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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Jan 14. 2023

비와 아이

'첫' 1




아이는 우산도 없이 골목에 주저앉았습니다.

눈물인지 빗물이지 모를 물들이 아이주위를 맴돌았고 이윽고 그 물들은 아이를 감싸 안았습니다.









아직은 온몸이 으슬대는 바람이 날리는 쌀쌀한 날, 엄마의 잔소리가 귀를 뱅뱅 돌며 노래를 부르는 통에 아이는 가까스로 눈을 떴습니다.

비가 오는 날 아이는 잠이 고픕니다. 자도 자도 졸렸습니다.

엄마는 학교가기를 재촉합니다.

아이는, 학교 가기가 싫어서 늑장을 부립니다. 오래 세수를 하고 오래 책가방을 챙깁니다. 오늘따라 유독 아이는 학교 가기가 싫습니다. 엄마의 익숙한 노랫가락이 점점 고조를 이룹니다. 꾸역꾸역 집을 나서고 대문을 나섰지만 한 발짝도 더 나가질 않습니다. 엄마에게 나 아프다고. 오늘만 학교 안 가면 안 되냐고 엉엉 울면서 얘기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골목을 벗어나면 양쪽으로 구멍가게와 만화가게가 있습니다. 아이는 자주 가던 만화가게를 힐끗 쳐다봅니다. 이른 시간이어서였는지 가게는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엄마 몰래 만화 가게에서 시간을 죽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골목을 벗어나면 큰 공터가 있습니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는 넓은 공간입니다. 비 때문인지 땅은 짙은 황토물이 지천이었습니다.


아이는 골목 끝에서 공터로 열리는 자리에서 또다시 철퍼덕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따라 너무너무 학교에 가기 싫었거든요. 숙제도 다 못했고 준비물도 챙기지 못했거든요. 선생님한테 혼이 날 것이 너무나 자명했거든요.

비는 속수무책으로 내리는데 아이 마음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흙탕물에 옷은 다 버리고 가방도 다 버리고 눈에는 눈물로 가득 버려졌습니다. 이제 1학년.

아이는 학교라는 세계가 무섭기만 했습니다.


일부러 더 큰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저만치 멀지 않은 대문 안쪽에 엄마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엄마가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 나오길 기다렸으니까요. 온몸이 빗물인지 눈물인지에 젖어 목까지 쉬어버릴 때쯤 드디어 엄마가 왔습니다.


아이는 내심 반가우면서도 더 열성을 다해 울어 젖혔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엄마도 우산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몸을 일으키고 가방을 손에 들려주며 학교로 아이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아이는, 그제야 자신의 혼을 불사른 연기가 통하지 않은 걸 알고 체념합니다. 학교로 가는 길은 멀고도 길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가지 않으면 엄마한테 더 혼이 날 걸 알았기에 비를, 눈물을 옴팍 뒤집어쓰고 학교로 무거운 한 발을 내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울에, 봄이 내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비가 내린 후, 새벽의 도시는 짙은 안개에 갇혀 다른 세상 같습니다. 봄이, 꽃들이 시간을 잃고 허둥대지 않아야 할 텐데 괜한 걱정이 듭니다. 계절이 사거리에서 길을 잃은 듯 서성댑니다. 겨울은 겨울인데 봄인가 싶기도 한 날들입니다.


황량하고 까끌거렸던 시간이 길었습니다.

비가,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가 투덜댔던 그날의 낭창대던 비처럼 오래 낭창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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