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만주에서 모스크바로

동토의 광야(1)

by 레테


[1]


때는 4월이었고, 러시아의 수도이자 유라시아의 심장 모스크바는 매운 칼바람과 잿빛 아우라가 가득했다. 당시 나는 운명이라는 파도, 팔자라는 한파에 맞서 불운과 불만으로 가득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인생에 대해, 신앙과 종교, 연애와 결혼, 사랑, 부모와 가족, 세상의 풍요와 평화, 역사의 정의, 국가의 역할 그리고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라는 당장의 생계에 대해. 나의 질문과 해답 찾기는 그래서 현실이라는 파고 위에서 부유하며, 방랑의 태엽을 따라 끊임없이 헛돌고 있었다.

사회는 늘 정답을 강요하고, 사람들은 그래서 나름의 방식으로 혹은 집단의 방식을 따라 답을 구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답에 진정 만족하고 사는가? 사실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그래서 어쩌면 완성을 구하는 건 그 자체로 텅 빈 공허일지도 모른다. 끝없이 채워야 하고, 채우고 또 채워도 종내엔 채워지지 않는 그런 영겁의 공허 말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질문들에 대해 딱 떨어지는 답이 없다면, 우리는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걸까? 어째서 신기루 같은 답을 구하며 좌절을 반복하는 것일까? 그래서 끝내 답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삶의 아름다움은 퇴색되고, 그간의 노력들은 손가락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사막의 모래처럼 바람에 날려 흩어지고 마는 것인가?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때로는 학대하듯 나의 영혼과 육체를 채찍질하고, 때로는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하며 뜨거운 독주를 창자 안에 들이붓기도 하고, 못나고 못됐는데도 불구하고 잘 나가는 인간들을 경멸하며 그리고 그런 아이러니한 현실에 끊임없이 좌절하고 슬퍼하면서, 내가 그토록 구하고자 했던 것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음을 말이다.

내가 추구했던 삶과, 내가 바랐던 행복과, 내가 꿈꾸었던 낭만과, 내가 찾고자 했던 사랑과, 내가 동경해 마지 않았던 저 광활한 우주의 별은 오로지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음을 말이다. 그렇기에 방황의 날과 정념의 밤과 고통의 새벽은 있을지언정 나의 그 무수한 물음에 대한 정답은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욕망의 샘이 나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한, 행복에 대한 답은 그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욕망과 주변의 기대를 버리고 무작정 산으로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중이 되기엔 나이가 너무 들었고, 혼자 살기엔 지독히도 외로움이 많으며, 한 곳에 머물러 있기엔 방랑벽이 심했다. 그래서 나는 세상과 사상과 인간들을 편력하게 되었다. 내가 갈구해 마지않았던 내일은 여전히 뿌연 안갯속에 가리어져 있었지만, 외롭고 쓸쓸한 도정을 멈추지 않았고, 혼자인 시간과 침묵이 대부분이었던 인생 역시 끝내 지지 않았다. 그리고 허기와 갈증에 주린 영혼을 품 안에 감춘 체, 쓰라림이 가실 날 없이 썩어 문드러져가는 속을 부여잡고 낯선 얼굴의 모스크바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2]


모스크바의 첫인상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소비에트 스타일의 회색 건물들도 그랬고, 비와 눈이 섞인 늦겨울의 매서운 바람 역시 짜증 났다. 당시 나는 ‘유목정신’으로 무장한 체 자유로운 꿈을 꾸는 30대의 ‘편력인’이었다.

러시아는 초등학교 시절 읽은 고골의 소설 ‘대장 부리바’와 엄마가 보던 주부 잡지에서 우연히 본 ‘한국 남성과 결혼한 최초의 러시아 여성’의 사진으로 인해, 나의 잠재의식 속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각인된 나라였다.

물론 소설 속 ‘대장 부리바’의 배경은 지금의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이지만 나는 러시아를 포함한 구소련 국가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지녀왔고, 이런 연유로 대학과 대학원에서 러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지역학을 전공하며 언젠간 이 지역들에서 나의 꿈을 펼치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그 잡지 속 러시아 여성분과는 대학에서 선생과 제자로 만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당시 시베리아 쪽에 가깝게 위치한 도시 카잔을 거쳐 러시아의 정치·경제 수도인 모스크바로 왔다. 카잔에서는 학회 참석차 2일을 묵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카잔은 내가 처음 발을 디딘 러시아 도시이기도 했지만, 러시아 이슬람 문화의 중심이자 러시아내 타타르스탄공화국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카잔을 방문했을 당시는 그해 7월에 있을 카잔유니버시아드 대회 준비에 한창일 때라 도심 곳곳에서 먼지를 날리며 공사가 한창일 때였다.

