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기록
늘 생활하던 곳에서 벗어나 다른 장소로 여행을 가는 것은 많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정신없이 기차 시간, 미리 화장실 갔다 올 타이밍, 타는 곳을 머릿 속에서 계산하며 끝없이 업무처리하는 고생을 왜 사서 하는지 머리가 아파온다. 일련의 과정 뒤에 안심하는 마음으로 기차 좌석에 풀썩 앉았다. 드디어 '여행'이라는 단어가 설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객실 안의 낯선 향수, 샤워 젤 등의 냄새가 뒤섞여 나는 것을 맡으며 드디어 내가 낯선 어느 곳으로 떠난 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결혼 생활 동안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한 달 이상씩 많이 머물렀던 서울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시댁식구들과 남편, 아이의 눈치를 보면서 나의 본래 모습보다 밝은 톤으로 둥둥 떠 있었던 동네. 나의 본래 모습으로 이 곳을 여행목적으로 다시 오니 나는 참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종종거리면서 역할놀이를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 곳의 지리를 제일 잘 아니 여행 가이드 역할은 해야 했지만, 그래도 내 본래 모습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다지 들뜨지도 않고, 이성적인 본래 나의 모습.
항상 서울에 오면 드는 생각인데 이 많은 청춘들이 안쓰럽다. 물론, 자신은 충분히 행복한데 그런 생각이 들면 미안하지만 밝고, 웃는 얼굴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과연 자의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과거에 여러 권력과 자본에 얽매이면서 끌려다니던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있어서 내가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행 기간 동안 더운 데 지하철 역까지 걷고, 많은 곳에서 긴 줄을 섰다. 지방에서 항상 차로 편하게 이동하던 딸 아이는 걷는 동선을 최소화했음에도 짜증을 부렸다. 항상 우리 딸에게 하는 말인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몸이 고되지 않으면서 경험을 많이 얻는 여행은 없다. 평소의 생활 사이클과 다르게 생활하는 것은 많은 긴장감과 마음의 혼란을 준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하게 얻어가는 배움도 있어 여행은 그 과정에서 성숙하게 하는 것은 틀림없다. 우리 딸은 그래도 다음에 또 여행을 하겠단다. 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