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픈 이별의 이야기
나농이는 다행히 무럭무럭 잘 자랐다.
그 작은 털복숭이는
어느새 내 삶의 중심이 되어 있었고,
나는 어디든 나농이와 함께 다녔다.
그 당시 나는 엄마의 옷 가게에서 함께 일하며
나농이와 출퇴근을 함께 하였다.
나농이는 가게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는데,
마치 자신도 그것을 알듯이
나의 어깨 위로 올라가서
자신의 미모와 귀여움을 잔뜩 뽐내곤 했었다.
그런 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사실 처음엔 그에게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 당시엔 연애도 별 관심이 없었고,
그 남자가 특별히 나의 이상형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내가 가던 길냥이 봉사 활동에 함께 가겠다고
말하면서 조금씩 나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새 차를 뽑았는데도
나농이와 함께 이동할 수 있게 차 바닥에 고양이 화장실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남자들에게 처음 새로 뽑은 차란, 어떤 의미인지 알지 않는가
그런 차 바닥에 모래로 된 화장실을 만들어 주다니...
결국 그 남자는 그 정성으로 나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 남자와의 연애 역시도 늘 나농이와 함께였다.
데이트 장소도 나농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으로만 골랐다.
카페도, 음식점도, 야외 데이트를 즐기며 나농이와 함께
이동할 수 있는 곳들로만 찾아다녔다.
그는 불평 없이 나농이와 함께하는 데이트를 받아들였고,
나 역시 그런 그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나농이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고양이에게 사춘기가 왔다는 것은,
중성화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뜻과 같다.
심란한 마음으로 나농이의 중성화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그 남자친구가 어디서 인가
길고양이 TNR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온 것이었다.
TNR은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과 복지 향상을 위해
길고양이를 포획 후 중성화 수술을 하여 원래 장소로 방사하는
국가 프로그램이다.
중성화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하고, 중성화를 한 길고양이임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한쪽 귀를 살짝 커팅 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TNR이 아닌 일반 고양이의 중성화는 그 당시
남아는 17만 원에서 20만 원, 여아는 25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였다.
슬프게도 길냥이의 중성화와 일반 가정이 있는 고양이의 중성화는
수술 과정은 같지만 입원이나 후처치 등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은 마음 아픈 현실이다.
어쨌든 내가 나농이의 중성화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건
비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모든 걸 다 나농이에게 맞추는 내가
비용으로 고민을 하고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TNR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온 그가 입을 열었다
"나농이를 길냥이인 척하고 TNR 인가 뭔가 그걸로 수술하면 되겠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농이의 귀를 자르고, 길냥이인 척 연기를 시키라고?
심지어 그건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물론 그는 고양이를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었고,
단순히 돈을 아끼려는 순수(?)한마음에서 나온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과 배신이었다.
그 순간, 그에 대한 모든 감정이 사그라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우리는 헤어졌다.
아마 그는 지금도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를 것이다.
나농이에 대한 TNR 발언(?)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한편으론 내가 냉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고양이에 대한 무지함에서 나온 말을 했을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나에게는 나농이를, 아니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웃픈 이별이었다.
하지만 만약 지금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또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내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끝내 함께 할 수 없을 테니까...
그것이 나의 사랑에 대한 기준이 되어버렸다.
고양이 때문에 시작된 연애,
그리고 고양이 때문에 끝난 연애.
조금은 웃프기도 하고, 조금은 과하기도 했던 짧았던 순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더 지극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소중한 것들을 함께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