참고로 러시아에는 타타르스탄공화국을 포함해 총 22개의 공화국이 존재하는데, 러시아의 자치 공화국은 특정 지역에 집단 거주하는 대규모 소수민족 집단에 자치권을 부여할 목적으로 설정된 행정 구역의 일종이다. 러시아의 영문 정식 명칭은 ‘Russian federation'이고, 이는 상술한 바와 같이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계 민족과 200여에 달하는 다양한 소수 민족들의 자치 공화국들이 독특한 연방국가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타타르스탄’에서 타타르는 바로 소수 민족의 이름을 나타내고, 중앙아시아 국가들 명칭에서 공통으로 쓰이기도 하는 ‘스탄(stan)'이란 말은 페르시아어를 어원으로 하며, ‘땅’이나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이다. 아마도 라틴어 단어인 ‘state’와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러시아에는 타타르와 같은 아시아계 민족이 수 없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타타르는 러시아내에서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인구수를 가진 민족이다. 타타르라는 명칭은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남쪽에서 유목하던 몽골계와 튀르크계 종족 사이에서 등장하여 점차 확산됐다. 그리고 이들 종족들이 몽골제국의 ‘킵차크 한국’에 복속된 이후 타타르라는 이름으로 통칭됐다고 한다.

이후 칭기즈칸의 몽골 군대 위세에 눌린 유럽이 지옥보다 더 깊은 심연에 존재하는 태초의 신 ‘타르타로스’라는 이름과 혼동하여 칭키스칸의 군대와 그 종족 전체를 타타르로 아울러 부르게 됐다. 그래서 보통 타타르라고 하면 시베리아 일대와 중앙아시아에 주로 거주하는 몽골계 아시아인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타타르인들은 몽골계보다는 튀르크계에 혈통적 연원을 더 가까이 두고 있고, 크림타타르와 같은 남러시아의 일부 타타르계인들은 카프카스(영어로 코카서스, Caucasus) 종족들의 후손이기도 하다. 또한, 타타르의 문화는 튀르크 전통문화와 이슬람 수니파 문화가 혼용된 색채를 강하게 띄는데, 튀르크라고 하면 지금의 터키계 그리고 우리가 통상적으로 돌궐이라고 불렀던 유목 민족을 의미한다.

유라시아 지역을 할거했던 튀르크계 유목민족은 크게 돌궐과 흉노로 구분되는데, 흉노는 유럽지역에서 ‘훈(Huns)’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후 게르만 민족을 필두로 고트족, 프랑크족, 색슨족 등의 연쇄 이동까지 일으키며 중세 유럽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던 이들 훈족의 위세는 '훈족의 땅‘을 의미하는 헝가리의 국명인 ‘Hungary'에 지금까지 남아 당시의 맹위를 방증하고 있다.

참고로 러시아에서는 중국을 ‘키타이(Кита́й)’라고 부른다. 이는 사실 우리말로는 거란족을 의미하고, 영어로는 'cathay'로 표기되는 타타르계 중국인, 엄밀히 말하면 중국에 가까이 살았던 몽골계 타타르인을 통칭한다.


[3]


카잔엔 ‘성곽’, ‘요새’를 의미하는 ‘크레믈(кремль)’ 안에 러시아말로는 ‘메체티(мече́ть)’라고 불리는 이슬람 사원인 ‘쿨 샤리프’가 위치해 있다. 이 모스크의 외관은 비잔틴 양식과 무슬림 양식이 혼재하며 독특한 매력을 자아내는데, 비잔틴 건축 양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건물의 지붕이 돔 형태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쿨 샤리프에서도 역시 에메랄드빛 원형 돔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둥근 돔 형식의 건축 양식은 사막이나 초원의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이동식 천막, 특히 ‘게르(Ger)’라고 불리는 몽골식 천막의 모양을 본 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이 돔형 중앙 건물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4개의 높은 첨탑들은 페르시아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돔형 지붕과 첨탑들의 조화로움은 거룩한 사원보다는 동화 속 궁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사원의 건축 양식에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문화적 특징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독특한 이슬람 양식을 이루었는데, 이렇게 빚어진 모스크의 조형미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특히 밤에 보는 쿨 샤리프는 더욱 아름답다. 이슬람 국가들의 깃발에서 흔히 보이는 초승달은 ‘헤지라’의 밤을 상징하는데, ‘헤지라’는 예언자 마호멧이 귀족들의 박해를 피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동한 사건을 가리킨다. 이슬람의 모스크는 대체로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외벽을 장식하지만, 카잔 ‘쿨 샤리프’의 외벽은 흰색의 단순한 무늬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이 흰색벽이 에메랄드빛 돔과 의외로 멋진 조화를 이룬다. 마치 거대한 에메랄드빛 왕관 하나가 땅 위에 떡 하니 세워져 있는 것 같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풍기니 말이다. 그래서 밤에 조명을 받아 빛나면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되고, 달과 별 아래 서 있을 때 모스크의 마법 같은 아름다움은 극에 달한다.

나는 카잔에서 처음 이슬람 사원을 보았을 때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처음엔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모양에 호기심이 동했고, 다음엔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조형미가 자아내는 독특한 아우라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밤엔 달과 모스크가 합작해 만들어 낸 동화 같은 환상에 빠져 몇 번이나 발길을 멈추고 돌아보곤 했다. 그 날 이후 나에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 정교 사원과 더불어 이슬람 사원들을 둘러보고 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특히 러시아는 워낙에 다문화·다인종 국가라 이와 같은 취미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도시 곳곳에서 아름다운 사원들을 쉽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러시아어가 통용되는 구소련 국가들을 방문하면 이 같은 기회가 훨씬 많아져서 행복했다. 나중에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모스크바 역시 이런 다양한 매력을 자신의 속살 안에 은근히 감춰두고 있었다.


https://youtu.be/t61tLBrjj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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