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나타나면 비웃는 시대

성해나의 "혼모노" 에 대한 진지충의 책 리뷰

by Souve

0. 진짜가 나타나면 비웃는 시대

언어는 시대의 무의식을 드러낸다. '진짜가 나타났다', '혼모노'와 '진지충', '긁?', 'T발 씨야?'로 이어지는 조롱의 언어들이 우리 일상을 점령했다.

복잡해진 현대 시대,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단순함을 갈망한다. 16가지 유형으로 인간을 분류하는 MBTI의 유행이나, 트렌드에 대한 과민한 반응이 그 증거다. 단순함에 대한 합리화를 위해 그러지 않은 사람을 보면 미움이 생기는 게 아닐까. 굳이 어려운 노력을 들이고,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자기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을 보면 조롱하기 바쁘고, 진지하면 미움받기 쉬운 세상이다.


1. 혼모노

혼모노 (ほんのも, 本物 - 반대는 니세모노 にせもの, 偽物)

일본에서 '진품', '장인'을 뜻하던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정반대의 의미로 전락한 채 쓰인다. 오타쿠를 거쳐 이제는 '눈치 없이 본인이 좋아하는 걸 늘어놓고, 쓸데없이 진지한 사람'을 조롱하는 인터넷 은어가 되었다. 언어는 사유를 담는 도구이며 동시에 사유를 규정하는 틀이다. 조롱의 언어들이 확산되면서 그것이 지칭하는 행위들이 실제로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한다. 감성을 '오글거린다'라고 하자 진정성이 사라졌고, 진지함을 '설명충'이라 하자 지식 나눔이 사라졌다.

이는 단순한 인터넷 현상을 넘어서고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의 '대안적 사실'이 통용되고, 정치에서 '가짜 뉴스' 논란이 일상화된 것처럼,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적 징후다. 진정성이 조롱받고 진짜를 찾기 힘든 이 시대에 성해나가 '혼모노'라는 제목을 선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2. 성해나의 "혼모노"

'혼모노'는 7편의 각기 다른 단편을 통해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진짜란 무엇인가?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의 주인공은 영화감독 김곤의 '찐'팬이다. 자기 계발서를 읽고, 무슨 음악이 나와도 크게 거슬리지 앉고, 취향에 무감각한 것을 편안하게 여기던 주인공은 영화감독 김곤의 작품을 보고 '찐'팬이 된다. 어린아이에 대한 가학적 행동으로 논란에 휩싸인 감독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며 진정한 팬임을 증명하려 하지만, 결국 감독의 진심 어린 사과를 보며 허무감에 '탈덕'한다.

김곤의 작품 Guilty Pleasure를 기반으로 한 길티 클럽에서 팬들의 사랑과 지지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고 지적 허영을 뽐내기 바쁜 (소위 아트씬, 컬처씬에 많은) 사람들과 무비판의 옹호와 지지를 하는 (사생이 연상되는) 팬 사이에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진짜와 가짜라는 화두마저 그저 남들과 달라 보이거나, 남들과 같아 보이기 위한 생존 전략이나 하나의 장치는 아닌지 많은 화두를 던진다.

한국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교포 3세 듀이는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매끄럽고 완벽한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 제프의 매니저로 일한다. 한국 전시를 위해 잠시 방문한 한국에서 듀이는 산책 겸 관광을 나갔다가 폰 배터리가 방전된 채 길을 잃는다. 그러다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휘두르는 노인과 그의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예상치 못하게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경험한다. '이승만 광장'을 떠돌아다니는 태극기 부대의 사람다움도, 제프의 작품도, 듀이가 느낀 한국도 시끄럽고 복잡한 것에서 떨어져 환원된 채 전달된다.

표제작 '혼모노'에서 갈등은 극명하다. 신이 떠난 박수무당 문수와 그의 신이 깃든 고등학생 신애기. 그의 유력 손님인 황보 위원까지 빼앗긴 문수는 굿판을 찾아가 피를 흘리면서도 춤을 추고, 지친 신애기가 먼저 쓰러지자 비웃는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신을 모시는 자가 진짜인가, 아니면 자신을 증명하려 피를 흘리는 자가 진짜인가? 작가는 답하지 않는다. 아니, 답할 수 없다. 아우라는 이미 떠났고, 남은 것은 흉내와 몸부림뿐이다. 그저 더 진짜인 척 버티면 진짜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3. 진짜 없는 시대, 그럴듯함의 승리?

