익을 일부 제한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탐욕 사회는 그 정 반대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건 중세 봉건 사회나 현재의 북한과 같이 극단적인 소수만이 부당하게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비 정의와 몰 인권, 차별과 불평등의 사회이다. 전체주의 사회나 과당경쟁에 의해 도의가 파괴된 집단이나 사회도 그런 면에서 공동체 사회나 이익 사회와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2]
잠깐 여기서, 이익 사회의 한 측면이기도 한 시장 사회와 상품 사회에 대해 조금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거 같다. 마이클 샌들은 시장 사회의 증상에 대해 ‘시장이 더 이상 도구가 아닌 모든 것의 가치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고, 시장이 우리가 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가 되는 대신, 우리의 목표와 자아관을 규정하기 시작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인간적인 길’에서 ‘시장사회는 결국 상품 사회로 옮겨 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상품 사회에서는 인간 관계뿐 아니라 인간 자신마저도 가치와 등급이 매겨져 거래와 흥정-물론 노예 제도하의 노예와는 전적으로 다르다-이 된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결혼 시장에 나온 남녀들이 단적인 예다. 이러한 시장 사회와 상품 사회에선 소비 풍조와 오락, 흥미 본위의 이슈들이 주된 트렌드가 되고, 대중은 상품을 소비하고 진실보다 이미지에[3], 사실보다 자극적인 이슈에 그리고 분별 있는 판단보다 충동적인 군중 심리에 더 매몰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성이나 합리성이 부재하고 욕망만 가득한 ‘감각의 세계’가 되어가는 것이다. 또한, 이런 사회들을 움직이는 중심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익이며, 이익은 예를 들면, 국가가 주체일 때는 국익, 기업이 주체일 때는 이윤 창출 이란 말로 상황에 따라 그럴 듯하게 포장 되기도 한다.
이익 매커니즘은 또한 이익 추구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이권 다툼이 심해지면 공익(혹은 세계의 공통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단순히 개인적(혹은 국수적) 차원의 이익으로 쉽게 변질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익 매커니즘은 정의와 상생, 중용의 원칙에 의해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제어되고 운용되면 건전한 생산성을 띄지만, 극단으로 치우쳐 어느 한편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되면, 이권(利權)과 탐욕, 즉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사리사욕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이익 사회에서는 정의와 상생의 경제 체제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이를 위해 필자가 제안하는 경제 개념이 바로 공생 자본주의다. 공생 자본주의는 인간, 자연, 기술, 문명의 조화와 융합 속에서 기술, 영성, 지식, 문화, 친환경 기반 등 공유 경제를 중심으로 인간, 문명, 자연이 총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어울어진 생태학적 경제 네트웍과 공정한 경쟁 및 분배 시스템의 구현을 추구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를 지칭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노동자와 자본가, 생산자와 소비자, 인간과 자연, 문명과 환경, 선진국과 후진국이 모두 다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경제 정의 및 생태학적 경제 시스템, 즉 세상을 두루 이롭게 하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구상이다. 따라서 공생 자본주의 속에서는 인간, 사회, 국가, 문명, 자연 생태계가 모두 따로 떨어진 개체가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네트웍으로 본다. 이러한 이유로 네트웍의 효과적이고 안전한 운영을 위한 소통과 유기적인 협력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공생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포괄적인 경제 정의의 구현이다. 이는 자연과 문명 그리고 모든 인류가 공존, 공생, 공유, 공감의 공동체 의식을 갖고, 약한 자와 낮은 곳을 끊임없이 살피고, 자율경쟁 및 부의 분배와 역할 안배의 공정성에 경제 시스템의 방점을 찍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비단 인간이나 문명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 등 자연 환경과 오지의 소수 부족 사회를 모두 포괄해서 생명 파괴 활동을 지양하고,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친환경 생명 중심의 경제 생태계를 확립해야 진정한 경제 정의의 실천이 가능해진다는 점을 함의하고 있다.
