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무용無用론과 제도만능萬能론의 사이 어딘가>(2)

by L Etrangerr

이 글은 해당 글에 대한 답신의 성격에서 작성되었음을 우선 알린다.

1편:


그럼 이제 억울한 제도의 변호인으로 돌아와 보자. 공감하고 넘어갈 부분은 제도는 그 본래의 의도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점, 그리고 행위자의 행동 양상은 제도(외부적‧형식 규범)보다 문화(내부적‧비형식 규범)와 더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제도는 여전히 유의미한가. 제도의 실질적인 기능 두 가지를 언급해보자.


제도의 역할,


먼저, 제도는 일종의 ‘공증’ 역할을 한다. 이 경우는 문화 또는 관습이 선제적으로 발생하고 이를 후차적으로 ‘제도’라는 형식으로 공인화(성문화) 하는 경우다. 예를 들자면, (비록 현대에 와서는 탈규범화 됐지만)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문화권마다 존재하는 장례 및 제사 예법은 한때나마 가장 강력한 강제성을 가진 문화이자 규범이었다. 하늘에서 정해준 게 아닌, 특정 집단이 꾸준히 지속해온 의식이 문화가 되고, 어느 시점에서 가서는 전 공동체를 아우르는 제도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심지어 동양의 어떤 옛나라(?)는 상복의 착용 기간을 두고 왕권의 정통성을 논하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이 기능은 중요하다. 더 넓어진 활동반경, 파편화 된 집단 및 세대경험 속에서 ‘문화’는 통합의 기능보다 충돌의 양상이 점차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과열되는 문화 간의 충돌은 제 3자의 중재 또는 양자 간 합의에 의한 제도화로 잠정 해소할 수 있다. 이렇게 기존의 문화를 제도로 공증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확립하는 방안은 역사를 통틀어 존재해 왔고, 현장과의 괴리도 비교적 낮은 편이라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 이런 경우 신경써야 할 부분은 정기적인 개혁을 통해 제도와 문화 간의 괴리가 벌어지지 않도록-즉, 문화지체를 방지-하는 것 정도다.


다른 한편으로, 제도는 사회의 계도 및 통제를 목적으로 기존 사회 질서에 철퇴를 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집행기관의 일방적 의도로 강제 이식된 경우, 앞서의 경우에 비해 필연적으로 강한 반발을 마주하게 되고 이는 언뜻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짚어볼 점은 그럼에도 제도는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향이 의도된 방향이든, 아니든. ‘제도’라는 외부적 압력이 가해지는 만큼 집단은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이게 되어있다. 18세기 프랑스, 농경학자 앙투안 오퀴스탱 파르망티에가 서민들의 감자 소비를 통제함으로써 오히려 감자에 대한 소비욕구를 부추겼고, 그 결과 식용감자의 대중화로 이어진 사례는 강제적 지침이 유발하는 반발감을 명석하게 역이용한 유쾌한 사례 중 하나다. 만일 시행 이후 별다른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적용 집단이 가해진 압력에 정확히 반하는 방향과 크기로 대응했기 때문이다(다른 케이스도 있지만, 그 경우는 추후 논의하도록 하자). 관찰 결과와는 별개로, 제도는 분명하게 집단의 생활양식에 여파를 끼치는 사회적 구성요소다.


이런 지점들을 종합해 봤을 때, 제도무용론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사회, 즉 근대국가 체제 전반에 깔린 관료제와 제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 본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관료제가 여전히 ‘국가’와 ‘기업’ 같은 대형 집단의 가장 효율적 운영체제임을 고려한다면 ‘제도’는 괄시의 대상이 아닌 더욱 심도 깊은 연구대상이 되어야 한다. (원글의)글쓴이는 ‘고위 공직자의 제도 유린/월권 가능성’을 근거로 제도의 한계성을 지적했지만, 필자가 느끼기에 해당 사안에서 ‘제도’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글쓴이가 지적한 바는 실상 삼권분립 체제의 불균형과 이로 인한 견제 실패와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제도의 실효성을 논하기에 앞서 삼권분립의 본 취지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5년 단임제의 폐지가 삼권분립의 회복과 정상화로 귀결될 것인지 우선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원래 이 글은 여기서 끝나진 않는다. 뒤에 이어졌어야 할 내용은 '제도 철폐론'에 대한 회의적 입장과 제도 철폐 기준에 대한 논의를 다루고자 했지만 글쓴이의 역량 부족으로 차마 끝을 맺지 못하여 잠정 중단한다. 글쓴이의 부족한 역량과 늦어진 답신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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