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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그날, 차 밑에서 시작된 인연

by 묘묘한인생

별다를 것 없는 어느 날 오후였다.

잠시 편의점을 가려고 나왔던 나의 귓가에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길냥이 중 하나가 밥을 달라고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앳된 목소리였다.

"너는 누구니?"

나는 차 밑을 들여다보며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곳에는 뽀얀 털을 가진 삼색 고양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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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길냥이라고 하기엔 품종묘와 섞인 듯 조금 긴 털,

독특한 삼색 패턴, 커다란 눈망울에

독특한 아이 컬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를 보곤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아이의 발바닥 패드부터 확인해 보았다.

핑크색의 뽀얗고 깨끗하고 만질만질했다.

길생활을 하던 아이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누군가 우리 집 앞에,

내가 길고양이 밥을 주는 이곳에

이 아이를 버리고 간 것이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거라고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무턱대고 이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갈 순 없었다.

16살의 노환을 겪고 있는 진돗개 두희와

한 살도 되지 않은 나농이의 위험한 동거를

진행하고 있던 상황에서

또 한 마리의 고양이라니...

갑작스럽게 새 식구를 맞이하기엔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이미 내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있었다.

다리 사이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그 눈빛은 마치

"저기요, 저를 좀 데려가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어린 눈망울에서 저리도

간절함이 느껴질 수 있다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아이와 그저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로 그때, 나와 아이의 곁에 노숙자가 발걸음을 멈추고 섰다.

"어? 뭐야? 고양이네? 야옹야옹, 이리 와봐"


그 순간 덜컥 겁이 났다.

혹시 내가 이 아이를 외면했다가 누군가에 의해서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순간적으로 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그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냅다 뛰어 들어가고 말았다.


결국 나는 반쯤 포기한 채 이동장에 아이를 넣고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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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내 예상과 일치했다.

이 아이는 방금 전까지도

집에서 생활했을 법한 발바닥 패드를 가지고 있었고,

아마 길에 버려진 지는 3-4일 정도 되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배가 많이 고프고 아마 많이 지쳐있을 상태일 거라고...

항체 검사를 진행했는데 이 아이의 몸에는

그 어떤 항체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5-6개월 정도 된 아이에게 항체가 없는 건 흔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예방접종을 하고, 건강 관리를 잘 한 뒤에 충분히 건강해지고 나서도

이 아이의 경우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중성화도 진행해야 하는 정도라고 했다.



그렇게 그 아이는 얼떨결에 우리 집식구가 되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김나농은 생각보다 치사한(?) 아이였다.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려는 본능이 강했던 걸까?

아니면 고양이를 싫어하는 아이였을까..

새로 온 아이를 창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김나농은 하루 종일 창틀 아래에서

아이를 감시하며

"야, 너 거기서 내려오지 마!!"라는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숨 막히고 치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삼일 정도 창틀에서 모든 걸 해결했다.

밥도, 물도, 잠도, 심지어 화장실까지

나는 창틀에 밥그릇, 물그릇, 담요,

화장실까지 놓아주었다.

불편하고도 치사한 원룸 펜션 같은

창틀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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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둘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농이는 처음으로 고양이라는 생명체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고양이라는 것보다는 엄마의 딸,

나의 딸로만 생각하고 살아온 나농이에게

그 아이는 자신과 다르지만 같은 첫 번째 친구였다.






그 아이에겐 "김나나"라는 새로운 이름이 지어졌다.

그리고 나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가족을 갖게 되었다.









버려졌다는 상처로 움츠러들어 있던 마음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창틀에서 내려온 나나가 조심스럽게

나농이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뭉클함을 느꼈다









그렇게 나농이와 나나는 가족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나와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그 아이가 우리 집 앞 차 밑에 있었던 것도,

내가 그 순간 지나간 것도,

노숙자 아저씨가 말을 걸어준 것도

어쩌면 이 모든 게

우리가 가족이 될 운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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