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Wild

시애틀 헌책방에서

by 민금술사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한 순간들,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 풍경들을 한 컷의 사진과 짧은 글로 기록합니다.
(이 연재에 실린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촬영한 순간들입니다.


"How wild it was, to let it be."


흘러가듯 내버려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wild라는 단어는

늘 나를 부릅뜨게 한다.


어딘가를 향해

다시 마음의 시동을 걸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사실 다른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났던 문장이었다.


그때 마음 깊이 접어 두었던 그 문장을,

시애틀의 작은 헌책방에서

문득 다시 떠올리게 된 순간이 있었다.


서가 사이를 무심코 지나가던 길에

문득 눈앞에 들어온 낡은 책 한 권.

Into the Wild.


알래스카로 향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

이 역시 영화로 만들어졌던 이야기였다.


학교와 직장, 사회가 준비해 둔

보장된 경로를 뒤로한 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


내가 나의 숨을 찾고자

자연을 찾아 걷기 시작하던,

바로 그 무렵 영화로 처음 접한 이야기였다.


망중한의 심정과 결심으로 떠난

가족과의 잠깐의 여행.


그러나 나는

완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여전히 다가올 일들의 긴장에 붙들려 있던

어딘가 애처로운 시간 속에서,


머나먼 타국의 도시

시애틀의 작은 헌책방에서


하필이면

그 영화 속 이야기가 담긴

그 한 권의 책이,


거짓말처럼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가족들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손짓을 보내면서.



돌아보면 그때 나는 꽤나 지쳐 있었다.


먼 길을 건너 여행을 나와 있었지만

마음까지 완전히 떨어져 있지는 못했던.


경험해 보지 못한 큰 일을 앞두고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시기였다.


일을 하다 보면 그런 때가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삶의 박자가 아니라

일의 리듬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듯한 시간.


사람들을 만나고, 상황을 읽고, 조율하고

방향을 정하고, 다시 다음 일을 준비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이어진다.


그 무렵의 나도 그랬다.

오랜 시간을 긴장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겉으로는 가족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여행이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일의 생각들이

당연한 듯, 그러나 소란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연의 자신을 찾기 위해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 한 사람의 이야기.


하지만 그 여정은 결국

자연 속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결말로 끝난다.


낭만적인 탈출이라기보다는

생동하는 삶을 향해 스스로를 밀어붙인

어쩌면 무모한 선택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영화를

단순한 자유의 이야기로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방향을

다시 묻게 하는 이야기로 기억한다.


완전히 떠나는 삶을 꿈꾸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 속에서

잠깐 멈추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역할과 책임,

긴장과 피로 속에서

버티며 앞으로 나아가는 반복.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아무 예고 없이

이런 장면을 만나게 되는 것은.


지나가던 길에서

내가 어떤 속도로 살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잠시 돌아보게 만드는

매서운 순간의 배달일 것이다.


그날 시애틀의 작은 헌책방에서 마주친

그 책과의 조우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왜 하필

그 순간이었을까.


왜 하필

그곳이었을까.


반가움과 아쉬움,

고마움과 안타까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 To be continue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