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온 라캉으로부터의 편지1.
저의 독자이자 수강생들의 고민을 추려보던 중에 저의 저의 내밀한 고민을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고민이기도 하지만 저의 독자의 고민이기도 할 것입니다. 라캉을 만난다면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공부를 하며 답을 찾아 나서는 과정 자체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라캉을 만난다는 가정하에 만나기 전에 서면으로 먼저 지혜를 구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나의 고민을 먼저 풀어본다면 이 또한 나의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답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서울에서 보낸 편지)
라캉 님! 답답한 마음에 파리로 건너가 만나뵙기전에 편지를 띄웁니다. 저는 20년 넘게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을 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기 위해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어요. 대기업에서 조직화된 일의 한 부분만을 담당하다가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고 해결해 나가기란 쉽지 않아 자주 좌절하고 일어서며 고군분투 중입니다. 1인 기업가로서 개인 브랜드로서 나를 알리고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회사로 다시 돌아가기는 싫습니다. 자유롭게 일하며 내가 만든 콘텐츠와 브랜드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브랜드를 사이에서 선택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선택받고 싶지만 애쓰는 만큼 제대로 되지 않아 불안하고 조바심이 납니다.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할수록 더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파리에서 라캉으로부터 온 편지)
리부트님 안녕하세요. 파리에서 만나 뵙기 전에 편지로 먼저 답변을 드리게 되어서 저도 좋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혼자 많은 일을 감당해 내시느라 애 많이 쓰셨네요. 그 와중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런 깊은 고민을 하시는 시간을 가지신 것도 격려해드리고 싶네요. 1인 기업가로서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가고 계시지만 이 과정 자체가 리부트님에게 브랜드로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처방을 드리기 위해 여러 편의 편지를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첫 편지에서는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기"라고 이름 붙이겠습니다.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는 것이란
아이들을 키우신다고 하시니 잘 아실 겁니다. 아이는 처음 태어나면 생존하기 위해 엄마만 바라보고 엄마가 삶의 전부라고 느끼고 매달리지요? 성장이 덜 된 아이는 엄마를 자기 자신과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에게 의존하면서 엄마와 동일시하게 됩니다. 바로 그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엄마의 욕망대로 사는 삶이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거울을 보게되고 거울 속 이미지를 자아로 통합하게 됩니다. 그렇게 정체성을 만들어 성숙해 가는 거울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아이는 거울 속 이미지를 마주하면서 외부 공간에서 나타나는 자신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그때 커다란 환희와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르시시즘의 시작이죠. 거울 속에 비친 완벽한 이미지를 자신의 모습이라고 지각하고 현재의 자아상으로 가져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아이는 아직 운동신경과 조절능력이 부족하여 몸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이때 실제 몸의 미숙한 감각과 거울에 투영된 이미지의 괴리가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 차이를 덮어버리는 은폐를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아가 형성되도록 도와주는 시기 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현실의 내 모습과 상상하는 이미지와의 괴리 때문에 인간은 불안함을 느낍니다. 인간의 성장단계에서 불가피한 영역입니다. 우리 현실세계에도 깔려있는 양면성이 있기도 하지요.
엄마를 나와 동일시하며 엄마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거울단계처럼 현실에서 실제 나는 불완전하고 서툴지만 완벽하고 이상화된 이미지를 그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요즘 시대에는 SNS 속에서는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완벽하고 멋진 부분만을 조명하게 되잖아요. SNS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나의 한 부분인데 그것을 나의 전부라고 통일된 상으로 가져오게 되면 그 부분에서 괴리가 클 것입니다. 아이의 거울단계처럼 처음에는 SNS에 비치는 나의 모습에 도취되어 환희와 안도와 만족을 느끼는 단계가 있거든요.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포함한 모든 것은 자아가 투영된 거울
거울단계를 아이가 상상하는 이미지를 통해서 자아를 형성하기 때문에 상상계라고 합니다. 이런 타자적인 이미지의 역할을 저는 '이마고'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마고는 거울에 비친 모습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마주하는 어머니의 얼굴이나 자신의 능력과 모습을 거울처럼 확인시켜 주는 모든 세상이 이마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리부트님이 지금 마주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나 능력 또는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포함한 모든 것은 자아가 투영된 거울처럼 이마고가 될 수 있겠죠.
이렇게 우리는 이마고를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다시 거울단계를 떠올린다면 거울을 보면서 현재의 미숙하고 부족한 나와 상상으로 만들어진 거울 속의 이미지와는 당연히 괴리가 있고 모든 인간이 거쳐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 차이로부터 인간은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상상계에서 오래 머물면 주관적인 착각과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나의 서툰 모습을 받아들이고 미숙함을 인정한다면 그 괴리감이 조금은 줄어들 것입니다. 현재 느끼는 불안은 스스로가 원하고 상상하는 이미지와 현재의 내 모습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차이가 커서 불안감으로 더 완벽한 모습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나를 채찍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세요.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은 거울 단계를 거치고 상상계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취해서 나르시시즘의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단계에서 실제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상의 이미지만을 쫓다 보면 평생 만족을 모르고 나를 몰아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원하는 모습이 아이가 엄마를 동일시하면서 가졌던 엄마의 욕망처럼 타인의 욕망으로 원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세요. 엄마가 원하는 틀에 맞추어 살려고 했던 아이처럼 세상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타인의 욕망을 중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보세요.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만나는 현재의 부족하고 불완전하며 서툰 현재의 모습도 인정하고 받아들여보세요. 더 나아갈 용기가 생기실 겁니다.
제가 몇 가지 처방을 드린다고 했는데 그중 첫 번째 제안에 대한 편지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다음 편지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 파리에서 자크라캉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