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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Mar 22. 2022

<그러라 그래>  양희은 에세이

리스닝 북  220318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상큼하지 못했던 내 몸이 먼저 날씨를 말해주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예전엔 코웃음 쳤어도 지금은 꼭 맞는 정답 같은 말이 있다. 어른 말 그른 것 하나 없다는 말.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더 많이 후회한다. 무릎이 아프면 날이 궂다는 이야기는 무슨 전래동화 속 이야긴 줄 알았지만, 지금은 그 말 또한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오늘 같이 흐리거나 비가 내리면 내 몸인데 내 몸 같지 않은 느낌을 십중팔구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비는 그쳤지만 세상은 여전히 곰탕같이 뽀얀 담요를 뒤집어쓴 채였다. 해가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허긴 겨우내 열 일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바람은 겨울같이 쌩쌩 불어젖혔다. 창이 울고 있었다. 겨울이 작별 인사를 고하는 것이 싫었던 것일까.

아파트 앞 화단에서는 하얀 목련이 피고 있는데, 이미 온 봄과 치덕치덕 미련의 꼬리를 끊지 못한 겨울이 아웅다웅 다투기라도 하는 걸까. 흐린 바람에서는 겨울과 봄의 냄새가 섞여있었다.



 



<그러라 그래> 양희은의 자전적 에세이다. 제목에서 왠지 양희은의 향기가 나는 듯하다. 직접 본 적도 없고 콘서트 한번 가본 적 없지만, tv에서나 가끔 보고 라디오에서나 가끔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윌라에서 들은 에세이다. 그래서 조금 아쉽다. 내 청력의 기억력이 얼마큼인지 알 수 없고 또 도무지 신뢰도 가지 않아서 말이다. 하지만, 듣고 싶을 때 언제든지 또 들을 수 있으니 뭐 괜찮다.


낭독자들 또한 다양해서 듣는 재미도 있다. 재미라고 표현하기에는 송구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여하튼 양희은 본인을 비롯해서 이성미, 김혜영, 박미선, 최유라, 김신영, 김나영, 송은이 등이 낭독에 참여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셈이다.




저자가 서른에 암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잡지였는지 신문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활자를 통해서 봤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그녀의 살아온 삶 중에서도 큰 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드문드문 여기저기서 그녀의 인생 이야기들이 조금씩 귀로 눈으로 흘러들어와서 생소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게 양희은이라는 가수는 나이를 잘 먹지 않았다. 늘 떠오르는 모습은 통기타와 함께였고(그 시절의 내가 보았다기보다 세월이 흐른 후 방송에서 보여준 이미지가 각인되어서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27세 어디쯤에 멈춰있는 것만 같다. 올해 칠순이라고 하는데 도무지 할머니가 되지 않는다.


먼저 살았고 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경청하게 된다. 철 모르던 어린 날의 나였으면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은 무조건 잘 듣게 된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어른들 말 그른 거 하나 없으니까.


에세이를 들으면서 나는 내 삶의 시간들을 양희은의 지나온 시간들 어디쯤에다 슬며시 겹쳐보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 갈 길이 멀기에 나의 시간들을 지나선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의 미래를 그려보게도 했다.나를 미리 그 시간들 위에 세워보기도 했다. 내 나이 칠십일 때 나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정말 늙는 게 좋아질까 하는 고민들을 하면서.


책에는 저자가 말한 가을빛의 굴절처럼 다양한 삶의 굴곡들이 녹아있다. 죽을 만큼 힘에 부쳤던 지난날들과, 인연들과, 가족과 노래에 대한 이야기들.

노래는 언제나 넘어야 하는 높은 산이라고 말하는 그녀, 힘들었던 날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에너지는 결핍이었다는 그녀, 13살에 서른아홉의 아버지를 떠나보냈던 장례식과 국화꽃에 대한 회상, 먹고살기 위해 택한 노래, 남편과의 만남, 치매 어머니, 킹박, 가족이었던 반려견 미미와 보보 등 하나같이 양희은의 이야기들은 살랑대는 봄바람처럼 내 가슴에서도 나풀댔다. 아픔은 아픔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따뜻함은 따뜻함대로 그렇게 감정 따라 흔들렸다.


자꾸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기분 좋은 덤처럼 위로를 내게 얹어놓기도 했다. 푸근한 엄마가 '괜찮아, 그러라 그래'라며 내 등을 토닥이는 튼실한 손바닥같았다. 아마도 그녀가 걸어온 길이 우리와 다르지 않고 낯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먼 이야기가 아닌 내 이웃의 이야기 같아서 일 것이다.


양희은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녀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한계령, 내 님의 사랑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이 특히 좋다. 며칠 전 아파트 단지 화단에 피고 있는 하얀 목련을 보면서 양희은의 노래가 떠올랐었다. 목련을 볼 때면 자주 떠오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지금은 더 화사하게 만발해 있겠지. 봄의 시간은 다른 시간보다 조금은 빨리 흐르니까.


나의 길들을 쭉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디쯤에서는 양희은과 만난다. 앞으로 쭉 걸어갈 내 길에서도 어디쯤에서는 양희은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쯤에 나는 다시 돌아보면서 이 책을 떠올리게 될까.

몹시도 궁금해진다.





늘 긴장된 상태인데다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나의 이십 대. 서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면 두발을 땅에 딱 딛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흔들림은 여전했다. 하지만 십 대나 이십 대와는 다르게 나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 세월만큼 버티고 선 느낌이랄까? 사십 대가 되니 두렵고 떨리게 했던 것들에 겁이 조금 없어졌다. 더 이상 누가 나를  욕하거나 위협할 때 파르르 떠는 새가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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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대가 되니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옳다거나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누가 별난 짓을 해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노래에도 관객의 평이 모두 다르듯 정답이란 게 없었다. 그러니 남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했다. 60세를 넘기니 흔들릴 일이 드물어졌다. 그토록 원했던 안정감인데 이런 감정이 좋으면서도 한편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설렘과 울렁거림이 없이 침잠된 느낌이 들어서다. 몸이 움직이는 속도가 마음의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니 예전 같으면 후다닥 해치울  일들이 한 뼘씩 느려졌다. 어느덧 칠십. 나이 먹는 게 좋다.

                                                                                    - 흔들리는 나이는 지났는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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