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해당 글에 대한 답신의 성격에서 작성되었음을 우선 알린다.
https://blog.naver.com/jahoon03/223999181702
위 글은 최근의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를 골자로 진행 중인 개헌 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치명적인 상흔을 남긴 두 건의 대통령 탄핵, 그 각각의 전말을 고려했을 때 제도의 개편-개헌-으로는 권력자 개인의 일탈과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제도는 초법적 지위를 가진 공직자의 의지에 따라 무력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위정자 본인의 자체적 노력, 정당 내부의 자정 작용,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견제 등, 행위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관행처럼 굳어져 문화로 자리 잡는 것이 바람직하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라 보고 있다.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고, 단순히 ‘정치 제도’의 개편으로 국한 짓지 않는다면 한 단계 확장된 차원에서 더 다양한 논의들이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아 공유된 공간으로 옮겨와 답을 남긴다.(공유를 허용해준 ㅈㅎ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필자의 입장을 우선 밝히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도는 (문화 못지 않게)실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를 주장하기 앞서, (주장과는 별개로)위 글이 근거 삼고 있는 두 건의 ‘대표 사례’에 대하여 일견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기에 그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우리는 제도의 한계 내지 실패를 읽을 수 있을까. 분명 그들은 헌법 질서에 가장 충실해야 하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력을 남용해 헌법 질서를 유린했다. 하지만 이 둘의 사례를 ‘제도무용론’으로 귀결짓는 것에 대해선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단지 두 건의 사례가 지나치게 특수하며 근거로 삼기엔 표본이 부족하다는 이유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의 사례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웃프게도 우리나라 민주사를 돌이켜본다면 민주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한 기간보다 그렇지 못한 기간이 더 길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들’을 상기해 보자. 그들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면서도 한편으론 꾸역꾸역 제도를 고쳐가며 오랜 기간 호가호위 해왔다. 그들에겐 이미 무소불위의 권력이 있었음에도 꾸준한 입법과 개헌을 시도해 온 것은 그 ‘제도’에서 정당성과 명분이 비롯되기 때문이다. 독재의 시작은 제도의 허점을 빌미로 시작되지만, 그 존속은 제도의 장악을 통해 이뤄진다. 이러한 점에서 비추어 본다면 두 차례의 탄핵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건 소수의 ‘비선실세’와 그들에 의한 ‘국정농단’이 있었다는 사실이지만, 내포된 함의를 들여다보면 그들이 (이전 사례들과는 달리)체제를 온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퇴장이 ‘가장 고도로 형식화된’ 제도와 절차에 따라 진행된 사실은 오늘날 제도의 공고함을 반증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실패를 되려 ‘문화의 실패’로 해석할 여지 또한 있다. 제도가 인위적으로 유형화해낸 형식이라면, 문화는 집단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추상적 산물이다. 문제는 대통령 선출은 겉으로는 제도적 형식을 취하지만, 실질적으론 문화적 과정이 깊게 개입한 ‘현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한 국가의 수장이나 되는 자는 그 나라의 시대정신을 투영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비록 내가 그 사람을 뽑지 않았더라도, 과반 이상의 득표를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전반적인 여론의 동향을 읽을 수 있다. 최악이 아닌 차악에 투표하는 양상이었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한 고려사항마저 길게 중첩된 경선 과정 속에서 여과되고 반영되기 마련이다. 한 나라의 수장을 선출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투표는 짐짓 합리적 판단에 기반한다지만 그와 동시에-개인의 취향 혹은 선호 같은-주관적 영역 또한 개입한다. 특히 근래의 팬덤 정치 양상을 본다면 그 수준이 역전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공교롭게도 그 둘의 경선 과정을 되짚어 보자면 그 둘 또한 ‘신드롬’의 큰 수혜자였다. 18대 대선 당시엔 지역 갈등과 세대 갈등이 지배적 담론이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형 언론사들은 연일 자극적인 사례들로 지역 갈등과 세대 갈등 프레임을 구축했고, 당시 가장 강한 파급력을 가졌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파격적 기행들은 이를 뒷받침하기 충분했다. 세대와 지역감정으로 양분된 구도, 거기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라는 독보적 프리미어를 가진 박 전 대통령은 타겟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당선되었다. 윤 전 대통령은 그보다 더한 수혜를 받았다. 이전 정권에 대한 강력한 반감과 기성 정치인에 대한 회의감, 2030 남성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안티-페미니즘 양상이 아무런 경력 없는 ‘정치 신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의 정치 입문부터 당선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보고 있자면 그는 가히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순수한 ‘이념체’ 내지 '심볼Symbol'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의 행보는 그를 구성하는 이념과 지지층의 니즈에 충실해왔고 그 최종적 행보가 ‘그런’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러한 지점들을 살펴봤을 때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문화’가 마냥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인지 의구심이 든다.
주장 없이 반박만 하다 끝나는 듯하지만, 이어가기엔 글이 너무 길어져 이쯤에서 끊어 간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논의 주제인 ‘제도’에 초점을 두고 글을 전개할 것이다. 다만 내용은 ‘정치 제도’에 국한되지 않고, 주로 ‘정책’의 관점에서 글을 서술하면서 나아가 작은 단위의 조직 내 규범까지도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럼 투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