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에서 발견한 고귀한 사랑
1990년대 초반, 스키는 스포츠이기 이전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특별한 신분이자 멋이었다. 한겨울, 도심 번화가를 걷는 어느 여자의 옷차림이다. 형광 핑크와 노랑이 뒤섞여 만드는 화려한 무늬가 가득하고, 털이 풍성한 모자가 달린 상의를 입었는데 벨트로 허리를 꽉 조여 허리선을 강조했다. 주위 사람들 시선을 단숨에 훔친다. 스키복을 입은 것이다. 자랑하는 듯하다. 계절은 겨울을 한참 지나 여름에 다가가는데도 그 멋은 계속된다. 차 지붕에 스키 캐리어를 얹고 도로를 달린다.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반팔 차림에 목도리를 두른 듯 생뚱맞은 풍경이다. 왜 그럴까? ‘나는 스키어다’라고 과시하는 듯하다.
그 무렵, 내게도 스키를 탈, 폼 잡을 기회가 생겼다. 스키 강사인 친구가 '스키를 제대로 가르쳐 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스키 애호가였던 동생에게 방수 장갑부터 스키까지 모든 장비를 빌려 동행했다. 스키 부츠 신는 법부터 넘어지는 연습까지 자세히 배웠다. 처음에는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스키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이내 눈 위를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쾌감을 맛보았다. 어색함과 긴장이 점차 미소로 변했다. 드디어 일행과 함께 초급 슬로프로 가는 리프트로 향했다. 안전요원의 안내에 따라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발아래 펼쳐진 순백색의 슬로프는 거대한 도화지 같았다. 정상에 가까워진다. 스키가 바닥에 닿는 순간에 엉덩이를 살짝 밀어내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라고 배웠는데, 넘어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몸보다 앞섰는지, 나는 일어나면서 그대로 넘어졌다. 놀란 안전요원이 언성을 높여 한마디 한다.
“아저씨는 스키는 좋은데 왜 그러세요.”
동생 스키가 제법 비싼 것이었나 보다.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가까스로, 정말 가까스로 슬로프를 내려왔다. 눈 위에 남은 것은 간신히 버텨 낸 흔적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스키를 타지 않았다. 도화지 위에 더 이상 선을 긋지 않기로 했다.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스키는 많이 대중화되었다. 손녀도 스키를 배웠는데 무척 재밌다고 한다. 겨울방학을 앞둔 손녀에게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뭐야?”하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스키를 타겠다고 한다. 손녀의 스키를 핑계로 우리는 겨울 여행을 떠난다. 나는 무엇을 할까? 숙소를 예약한다. 스키 리조트 안의 숙소가 편한 것을 알지만, 국립자연휴양림 전도사인 나는 스키장 주변 휴양림의 숙소를 선택한다. 좀 불편하기는 해도 경제적이면서도 한적한 겨울 운치를 온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엇을 할까? 기사 노릇을 한다. 요즘, 제철 스키장의 스키하우스 주변 주차는 절대 쉽지 않다. 먼 곳에 주차한 후, 장비 들고 손녀 챙기며 이동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차라리 내가 휴양림과 스키 하우스를 왕복 라이드 해주는 것이 편하다.
식구들과 장비를 스키하우스에 내려주고 홀로 주차장을 향한다. 가까운 곳엔 분명히 자리가 없다. 아예 미련을 버리고 빈자리가 쉽게 보이는 먼 곳으로 간다. 주차 후, 한참을 걸어 들어선 스키하우스는 활기가 가득하다. 손녀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숙소에서 스키복을 입고 나섰는데도 아직도 준비가 한창이다. 하긴 헬멧부터 간식까지 준비할 것이 산더미다. 이제 플라스틱 재질의 투박하고 딱딱한 스키 부츠를 신겨야 한다. 아들은 손녀를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손녀에게 발이 편안한지를 여러 차례 물어 가며 버클을 풀고 채우기를 반복한다. 옆에서 보기에 무릎 꿇은 아들이 힘들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아들은 손녀에게 발가락으로 가위바위보를 해보라고 한다. 제대로 신겼나 보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긴 준비를 마쳤다.
신기한 상황을 보았다. 바로 옆에서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스키 부츠를 신는다. 아들이 손녀에게 하듯이,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아이 엄마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렵게 스키 부츠를 신긴다. 그다음에 아이 엄마, 아빠는 각자 알아서 신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의 엄마가 자리에 앉고 그 앞에 아이 아빠가 무릎을 꿇고 앉아 아내에게 스키 부츠를 신기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와’하며 ‘아내를 무척 사랑하나 보다’ 했다. 마음속 깊이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계속 보고 있기가 멋쩍어 주변을 돌아보니 군데군데 같은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발등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혹은 발목이 꺾이지 않을까 염려하며 남자는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한다. 그 모습이 경건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 자세는 은빛 슬로프 위에서 만드는 어떤 멋진 폼 보다도 아름다웠다. 은빛 겨울이 연출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사랑의 풍경이었다.
스키를 마치고 온 손녀의 하루를 듣는다. 중상급 슬로프에서의 활강, 넘어졌던 순간, 그리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이야기까지. 이어서 손녀의 하루를 본다. 스키 동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핸드폰 액정에 빨려 들어간다. 손녀의 설렘, 속도, 자유를 보았다.
문득, 아까 보았던,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상대의 발치로 몸을 낮추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 아름다운 마음들을 생각할수록 마음이 환해진다. 은빛 ‘눈’ 위에서 진정한 사랑을 보았다. 은빛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