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티제 Sep 18. 2023

새벽 불청객

빨리 공사가 끝났으면 좋겠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한창 달콤한 침을 흘리는 새벽잠이 방해받기 시작했다. 열대야 때문이냐고? 아니다. 무려 새벽 네시 반쯤부터 시작되는 공사 소음, 아파트 건너편에서 한창 진행 중인 건설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이다. 다섯 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부터 작업을 준비하는 이유는 뜨거운 볕을 피해 서두르려는 것이겠지? 아니, 생각해 보니 더 더울 때도 이렇게 새벽부터 시끄럽진 않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촉박해지는 공사 스케줄 때문에 작업 시간을 늘리고 있기 때문인 걸까? 나는 공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뭐가 됐든 소음은 나의 달콤한 새벽잠을 확실히 방해하고 있다.


   가장 먼저 단잠을 깨우는 소리는 큰 공사 차량이 길가로 진입하는 소리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소리. 차가 진입하는 소리만으로 잠에서 깰 수 있다니, 내가 요즘 피곤하지 않긴 한가보다. 회사를 다닐 때는 늘 잠이 부족해 하루에 두, 세 잔 커피를 들이부어도 밤이면 곯아떨어지고 아침엔 알람이 시끄럽게 울려야 겨우겨우 깨곤 했었는데. 이어서 살수 차량이 높은 굉음을 내며 지나가기 시작하면 얕게 잠에서 깬 비몽사몽인 상태가 온전한 기상 상태로 바뀐다. 이어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리들-자재를 운반하는 소리, 무언가 두드리며 작업하는 소리-과 함께 활기찬 아침이 밝아온다.


   오늘은 공사장 근처에 위치한 따릉이 정류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공사현장 코 앞을 지나갔다. 몇 층이나 올라왔나 세어봤다. 한참 동안 지하 공사를 하는 듯싶더니 그새 3~4층 정도까지 올라왔다. 지하 공사가 끝나면 덜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 시끄러워지는 것 같다. 도대체 몇 층까지 올라가려나. 그래도 조금 안심인 건 이곳은 공항 근처라 고도제한이 있어 건물을 아주 높이 올릴 수가 없다. 제발 그러길 바란다.


   얼마 전 동네친구와 공원을 산책하면서 아침부터 소음 때문에 피곤하다는 얘기를 했다. 친구는 며칠 전 우리 집보다 더 공사장과 가까운 단지를 지나면서 ‘못살겠다’ 류의 현수막을 봤다는데, 그래서 그랬구나 이야기했다. 공사현장과 큰길을 사이에 두고 사는 나도 이렇게 소음이 신경 쓰이는데 바로 옆 단지라니, 현수막 멘트가 그만하면 참 양반이다 싶었다.


   이런 내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 들어서고 있는 단지가 너무 기대가 된다고, 너무 좋겠다고 한다. 쇼핑몰이 들어오려나, 어떤 맛집이 들어오려나, 다들 기대다. 소음에 지친 나로서는 도통 동의할 수가 없다. 아니, 소음이 아니라 전세로 살고 있어서 그런 걸까? 설마 내가 집주인이었으면 저 소음이 집 값이 올라가는 코인소리로 들렸으려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다 문득 도시에 산다는 것, 아니 서울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왜 서울에 살고 있을까? 아니, 앞으로도 서울에서 살고 싶은가? 나는 이미 그 답을 정해놓았다. ‘아니’라고.


   서울에서만 서른몇 해를 살아온, 손에 흙 한번 묻히지 않고 도시에서만 곱게 살아온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참 가지각색이다. 서울 떠나면 고생이야. 아파트가 편하고 좋지. 최대한 서울 안에서 버텨. 서울에 살아야 돈 벌어. 아니, 왜 내가 그러고 싶다는데 이래라 저래라일까? 그럴 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네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를 수 있다고.


   심리상담 일을 하는 친구와 최근 나눈 대화의 주제도 ‘도시’였다. 아니, 비정상적인 서울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충분한 물리적 간격을 갖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물리적 간격을 확보하지 못하니 심리적 간격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비단 거주지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대중교통에서도, 여가를 즐기는 곳곳에서도 그렇다. 그 충분치 못한 간격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각 개인은 스스로가 나약해서 이 도시에 적응하지 못해서 힘든 거라고 자기 탓을 한단다. 자기 탓이 아닌데도.


   친구는 우리의 이 힘듦이 스스로의 탓이 아니라고, 적어도 우리가 그걸 인지는 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서울은 무슨권 무슨권 이라 갖은 모양으로 이름 붙인 온갖 편의를 누릴 수 있는 파라다이스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서울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곳, 아이러니하게 그런 곳이기도 할 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공고가 붙었다. 내일부터 몇 층 몇 호에서 나흘에 걸쳐 화장실 인테리어 공사를 할 예정이고 소음이 발생할 예정이니 양해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가장 시끄러울 시간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라고 시간까지 친절하게 기재되어 있다.


   내일은 일찍 이 동네를 벗어나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