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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티제 Jun 28. 2023

지옥철의 기억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최근 뉴스기사에서 특정 지하철 노선에서 젊은 여성들이 호흡곤란을 호소했다는 이야기가 여럿 들려왔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날의 내가 떠올랐다. 아차 싶었다. 당시 나는 그냥 체력이 약해서 그랬던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회사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던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사에 따르면 호흡곤란은 지옥철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낸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 때문이었다. 개인의 체력이나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 환경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비교적 젊은 여성들에게 흔하다는 것은 체력이 약하면 더 그런 증상들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난히 출퇴근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니 어쩌면 일부 심리적 문제가 내제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될 수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지옥철이었다. 뉴스 기사에서 언급된 노선은 신도시와 서울을 연결하는 특정 구간이었지만 사실 그 구간이 전부가 아니다. 서울로 아침저녁 출퇴근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수십 번이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다만 기사화되지 않은 것이고 공론화되지 않은 것일 뿐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던 회사에 다닐 때 9호선 급행열차를 타고 출퇴근했다. 급행은 완행보다 빨랐다. 하지만 그 빠른 속도와 비례하게 혼잡했다. 지금도 그렇다. 서울 중심부와 더욱 가까워질수록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더 좁아졌고 어느샌가 스마트폰을 눈앞으로 가져와 보기도 힘들 정도로 팔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몸이 사람들 사이에 끼기가 다반사였다. 그래도 몇 정거장만 가면 금방 도착하니까 조금만 참자고 버티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원 지하철 안에서 공황처럼 느껴지는 증상들이 찾아왔다. TV에서 연예인들이 얘기하던 그게 이런 건가 싶었다. 처음 그 증상이 나타난 건 문득 머릿속에 두려움이 엄습하고 나서였다. 평소처럼 지옥철이었지만 그날따라 앞뒤로 나보다 키가 훨씬 큰 사람들이 역시나 나처럼 인파에 끼어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갑자기 이러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다행히 곧 다음 역에 도착해 그 압도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아직 혼잡도가 극에 달하지는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증상들이 나타났다. 지하철을 탄 바로 다음 역에 지하철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사람들이 타고 타면 금세 또 지옥철이 되고 또 숨이 막혀오면 어쩌나 온몸 전체가 초긴장 상태에 돌입하곤 했다. 트리거였다.


   마침 내과와 한의원에 갈 일이 있어 이 증상들에 대해 상담을 받았다. 한의원에서는 정신과 진료가 나쁜 것이 아니니 생각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만 반복되며 이유가 짐작되는 증상이기에 다른 방법을 먼저 시도해봐야겠다 싶었다. 내과에서는 나의 경우 조건 반사적인 반응들이니 그 증상을 일으키는 특정 조건을 피할 것과 함께 운동 처방을 내려주셨다. 증상이 오면 버티지 말고 그 자리를 피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가능하면 앉으라고 하셨다. 호흡을 돕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일 땀이 날 만큼 빠르게 걷기 운동을 50분 이상 하라고 하셨다. 그보다 더 적게 하면 효과가 없다고 하셨다.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잡는데 도움이 되는 활동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하셨다. 나 이전에 이미 수십, 아니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똑같은 문장을 반복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날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네에 인접한 근린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급행을 더 이상 타지 않기로 했다. 도시인으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이며 퇴행적인 행보였다.


   완행은 급행보다 느렸다. 하지만 그 느린 속도와 비례하게 덜 혼잡했다. 30분 더 일찍 일어나 더 일찍 출근길에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완행을 타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았다.


   내과 의사 선생님께서 언급하셨던 그 ‘현대인의 질병’은 현대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을 둘러싼 환경이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 현대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을 둘러싼 환경을 쉽게 바꿀 수 없다. 문제를 공론화하기까지 수 세월, 다행히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합의에 도달한 경우에라도 그 문제가 실제 해결되기까지 또 수 세월이 걸린다. 하지만 현대인은 그 수 세월 동안 멈춰있을 수가 없다. 회사를 그만둘 수가 없고 지하철을 타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한 처방약은 매일 밤마다의 빠르게 걷기 운동이었고 매일 아침마다의 잠을 쫓는 부지런함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처방약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괜찮아졌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설령 증상이 멈추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문제는 내가 그동안 약을 먹지 않아서가 아니라 약을 먹어야만 하는 환경 때문이었다는 것을. 뫼비우스의 띠 같지만 결국 그 환경을 만들어 낸 것 또한 역시 현대인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 또한 어느 지점에선가 그 환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일부일 수 있다. 갑자기 정리되지 않은 많은 생각들과 하루에도 수십 번의 작은 선택의 순간들과 이에 연결되는 사소한 행동들이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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