리 매킨타이어가 그의 책 '포스트 트루쓰 Post-truth'에서 지적했듯, 탈진실 시대의 핵심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무관심'이다. 사람들은 객관적 진실보다 자신의 감정과 집단 정체성에 부합하는 '사실'을 선택한다. 믿고 싶은 것이 곧 집단의 정체성이며 소속감을 위한 유대이며, 진실이 된다.

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에코 챔버는 이런 현상을 가속화한다. 방 안에서 소리를 지르면 에코만 들리듯이, 알고리즘은 내가 반응 (댓글, 클릭, 좋아요, 공유 등)하고 좋아하는 메시지만 증폭시킨다. 클릭률이 좋은 콘텐츠는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더 빠르게 전파된다. 진실보다 '그럴듯함'이 더 강력한 힘을 갖는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가 만연하던 때 나는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트럼프는 백신은 가짜고, 마스크를 쓰는 것은 정치적 행동일 뿐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덕분에 대학원에서는 2년 내내 알고리즘과 에코 챔버, 대안적 사실, 정치와 미디어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트황상 덕분(?)에 책과 논문으로 공부하던 걸, 다이나믹하게 현실로 겪으

장 보드리야르 역시 이 현상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원본 없는 복사본(시큘라크르)들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시뮬라크르(모사물)가 실재보다 더 실존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SNS 속 큐레이션된 삶을 진짜 삶으로 착각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정보를 세계 전체로 오인한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세상처럼 기호와 이미지만 존재하고, 우리는 실재 속에 산다고 착각하고 있다. '스무드'에서 듀이가 태극기 부대 사람들에게 느낀 한국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손쉽게 대량 생산된 태극기와 성조기 배지를 통해 마음을 열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며 아우라가 소멸된 세계에서 맥락 없는 오브제가 얼마나 손쉽게 아우라의 빈자리를 차지하는지 보여준다.


4. 새로운 경험의 탄생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를 어떤 사물의 고유한 현존으로 정의했다. 사진과 영화를 통한 기술 복제가 이루어지며 아우라는 소멸하고, 이에 예술 작품은 종교적이고 권위적인 근거를 잃었다. 숭배와 경외의 대상에서 벗어난 예술 작품은 그만큼 대중들에게 가까워지고 이에 미적 가치를 띈 채, 전시의 대상이 된다. 새로운 경험의 탄생이다. '길티클럽'의 주인공의 김곤 감독에 대한 팬심도 그런 것처럼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복제 가능한 콘텐츠 속에서 신성화되었던 감정은 GV에서 대면한 감독의 진심어린 사과를 통해 무너진다. 거짓 아우라를 잃어버리고, 주인공은 허무를 통해 사실 해방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아우라가 소멸하고, 복제와 모방이 원본을 대체한 시대에서 사람들은 더 간절히 '진짜'를 찾는다. '혼모노'에서 형동생을 외치던 황보 위원이 신이 떠난 문수를 바로 손절하고 신애기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성해나가 포착한 현대인의 모습은 결국 진짜를 갈망하지만 진짜를 찾기 힘든 역설적인 상황에서 보이는 이중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혼모노'라는 조롱의 언어로 진정성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그 진정성을 간절히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누가 진짜 신을 모시고 있는지, 무엇이 진짜 사랑인지를 떠나서 등을 떠나서, 그저 진짜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일지도 모른다. 진짜를 찾기 위한 노력은 나의 인식이 얼마나 한정적이고, 불완전한 인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나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주변 상황과 정서에 따라 왜곡되고 편집될 수 있는지를 받아들이는 과정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한 과정을 통해서 진지충이라는 조롱을 감수하더라도, 질문을 멈추지 않고, 혼모노로 불릴지라도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신이 떠나고, 존나게 흉내만 내기 바쁜'이 세계에서 나다움을 증명하고 지키는 마지막 방법일지도 모른다.


5. 2025년 6월 가장 많이 팔린 책

'넷플릭스 왜 보나,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배우 박정민은 '혼모노'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였다. 단군 이래 최고로 각광 받는 한류와 넷플릭스 시대에, 1년에 평균 3.9권을 겨우 읽는 이 나라에서 누군가는 영화 극본 대신 책을 썼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진지하게 취향을 고집하는 것. 제목처럼 혼모노스럽다.

결국 탈진실 시대의 진실이란 어떤 하나의 상태나 소유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끊임없는 의심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 태도이다. 취향에 목숨을 걸고, 진지 빨고 글을 쓰고, 혼모노로 불려도 좋다. 우린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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