니체는 임금 노예인 우리가 고대 노예보다 더 가지고있는 건 허영심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당연히 비 이성적 이권 다툼이 심해지면 정상적인 시장 기능을 무너뜨리고 상품 가치를 훼손해, 급기야 공적 영역으로까지 무분별하게 확대되어 자기 합리화는 물론, 패거리 합리화와 집단 이기주의로 번지게 된다. 우리가 특히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상품 사회의 버블이 꺼진 후, 몰 인간화와 비 정의가 가속화 되면 방어적 이익 사회(공동체사회)는 이익 사회를 거쳐 공격적 이익 사회(이권 사회)로, 그리고 이어서 탐욕 사회로 순차적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당연히 탐욕 사회의 끝은 공멸이고 몰락이다. 왜냐하면 탐욕 사회는 개개인 각자가 자신이 모든 걸 다 차지하려 하고, 그런 야욕의 노예가 된 극 소수의 집단이 모든 걸 지배하려 드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 경제적인 예를 들자면, 그런 사회에서는 건전한 경쟁이나 공정한 분배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고, 권력자는 자신의 탐욕과 야욕을 끊임없이 만족시키기 위한 거대주의-신격화나 절대 권력 같은-에 사로 잡혀 끊임없이 민중을 착취하고 감시한다. 그런데 그런 거대주의의 허상을 한번 봐라. 피라미드, 만리장성, 콜로세움 등에 희생된 민중의 피와 땀을 과연 측정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유적들이 과연 수 많은 민중들의 희생을 제하고도 남을 만큼의 위대한 예술 작품, 문화 유적이라고 불릴 만한 가치가 있을까? 63빌딩 하루 전기 소모량은 강원도 전 주민의 일일 전기 사용량과도 맞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전기가 과연 강원도 전 주민의 일일 전기 사용량과 맞먹을 만큼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오롯이 제대로 잘 쓰여지고 있는가? 주지하다시피 북한 정권과 군부는 지금 강성대국이란 미명 하에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핵무기 개발에 쓰는 돈을 주민 생활 향상에 쓴다면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복지는 엄청나게 향상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 제도 중에 도편 추방이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에페수스의 사람들이 헤르모르를 추방하면서 도편 추방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최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경쟁이 말라서 고갈되고, 헬레니즘 국가의 영원한 생명 근거가 위험하게 되기 때문이다.”[4] 필자가 탐욕과 이권 투쟁 같은 이기적 야욕을 경계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유가 그리고 정의와 공리, 복지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의와 복지가 바로 서지 않은 사회, 이권 다툼과 탐욕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절대 제대로 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다. 경쟁의 환경엔 부정 부패, 사기, 속임수, 꼼수 등만 판을 치고, 그런 환경에서 이루어진 경쟁은 제대로 된 기회의 획득이나 공정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차별과 불평등, 부와 권력의 편중, 가치의 왜곡 등이 심화된다. 비정상 사회가 되는 것이다. 허상에 취해 죽어가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절대주의 사회가 되는것이다.
‘성공하는기업들의 8가지 습관’등과 같은 베스트 셀러를 쓴 짐 콜린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에서 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인용 편집한 것이다.[5] 먼저 첫 번째 단계는 성공에 도취돼 자만심이 생기는 단계다. 이는 이익 사회에서 이권 사회로 넘어 가는 단계에서 종종 목격되는 현상과 유사하다. 이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이익과 권력을 손에 넣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원칙 없이 욕심을 내게 된다. 자신을 키운 초심과 성장 동력을 잃어 버리고 핵심 위치는 부적절한 사람으로 채우며, 그 구멍을 보완하기 위해 관료적 절차를 강화하고 뛰어난 인재는 모두 몰아 낸다. 그게 몰락의 두 번째 단계다. 부적절한 사람을 중용하고, 정작 뛰어난 인재는 쫓아 내는 건 이미 교만과 탐욕에 눈이 멀어 비 이성적 사고를 하게 된 걸 의미한다. 이권 사회에서 탐욕 사회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 몰락하는 기업은 위험과 위기의 가능성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네 번째 단계에서는 위기가 표면으로 드러나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탐욕에 빠진 사람이나 집단은 끝내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체 눈에 보이는 썩은 부분만 계속해서 도려내는 미봉책만 반복한다. 그래서 결국은 완전히 망해 버리거나 그저 그런 기업으로 명맥만 유지하게 된다. 그것이 몰락의 마지막 단계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권 다툼과 극단적이면서도 야만적인 투쟁이 가져오는 수많은 폐해들을 목도하고 있다. 유산 다툼, 세대 단절, 노사 갈등, 지역 갈등, 좌우 갈등, 남녀 갈등, 종교 및 문명 갈등, 전체주의 세력과 신 제국주의 세력간 패권 다툼, 다양한 국제 분쟁 등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다툼과 분쟁들은 대부분 사회와 세상을 진일보시키는 생산적 협의나 토론의 모습을 띄기보다는 비이성적인 반목이나 폭력적인 힘 겨루기로 쉽게 변질되는 경향이 있어서 사회 안정과 평화를 저해하는 심각한 위해 요소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자리 잡는 걸 막기 위해서는 시장 사회, 상품 사회의 폐단을 개선하고, 이익 사회를 공동체 사회, 공리사회 나아가 정의 사회로 하루 빨리 이행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공공선과 정의 원칙에 입각한 이익 메커니즘의 조정과 개혁에 있으며, 이는 결코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보다 약한 자, 소외 받은 자를 보호하고 돕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본서를 통해 현재 시대(허상의시대)와 세계(감각의 세계)에 '깨어있는 시민들과 정의로운 소외의 연대'라는 화두를 던지며, 공존, 공생, 공유, 공감, 공동 발전을 위한 전방위적인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대한민국과 인류의 시대적 소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동시에 이를 위한 개인적 차원의 영성 혁명과 사회적 차원의 소통 포럼을 통한 협업적 논의를 대한민국과 인류 전반에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길 바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념이나 이익보다 사람과 생명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1] 이익 사회 개념은 마찬가지논리로 이익 정치, 이익 경제, 이익 외교 등의 개념으로응용해서 사용할 수 있다.
[2] 공동체 사회의 예론 유럽 연합, 아세안, 비동맹노선을, 전체주의사회의 예로는 러시아, 중국, 북한, 아랍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물론 양자 모두 완벽한 공동체 사회, 전체주의 사회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각각이 상당히 강한 정도로 공동체사회와 전체주의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가장 비교하기 좋은 실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부분에 대한 논의는 향후 ‘피봇’시리즈 이익 사회 편을 통해보다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3] 보들리에르는 그의 저서‘시뮬라시옹’을 통해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인 시뮬라크르, 즉 사본이 원본을 밀어내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4] 니체, 호메로스의 경쟁
[5] 박종훈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