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페달을 밟고 나서

삶 속의 싱코페이션

by 민금술사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한 순간들,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 풍경들을 한 컷의 사진과 짧은 글로 기록합니다.
(이 연재에 실린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촬영한 순간 들입니다.)
어떤 순간은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진다.


망중한의 순간이 좋다.


몰아붙임과 릴리즈가 있는 일상이 좋다.


박자가 있는 삶,

싱코페이션이 있는 인생이 좋다.


몰입과 압박의 시간 뒤,

등가로 얻곤 하는 소박한 해방감,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나서는

고단한 시간과 여정이 좋다.


분주한 우리의 삶의 발밑에,

늘 낭만과 행복이 붙어있기를.


3일간 죽도록 밟은 페달 밑에도,


덕지덕지 붙어있기를..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메모를 다시 꺼내 읽는다.


계획된 휴가라기보다,

거의 충동에 가까운 출발이었다.


일의 속성상 나를 위해 길게 비워두는 시간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더 늦추고 싶지 않았다.

자전거를 정비해 최소한의 짐만 챙긴 채,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다.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던 만큼 마음도 단순했다.

그저 며칠만이라도, 지금과는 다른 리듬 속에 몸을 두고 싶었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길 위에 올랐고, 3일 동안 약 240킬로미터를 달렸다.


첫날은 가볍게 돌아가던 페달이, 둘째 날부터는 다리 안쪽을 서서히 조여 왔다. 몇 번의 자빠짐과 그에 따른 작은 찰과상들, 길 위에는 그날의 흔적들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힘이 일정하게 빠져나가는 느낌이 분명해졌다.


허벅지 깊숙한 곳에서부터 묵직함이 내려앉으며, 움직임은 점점 단순해졌다. 더 갈 수 있는지, 아니면 멈춰야 하는지. 판단은 그 두 갈래 사이를 느리게 오갔다.


그렇게 계속 움직이다 보니 오히려 주변이 또렷해졌다. 바람이 밀려오는 방향, 해 질 녘 길 위에 번지듯 내려앉던 빛,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밑창을 통해 올라오던 잔잔한 진동. 무언가를 남기려 애쓰지 않았는데도,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쌓여 갔다.


우리는 보통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지만, 그 며칠 동안에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무언가를 더하려 하기보다 덜어내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고, 애써 채우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시간이었다.


완주라는 결과는 남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그때의 리듬이다. 일정하게 이어지던 호흡과 반복되던 페달의 각도, 그리고 그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던 바람의 결.


그래서 가끔 그날의 메모를 다시 읽게 된다.


우리가 찾고 있는 쉼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인지,

아니면 몸을 충분히 써낸 뒤에 비워지는 어떤 상태인지.


그 여정의 끝에서

나는 잠시 후자에 가까운 상태를 지나왔던 것 같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힘이 빠진 뒤에 남는 가벼움 같은 감각이었다.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또렷하게.


나는 여전히

그 장면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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