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가족의 추억을 위해 '미국으로 아이를 독립시킨다'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이 처음이신 분들은 [1화]부터 보기를 추천한다.
오늘은 누나와 함께 출발하지 못한 동생의 이야기다. 아들은 출발 시간이 조금 늦어졌을 뿐이지, 반드시 갈 예정이다. 그때까지 학업적인 부분을 어찌 진행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이었다.
1. 언어 공부
언어를 잘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 교과서와 관련된 전문 용어 영어를 익힐 것.
2. 학업 준비
입학할 미국 학교의 커리큘럼에 맞춰 기초 과목 복습할 것. 가능하면 유학 갈 학교에서 사용할 교재나 참고 자료를 미리 구해서 예습해 둘 것.
위 사항은 공부 좀 꽤나 한다는 선배 맘으로부터 추천받은 내용이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저것들을 무시했다. 어차피 미국 가면 배울 것들인데 미리 한국에서 하는 게 무슨 소용 있냐는 아들의 말에 설득당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배경엔 나의 친척 동생이 있었다. "삼촌도 20살에 와서 어려웠는데, 살면서 영어랑 스파니쉬랑 자연스럽게 다 되더라 " 영어 하나 못하는 아이에게 겁먹지 말라고 격려차 해 준 말을 무슨 비법인 양 아들은 꾹 믿고 있었다.
언어 공부도 중요하지만, 준비로 인해 아들과 관계가 나빠지는 게 더 싫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있을 순 없었다. 아들이 꾸준히 배우는 건 미술 학원이다. 엄밀히 따지면 개인이 작은 교습소 형태로 가정집에서 운영하는 거다.
예전부터 큰 미술학원으로 옮기자고 설득을 했으나,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며 아들은 반대를 했었다. 이것만큼은 엄마가 양보할 수 없으니, 방학 기간만이라도 다녀보자며 체험 수업을 신청했었다.
" 엄마, 나 여기 다닐래 "
가정집이 아닌 전문 미술 학원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많은 학생들이 유리창 문 사이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디지털 드로잉, 유화, 연필 등 다양한 주제의 교실들이었다. 열심히 무언가 끄적이면서 몰두하는 형아 누나, 그리고 동년배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대형 미술 학원으로 옮긴 후 아들은 많은 변화를 보였다. 경쟁을 통해 그림 그리기에 욕심이 생겨났고, 그것은 동기 부여가 되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고, 실력도 향상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그런 말씀을 하셨나 보다.
큰 물에서 놀아라
단순히 아들의 그림 실력 향상을 위해서 미술학원을 옮긴 건 아니다. 이주 전, 교육청에서 열린 학부모 회의에 참석했다. 처음에는 기대감이 컸지만, 회의가 진행될수록 여러 가지 우려가 생겼다. 특히 2025년부터 시행될 디지털 기기 도입 정책에 대한 논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교육청 관계자들이 디지털 기기의 도입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온라인 학습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개인 맞춤형 학습이 가능해진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문제들이 있다고 느꼈다.
영어, 수학을 시작으로 국어, 정보 과목으로 점차 확대 시행할 거라 한다. 노트에 연필을 꾹꾹 누르고 틀리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과정에서 뇌는 생각을 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논리적 사고를 하게 된다. 이것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스티브잡스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태블릿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영어 수학으로 전자기기 필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국어 논술 등 장문의 필기 글쓰기를 과연 좋아할까? 그 괴리감은 어떻게 채워야 하는 걸까? 가보지 않은 길이라 시행해 보면서 개선해 나가겠다는 교육청의 설명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교사와 학부모의 시각이 확연이 차이가 났음을 느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이미 시범운영 중인 학교의 여러 데이터를 보여주었는데, 그중 한 아이의 데이터가 흥미로웠다. 학습량은 0인데 성적은 100이라면서 기기오류가 아닌 장애우였다는 거다. 최첨단기기이니 걱정을 말라는 뉘앙스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일부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선행학습이 이미 완벽히 된 아이의 경우, 학습 없이 시험 성적이 저렇게 나올 수 있지 않냐였고, 이로 인해 사교육이 또 한 번 변화되면 그것은 누가 감당하는 거였다.
질의응답 시간에 교육청 관계자 답변은 "그럴 수도 있다"였다. 코로나로 인해 학습량이 부족한 세대를 위해 일부 국가는 디지털이 아닌 연필(펜)로 글쓰기 교육으로 역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왜 그러지 않을까?
교육청의 기술 도입 정책에 따라 에듀테크 기업들이 성장하고, 이들이 사교육 시장에 다양한 혁신적인 설루션을 제공하게 된다. 결국 '돈'이다. 회의장을 나오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게 되면, 솔직히 기본적인 학습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적절한 관리와 지도가 이루어진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지만, 교육장을 나오는 엄마들의 의문 가득한 표정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었다. 여러 학부모들은 디지털 기기 도입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2025년 교육의 변화를 실제로 사교육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가정 교습소에서 벗어나서, 대형 학원으로 옮긴 거였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교육변화와 상관없는 미술 학원이라는 점.
앞으로 어떤 식으로 교육 환경이 변화될 건지 의문투성이지만,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방향과 새로운 사교육 영역이 탄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는 모든 부모들의 동일한 마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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