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광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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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엔 ‘마뜨로슈카’라고 불리는 전통 인형이 있다. 러시아인들의 내면은 마치 양파 같아서 까면 깔수록 새로운 모습들이 드러나는데, 마뜨로슈카는 이런 러시아인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다. 더불어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마뜨로슈카의 화려한 겉무늬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러시아 문화와 러시아인들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대변하기도 한다.
나는 사실 북유럽인들이나 러시아인들을 처음 보았을 때 커다란 체구에 강해 보이는 인상 탓에, 조금은 위협적인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어색함을 내려놓고 이들과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겉모습 속에 감추어진 따뜻하고 순수한 속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엔 추운 날씨와 군국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문화로부터 이들의 무표정한 인상이 기인한 것은 아닐까 추측도 해보았는데, 나중에 친한 현지인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러시아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이유 없이 웃는 것을 가볍고 실 없는 태도로 여긴다고 한다. 즉 불친절해서가 아니라 진중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일 뿐, 알고 보면 러시아인들의 속은 우리나라 사람 못지 않게 따뜻하고 정이 많다. 아무튼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딱딱하거나 야만스럽지 않다. 이들은 대체로 놀라울 정도로 교양 있고 여유로우며, 자연과 예술에 대한 상식이 해박하다. 뿐만 아니라 무척 논리적이고 매사에 신중하다. 우스개 소리지만 시내 거리를 곰이 활보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우리는 대체로 미국이나 유럽 등 서방 언론을 통해 전달되거나 가공된 정보를 통해 러시아를 접해왔고, 러시아 역시 오래된 출처나 간접적인 루트 혹은 중국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습득해 왔기 때문에, 러시아인들과 교류하다보면 상호간의 오해가 꽤 많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과 한류 덕에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정보를 다양한 루트를 통해 습득하고 있고, 자연스레 관심과 호감도 높아져서 기존의 잘못된 통념이 일정 부분 해소되기는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러시아, 두 나라 사이의 사회문화적 간극은 여전하다. 예를 들면, 러시아나 구소련 국가 출신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내 놓고 말하진 않지만 한국을 미국의 속국으로 여기기도 한다. 남북 분단이라는 체제적 특성 상 주변국들 눈치를 보며 협조를 구할 수 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기인하는 바도 물론 있지만, 사실 나는 6·25 전쟁 후 한동안 미국 편향 일변도였던 우리의 외교 자세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
나는 아주 자주 우리나라 정치와 외교 책임자들이 왜 항상 미국이나 주변 국가들에 기대어 남북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남북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번째 대화 상대는 남북 당사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남한은 안보상의 이유로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미국 편에만 서고, 북한은 경제적인 이유로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중국에 기댄다. 정말 한반도 통일과 번영을 원한다면, 한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더 자주적인 자세로 북한과 직접 대화하고 담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남북한 양 국가 최고 책임자와 실무진들이 솔직히 속내를 털어놓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꾸준한 협의를 이어 간다면, 분명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돌파구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나라가 먼저 지나치게 미국 눈치를 살피거나 미국에 의존하려는 자세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매년 실시하는 한미 군사 훈련도 횟수와 규모를 줄여 북한의 불안감을 달래줘야 하고, 북한이 실시하는 군사 실험이나 도발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우리의 군사 훈련이 안보 수호를 위한 것이듯, 북한의 군사 실험 역시 자신들의 체제와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해하면 그만이다. 끝없이 되풀이 되는 비생산적인 논쟁만 반복하는 것 보다는 남북 상호간의 긴밀하고 꾸준한 대화를 통해 관계 개선과 발전의 활로들을 다양한 분야에서 조금씩 찾아가고 늘려가려는 노력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러면 북한도 차츰 우리의 진심을 이해하고, 점진적으로 국제 사회를 향한 개방의 물꼬를 터 가며, 핵 개발도 포기하고 정상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갈 것이다. 지나치게 섣부른 진영 논리나 통일 담론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우선적으로 수립하기 위한 대한민국 주도의 사소하지만 구체적이고, 전방위적인 노력이 그래서 더 필요하다.
아무튼 나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경제 발전을 위해 중국보다는 러시아가 더욱 긴밀하고 중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극동 지역 개발을 통해 자국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국가 발전 정책의 기조를 서방에서 동방, 즉 극동아시아로 옮기고 있다. 그리고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자국 지역들로 지나치게 많은 중국인들이 넘어와 그곳들을 중국화시키는 현상에 대해서도 깊이 경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러시아를 냉전 시절 소련처럼 최대 안보 라이벌로 여겨, 유럽과 아시아에 교두보를 마련하여 러시아 영토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봉쇄하려는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나라에 배치한 사드 역시 이와 같은 미국의 군사적 러시아 봉쇄 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니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남북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 그리고 북방 경제 활성화를 위해 러시아와의 보다 긴밀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러시아 역시 이를 적극 원하는데 미국 눈치 보느라 공허한 구호만 외칠 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행하고 있지 못하니 말이다. 러시아 역시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차선책인 중국,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결국 한국은 냉전 대결의 망령에 여전히 사로잡혀 한반도 발전 전략의 펜대만 쥔 체,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국제 관계의 섬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치인들과 외교 담당자들은 자신들부터 먼저 적극 나서 미국과 러시아 양국을 중재하고, 남·북과 더불어 미·러 역시 상호간에 오해와 반목을 불식시키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실용적 협력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일대일로로 대표되는 중국의 채무제국주의를 견제하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북방경제를 실질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지름길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나아가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고 중화주의의 야욕을 억제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그리고 나아가 유라시아와 인류의 발전과 이익에 도움이 되고,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첩경임을 밝혀둔다. 지금의 중국은 나라 자체가 중화사상을 신앙으로 삼고, 공산당 정권의 교조주의가 지배하는 거대한 종교 집단이다. 한·미·일·러는 동아시아의 평화·발전과 인류의 진화를 위해 세계 인구와 경제의 거대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 건강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문화의 다양성이 인정되며, 양심과 상식이 권력보다 우선하는 정상국가로 변모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남한, 미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를 포함한 제반 유라시아 국가들의 국제 공조와 지역 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중국과의 우호적 혈맹관계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지해가고 있지만, 사실 중국을 가장 경계하고 경원시하는 북한 역시 이와 같은 국제 공조의 잠재적 협력 대상이다. 따라서 누구보다 남한 정부가 나서 북한을 설득해서 고립되어 있는 북한이 한·미·일·러·몽의 동북아시아 5각 공조 체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관국들과 긴밀히 공조하며 설득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현실적으로 요원하다. 근본적으로 각 나라의 정치인들은 국민보다 정권을 위한 정치에 매몰돼 있고, 상기한 국제 공조를 위해선 러시아와 서방 세력의 긴밀한 협력이 선결 과제인데, 일본과 러시아 등은 언론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통제와 가공이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예측으로는 씁씁하지만 상기한 제안은 아마도 20년 후에나 가능한 이상이 아닌 가 싶다. 중국이나 북한이 먼저 나서 변화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선, 러시아가 먼저 완전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해야 하며, 한국과 몽골 공통의 고대사와 민족적 친연성에 대한 복원 연구가 이루어져 중국의 동북공정과 북방공정에 맞서야 하고, 일본이 ‘미즈기와(みずぎわ)’, 즉 해상봉쇄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폐쇄 정책을 포기한 후 공동 번영이라는 대의에 동참할 때에야 비로소 이와 같은 국제 지역 협력의 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