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 뜨지 못한 아이와 시작된 묘묘한 동행
2012년 2월 28일
겨울의 끝자락에서 마치 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차가운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추워서 옷깃을 여밀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걷는 그 순간에는 이런 추위 속에서,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작은 생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추운 몸을 녹이며 방에서 쉬고 있던 그 때,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마트 앞에, 박스에... 새끼 고양이들이 있어.
탯줄도 아직 붙어있고, 눈도 못 떴어.."
그 한 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추운 날씨에,
이제 막 이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 박스에 버려져 있다니...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고양이를 길러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탯줄이 붙어져있는 눈도 못 뜬 새끼들이라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것일까?
그러나 고민할 틈도 없이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부랴부랴 마트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난 곧 박스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떨고 있는
네 마리의 작은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몸집,
아직 붙어있는 마른 탯줄,
세상을 보지도 못한 꼭 감은 눈꺼풀,
그리고 엄마의 품을 찾는 듯 서로의 몸에 바짝 붙어 미약한 울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고양이를 길러본 적 없는 나의 경험따윈 상관없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살려내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된 2주간의 육아는 정말 처절했다.
두 시간마다 알람을 맞추고, 분유를 타서 먹이고
배변 유도를 위해 엉덩이를 부드럽게 문질러줘야 했다.
네 마리를 돌보다 보니 그야말로 쳇바퀴같은 육아였다.
첫 번째 아이를 다 돌보고 난 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아이까지 돌보고 나면
어느새 훌쩍 2시간이 흘러 다시 첫 번째 아이 차례가 되어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아니 매정하게 단 한 순간도 쉬지않고 계속해서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
끝없는 육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체온 유지였다.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없는 이 작은 생명들을 위해
온도계를 설치하고 핫팩을 넣어주고 보들보들한 담요도 함께 덮어주었다.
너무 뜨거워도, 너무 차가워도 안 되는 온도속에서
아이들은 그래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2주가 흐르고,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그것은 바로... 다묘 고양이 집사인 어떤 분이
아이들의 육아를 맡아주시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심지어 그 집에는 아이들을 케어해 줄 유모 고양이까지 있다고 하였고,
이렇게 어린 아이들의 여러 번 돌 본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고양이를 처음 기르는 나보다는 경험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진짜 고양이가 엄마 역할을 해주는 곳으로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더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을 그 집사님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잘 돌봐달라며 부탁을 하고 돌아서며
마치 친 자식을 어디에 버리고 온 것만 같은 마음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2주 밖에 안 되는 시간동안 그 작은 아이들이 나에게 전부가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나의 욕심도, 눈물도 참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3일만에 비보가 들려왔다
건강해 보였던 첫째와 셋째가 별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연락 한 통에 나의 하늘은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아이들을 돌보던 그 집사님도 큰 절망감에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나도 더 이상 그 남은 두 아이들을 그 집사님께 맡길 수 없었고,
그 집사님 역시 나에게 다시 돌려보내길 원하고 계셨다.
결국 나는 급히 남은 두 아이를 다시 데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탈장이 있는 상태로 태어나
가장 약했던 막내는 끝내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결국 홀로 남은 한 아이,
그리고 그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떠 나를 바라보았다.
모든 동물은 처음으로 눈을 떠 바라본 대상을
엄마라고 여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그 아이는 나를 엄마라고 믿었고,
심지어 자신이 고양이라는 정체성까지도 잃고
그저 나의 딸이라고 여기며 살게 되었다.
그 아이가 바로 나의 첫 고양이 김나농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추운 2월의 마지막 날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나는 심한 우울증과 무기력을 가진 염세주의자였다.
하지만 김나농을 기르며 나는 변화해갔다.
건강한 삶을 꿈꿨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자 노력했다.
예상치 않게 한 생명을 구하려다가 오히려 나는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김나농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사랑의 무게와 책임의 의미,
그리고 작은 생명 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와 고양이들의 이야기
지금은 12마리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끌벅적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김나농과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추위 속에서 떨고있던 작은 생명을 품에 안은 그 순간부터,
나의 진짜 인생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김나농,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너로 인해 지금의 우리 가족이 있을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