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만주에서 모스크바로

동토의 광야(2)

by 레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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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나 티벳 불교 같은 이질적 문화를 중화주의를 중심으로 흡수하거나 말살하려는 중국과 달리, 소수 민족과 인종의 정치적 자치권을 인정하고 다른 문화를 보존 및 존중하려는 노력을 병행하면서 러시아는 다민족들의 한 나라라는 국가 정체성 아래 단결하고 있다. 물론 다른 이면엔 언론을 통제하며 무리하게 ‘러시아화(Russification)’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러시아의 특성 상, 국가 안보와 체제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전과 선별적 정보 확산을 통해 조국애를 강조하는 것은 러시아와 체제적 대척점에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미국과 체제상 대척점에 있는 라이벌 국가는 중국이다. 공산당 일당 독재이고 국민이 아닌 전인대를 통해 최고지도자를 뽑으며 정부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서 경제를 통제하는 특색 사회주의 국가 중국과는 달리, 러시아는 비리와 권위주의는 여전하나 겉으로만 놓고 보면 다당제에 기반한 직접 선거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고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냉전 시대 구소련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미국과 서방 세력이 구소련이 해체된 지금까지도 경계심을 풀지 않고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러시아를 전방위적으로 견제하는 ‘대러시아 봉쇄 전략’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를 체제상 라이벌로 보는 인식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국익을 위해 언론을 움직이고 여론을 조종하며 홍보와 선전 활동을 벌이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단지 강조와 강요라는 질적 판단 그리고 정권을 견제하는 자유로운 감시 및 견제 세력의 활동이 안전하게 보장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해당 국가의 국민이나 국익에 기반한 판단에서 보면 ‘자유와 통제 중 어느 쪽이 더 낫다, 아니다.’를 단정적으로 결정짓기는 곤란하고 애매한 경우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에 대한 존중과 사회의 투명성은 어떠한 경우에든 지켜져야 한다. 정권 유지나 국익보다 우선하는 것은 사람 자체이고, 폐쇄성은 그 자체로 부패와 독재의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정권, 권력 집단에 대한 감시와 여론 조정에 있어 투명하지 않은 국가는 언제든 위기를 맞는다. 그런 면에 있어서 러시아는 권위주의 체제라는 특성 상 민주주의 국가로서 분명한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야를 정치에서 다른 곳으로 조금만 돌려 보면 훨씬 다양하고 흥미로운 문화적 민주성을 러시아 내에서 목격할 수 있다. 러시아는 사실 상 시작부터 다인종·다문화 국가였다.

러시아 최초의 국가라고 여겨지는 ‘노브고로드 공국’을 현재의 볠리키노브고로드에 처음 건국한 빨간 머리의 류리크는 북구 바이킹족인 '루스(Rus)' 출신이었고, 이들 루스인이 이후 슬라브인들과 합쳐 이룬 국가인 ‘키예프 공국’은 유라시아 유목민족들이 주로 할거했던 광활한 스텝 지역에 위치했던 탓에 다양한 민족과 인종의 이동이 특히 잦았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루스인들은 영어로는 ‘루세트(Russet)', 핀란드어로는 '루오치(Ruotsi)',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로스(Rhos)' 등의 이름으로 불렸고, 이들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자 슬라브인들의 주무대이기도 했던 드네프르 강을 따라서는 ‘카자리아(Khazaria)'의 ‘슬라브인(Slav, 노예를 뜻하는 영어 단어 slave는 이 종족 명칭에서 유래했다) 노예시장’이 활성화 되어 있었다. 해서 러시아의 역사를 보면, 국가 건립 초기부터 피부색이나 민족 혹은 종교에 따른 차별이 거의 없었고, 타타르나 고려인 같은 아시아계 민족들과 슬라브계 민족들은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장벽 없이 비교적 평등하게 어우러져 살아왔다.

이는 여타의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과는 상당히 다른 러시아만의 개성이다. 특히 수도 모스크바는 역사적으로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소비에트와 서구적 현대가 혼재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러시아의 메트로폴리탄 모스크바는 그래서 그렇게 러시아만의 독특한 문화적 개방성과 유라시아성을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참고로 공국은 왕이나 황제와 같은 군주가 아닌 귀족이 통치하는 나라를 의미한다. 바이킹 출신인 류리크가 처음 지금의 러시아 땅에 왔을 때, 그는 다른 두 형제와 함께 각자 다른 도시들을 중심으로 국가를 건국해 다스렸고, 이후 정치적 중심이 키이우와 블라디미르를 거쳐 모스크바로 이동함에 따라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제 국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또한, 노브고로드는 한자 동맹의 러시아내 거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볠리키노브고로드를 가면 볼호프강 기슭을 따라 펼쳐지는 멋들어진 풍광과 더불어, 러시아를 잉태한 고도(古都)의 유적들과 중세 한자동맹의 자취들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카자리아는 이슬람, 크리스찬, 유대교는 물론 이교도들의 여러 종교들이 번성했던 지역이었다. 카자리아의 지배 세력은 본래 이란계 무슬림이었지만, 훗날 이들은 유대교로 개종한다. 2차 대전 당시 히틀러 휘하의 독일 나치가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던 유럽의 유태인들은 통상적으로 이스라엘이 아닌 중부 유럽을 중심으로 거주했던 이들 카자리아 출신의 유대인 후손들을 가리킨다.


https://youtu.be/c4u0h0XLF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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