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농이가 바꿔놓은 나의 우주
2012년, 그 당시 나는 꽤나 망가져 있었다.
예술대학을 다니며 사회의 부조리, 정치적 신념,
인권 등에 목소리를 높이며 꽤나 의식있는 대학생인 척 했지만,
실상은 그저 술, 담배에 절어 염세적인 일상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잇따른 친구들의 자살로 인해
나의 세상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고 말았다.
삶은 의미없는 것이되어버렸고,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채
그저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여간 걱정했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텅 비어버린 나를,
부숴져버린 나의 영혼을 다시 이어 붙일 순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나에게 나농이가 왔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털복숭이,
그 아이는 엉망진창의 모습인 나를 엄마라고 믿었고,
그 무한한 신뢰와 애정의 눈빛에
나는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느꼈다.
이 작은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온전한 인간이어야 했다.
내가 무너지면, 이 아이도 무너지고
내가 망가지면 이 아이 역시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2시간마다 울리는 알람이 귀찮거나 힘들기는 커녕,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삶의 리듬이 되었다.
온도를 맞춰서 분유를 타는 순간,
잘 먹었으면 잘 싸야한다는,
한 번도 내 입에선 나와보지도 못한 소리를 하면서
배변을 유도하던 나의 손길,
비틀비틀 거리며 걷는 모습에 혹여 넘어지기라도 할까,
걱정 반 대견함 반으로 바라보던 나의 시선.
나농이의 하루는 곧 나의 하루가 되었고,
나의 삶은 곧 나농이를 위한 것이 되었다.
나농이가 잠든 순간이면,
사람으로서도 부족한 '사람 엄마'가 혹여
이 이쁜 고양이를 '고양이답게' 기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인터넷과 서적 등을 뒤지며 예쁜 고양이로 자라는 법을 공부하곤 했다.
(물론 훗날, 김나농은 '사람답게' 자란 고양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술 담배에서 헤어나오진 못하고 있었다.
물론, 나농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하진 않았지만
어느 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담배 진이 몸에 묻으면 아이에게 해롭다는 것이었다.
사실 술은 끊어도 담배는 못 끊을만큼 애연가였던 나였지만,
고민하고 말고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도 없었다.
나는 그날로 당장 담배를 끊었다.
몇 년간 손에서 잠시도 놓지 못했던 담배였지만,
나농이를 위해서라면,
내 새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 세상의 담배란 담배는 다 없애고 싶을 정도였다.
또 하나의 변화는 나농이와 함께 갈 수 없는 곳이라면
나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과는 달리
반려동물 출입 가능 공간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이동장에 넣은 아이조차 잠시도 매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나는 종종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무슨 피해를 준다는건가요?!
심지어 가방 안에 넣어서 보이지도 않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억지스럽고 부끄러운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참 이해가 안 되고 억울하기까지 했던 심정이었다.
내 새끼가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니...
그리고 찾아온 또 다른 변화.
밖에 있는, 길 위에 있는 길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농이와 함께 지내며 고양이의 습성과
그들이 필요로하는 것들을 알게 되니,
거리에서 홀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지 보이기 시작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는 아이들,
아파서 웅크리고만 있는 아이들...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동일한 모습으로 길에서 살아갔을 나농이의 모습이 보였다.
자연스럽게 나는 길아이들의 밥을 챙기게 되었다.
처음엔 한두 마리였지만,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늦은 밤에도 밥을 들고 나가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밥을 챙기는 내 모습을 보면서
주위 사람들은 또 다른 걱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우울증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나를 필요로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의 죽음으로 인해 무너졌던 세상이,
사람들의 배신으로 깨어졌던 나의 마음이
작은 털복숭이들을 통해 다시 회복되고 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농이는 단순히 나의 첫 번째 고양이가 아니다.
그 아이는 내 인생의 구원자였다.
망가져 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작고도 위대한 기적이었다.
그 아이가 내게 보여준 무조건적인 사랑과 믿음 앞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술과 담배, 세상에 대한 비관과 신세 한탄 대신
나농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길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나의 인생은 아주 크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천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지금 12마리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내 일상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농이가 내게 가르쳐준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작은 생명들에 대한 나의 연민과 애정이 지금의
묘묘한 인생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