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만트라
공자님은 틀린 것 같다. 종심(從心), 공자님은 일흔이 되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고 하셨다. 그럼 나이 70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가? 아니다. 오랜 기간 배우고, 반성하며, 제대로 수양을 쌓아야,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바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나이 70, 격랑의 세월을 헤쳐오며 삶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그런데 내가 마음대로 하면 문제가 있나 보다. 아내는 수시로 나에게 잔소리한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 안 되나요?”
대학 1학년 때, 유명 인사의 교양강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진(眞) 선(善) 미(美)”라는 강의를 들었다. 그 후 ‘참되고 착하며 아름답게’는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 중에 ‘참’에 더 중점을 두며 살고 있다. 참되고 착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달리 생각하면 무척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긍지를 느끼며, 수시로 나에게 최면을 걸어가며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 태도가 가끔은 스트레스가 되고 나를 옥죈다. 자연스럽게 남에게도 이를 요구하고, 그들이 그러하지 않으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업을 마치면서 선생이 되었다. 무엇보다 참된 선생이 되고 싶었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철저한 원칙주의자’ 나는 40여 년 이를 자부심으로 사회생활을 하였다. 정년퇴직 전, 마지막 수업을 한 후에 학생들로부터 손 편지를 받았다. 쑥스럽지만, 이 중에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글을 간단히 소개하면 “초·중·고·대학을 다니면서 들었던 수업 중에 가장 좋은 수업이었다”이다. 보람을 느꼈다. 학생들이 깐깐한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내 마음이 통했나 보다.
좌우명은 이어진다. 퇴직 전, 코로나 덕분에 강의를 위해 동영상 콘텐츠 제작하는 법을 배웠다. 퇴직하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안을 찾다가 유튜버 활동을 하기로 했다. 행복 대한민국, 참되고 착하며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취지의 공익 채널을 운영했다. 그 이름은 ‘레츠고하이’ 콘텐츠의 주 내용은 ‘원칙을 지키는 삶’이었다. 콘텐츠를 작성하려면 원칙에 어긋나는 남들의 행동을 찾아 기록하고, 촬영하여야 했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상처를 받았고, 원칙을 고집하는 직업병이 고개를 들었다. 지적하고 고치려고 했다.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갔다. 이를 안쓰럽게 지켜보는 아내가 한마디 한다. “잘 못하면 병이 될 수 있어요. 유튜버 그만두는 게 어떤가요?” 나는 아내 말을 잘 듣는 편이다. 결국 채널을 닫았다. 그만두기를 참 잘했다. 그 때문인지 요즘 주위 분들은 “내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라고 한다.
은퇴 후 5년째이다. 삶의 무게가 많이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사회생활 할 때는 흔히 말하는 명예, 권력, 재력을 위해 경쟁하고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와 고통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거의 없다. 하루 대부분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진다. 내가 시간의 주인공이다. 그러니 남의 눈치 볼일이 거의 없다. 아내 눈치만 보면 된다. 이제는 좀 느긋해져도 될 것 같은데 쉽지 않다. 아직도 생활 속에 원칙을 지키지 않는 이상한 일을 만나면 마음이 편치 않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도 지금은 아내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무단횡단, 새치기, 얌체 운전 등과 같은 자잘한 것을 만나면 그냥 ‘그러려니’ 하며 웃어넘긴다. 하지만 마음속 팽팽한 줄다리기는 수시로 진행된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평온해 보이는데 내 마음은 세차게 요동친다. 40년 넘게 입어온 '원칙'이라는 갑옷이 자꾸만 살을 파고든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공공기관으로부터 꼭 참석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OO 강의에 참석하였다. 시간이 지났는데 강사님이 오지 않는다. 잠시 후, 차가 막혀 조금 늦는다는 안내를 한다. 그날 이분은 1시간 늦었다. '강의의 기본은 시간 엄수 아닌가.' 목 끝까지 차오르는 원칙을 삼킨다. 그럴 수도 있나?
우리 아파트 중앙 통로는 안전을 위해 전동스쿠터, 전기자전거, 오토바이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를 알리는 표지판도 있다. 배달 오토바이가 보행자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자랑스럽게 질주한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저러나'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많이 바쁜가?
한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핸드폰 스피커를 켜고 유튜브를 본다. 좁은 공간이라 그런지 유난히 소리가 거슬린다.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저렇게 모르나' 심장이 빠르게 뛴다. 깜빡 잊었나?
그때마다 나를 다독이는 것은 아내의 목소리다.
“'그러려니' 해 봐요.”
즐겁게 연습하고 또 해 보자. ‘그러려니’, ‘그러려니’
공자님이 옳았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난 나이 70이지만, 아직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안 된다. 오랜 기간 남의 입장은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내 주장만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수양이 덜 되었다. 더 쌓아야 한다. 나의 종심은 아마도 팔순쯤에야 가능하려나 보다. 다짐한다.
‘그러려니’ ‘그러려니’
아니, ‘그러려니’ 만으로는 부족하니 이제부터는 하나 더하자.
‘그러려니’ 하고 '하하'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