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티제 Sep 11. 2023

비누샴푸 해프닝

며칠 전부터 머리가 너무 가렵기 시작했다. 전조증상은 몇 주 전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만큼 가려워졌던 것이다. 혹시 누가 보기라도 하면 불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머리를 긁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아, 지금 문제가 조금 심각해졌구나 싶었다.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고 난 뒤 귀찮아서 잘 말리고 자지 않을 때가 많았다. 혹시 그래서 인가 싶어 그날은 외출 후 머리를 감은 뒤 드라이기로 꼼꼼하게 두피를 말렸다. 그런데 차도가 없었다. 왠지 더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한여름이 지나고 환절기가 돌아와서 그런가 호르몬 탓인가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봤지만 그렇다 싶은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검색을 시작했다. 너무나도 무서운 결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검색을 중단했다.


   그러다 문득, 아 혹시? 하고 떠오른 이유가 있었다. 지금 쓰고 있는 고체비누샴푸였다. 플라스틱을 줄이고 좋은 성분의 샴푸를 사용하겠다는 결심으로 고체비누를 쓰기 시작한 지가 꽤 되었다. 직접 구매하기도 하고 선물을 받기도 하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금 쓰고 있는 고체비누는 처음 써 보는 브랜드의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왠지 비누가 물컹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시는 플라스틱 병에 담긴 액체샴푸를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싶어 올리브땡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고르고 골라 두피 스케일링 효과가 있는 액체샴푸를 사기로 했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감았다. 오랜만에 너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머리가 더 이상 가렵지 않았다.


   나는 고체비누를 고집했지만 남편은 고체비누가 싫다고 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샴푸를 따로 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도 강경한 나의 보이스에 남편도 내가 쓰는 고체비누를 따라 쓰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하필 이럴 때 비누와 관련된 문제가 생겨버리다니. 그렇게 환경을 위해 몸을 위해 고체비누를 쓰라고 고집을 부렸던 나의 모습이 파박파박 떠올랐다. 사실 비누가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좋은 브랜드의 좋은 성분의 비누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 그렇게 그 브랜드를 싸고 돌 수는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했다. 비누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남편의 머리는 괜찮은지 묻고 남편도 이제 그 비누를 쓰지 말라고 했다. 남편의 머리는 다행히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고체비누 쓰기를 포기하지는 말아야지. 나는 다시 나와 맞는 비누를 찾아 나설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남편에게도 고체비누를 쓰라고 권유하기는 당분간은 조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을 위한, 내 몸을 위한 선택을 하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더 꼼꼼하고 더 예민하게 찾고 맞춰야 될뿐더러 비용도 적게 드는 게 아니다. 사실 조금 불편하다. 나 혼자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뀔 것도 아닌데 가끔은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 글은 남편에게 보여주지 말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대나무 숲 (feat. 비밀을 듣지 않을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