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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Aug 31. 2023

글을 쓰는 이유

기록을 담을 거야


글 쓸 때 프로그램 같은 거 돌려서 하는 거?


약속이 파한 후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친구 S의 차를 타고 가고 있던 길, 운전하던 S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챗GPT 같은 거 얘기하는 건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말에 “잘 써서.”라는 말이 돌아왔다. 아니야- 내 예전 글 봐봐.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깨달은 얼굴로 시선을 마주해서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1년 전의 솜씨를 알고 있는 S가 아주 오랜만에 내 글을 읽었다고 했으니 더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정말 1년 전의 내 글은 내가 읽어도 민망해지기 일쑤였다. 잘 쓰고 싶어서 화려하게 포장하려고 했지만, 정말 속은 비어 있는.. 빛 좋은 개살구랄까. 그런데 그게 또 너무 잘 보였다. 힘이 빡! 들어가 있지만 어디로 향할지 몰라서 난감해하고 있던 것도.


그때의 글을 생각하니 민망함이 올라오던 것도 잠시, 그 감정을 뒤덮는 건 신기함이었다. 프로작심삼일러라고 외치는 사람 중에 분명 탑일 거라고 얘기했는데, 서평까지 포함한다면 글을 쓴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시간의 흐름을 깨닫는 것도 잠시, 그저 이 상황이 재밌었다. 내 글을 챗GPT가 써준 걸로 생각하다니. 그 정도로 잘 썼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함까지 몰려왔다. 뿌듯함이라니, 예전이었으면 그 감정대신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을 것이다. 분명 악의 없는 말임에도 ‘내가 쓴 게 믿기지 않는다는 거야 뭐야, 나는 글을 못쓴다는 거야?‘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지금은 ‘내 글이 그만큼 괜찮았나?‘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하기까지. 느끼는 감정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내가 원래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었나?



물론, 답은 ‘아니’였다.

글을 쓰기 전의 나는 나를 제대로 바라볼 줄도, 그렇다고 받아들일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 칭찬마저 꼬아 듣고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글을 어떻게 시작했을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블로그였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좋았던 감정을 느꼈던 것도 무색하게 잊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 기억뿐만 아니라 감정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건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물론, 기록을 한다고 머릿속에 다 남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기는 것과 남기지 않는 것의 차이는 꽤 컸다. 그래서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서평이었기에 내 글이면서도 내 글이 아니었다. 감정을 남기더라도 객관적인 틀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주관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기 위해 조절했었다.


그 시작은 다른 SNS까지 이어졌다. 그때도 내 생각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을 더 담아내려고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기록을 쌓아갔던 그 시작이 한 생각의 끝에 닿았다. 나도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 뒤로 내 생각을 조금 더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건 생각과 다르게 쉽지 않았다. 서평에 익숙해져 버렸기에 책을 가지고 쓰면 뚝딱뚝딱 만들어내던 것도 잠시 내 생각임에도 머릿속에서 빙빙 돌기만 할 뿐 단어 하나도 글로 꺼내기 어려웠다.


글을 잘 쓰는 작가님들처럼, 거창하고 멋있게 쓰고 싶었던 마음이 꽉 차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꺼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아서 손가락이 얼었던 걸까. 생각보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기까지는 오래 걸렸고, 브런치작가 도전 또한 1월이 아닌 8월까지 미뤄버렸으니 말 다했지 뭐..





그런데, 그렇게 망설임이 가득해서 어려웠는데도 글을 계속 썼던 건 왜였을까?


사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많이 들었지만 내가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 그냥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왜 쓰고 싶은지 이유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글쓰기에 익숙해지고 루틴을 잡기 위해 알레 님을 따라 들어온 글루틴 챌린지에서 만난 이 주제가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이참에 한번 생각해 봤다.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통해 깊은 성찰을 하고 나를 비워내고 그 이상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이유는 확실히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니까 글 쓰는 게 더 어렵게 느껴졌다. 문장이 살아서 춤을 춰야만 될 것 같았다. 난 이제 웨이브 좀 만들어보는데 팝핀을 춰야 될 것 같은 부담감이라니..



그렇다면 뭘까?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아마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내 기록을 위함이 아닐까. 한 달 뒤일 수도 있고 반년 뒤일 수도, 혹은 1년 뒤의 내가 내 글을 보면서 이때 참 귀여웠네..라고 느낄 수 있는 딱 그 정도로. 지금의 나만의 시선으로, 내 속도를 즐기면서 솔직함을 담아 기록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바라보며 느낀 감정과 생각을 누구도 아닌 나만의 스타일로 담아내는 것.


지금은 그래서 글을 쓰는 것 같다. 그렇게 쌓인 기록을 통해 칭찬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인정하고 진짜 나를 알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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