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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Aug 21. 2023

일단, 전시회부터 가볼게요

즐길 기회를 놓치지 말자


 해야 하는 일은 쉽게 적는 반면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라고 했을 때는 망설이며 다른 사람들이 적은 리스트를 살펴보게 된다. 왜 우리는 내가 원하는 걸 적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신경 쓰게 될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 즉 동기부여를 위한 강력한 무기들로 하고 싶은 일 목록을 채워보세요. 동기부여뿐 아니라 여유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 당신의 기록은 꽤나 대단합니다 / 이경원





다이어리를 기록하게 되면서, 8월에 하고 싶은 일 목록 4가지를 적었다. 막연해서 언제 해야 할지 모르는 일들이 아닌 꼭 이번 달에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을. 모호한 것을 작성하지 않는 이유는 해야 할 일이나 귀찮은 마음에 다음에 할까? 하고 미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달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면서 적었는데 그중 하나가 전시회였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기분이 더 좋았던 날


사실 전시회는 매번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방문하지 않았던 건, 아무것도 모르는데 가도 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있었기 때문이다.


미술시간이나 세계사를 배울 때나 달달 외우기 바빴던 글자들은 수능과 동시에 하얗게 지워졌고, 전공도 아닐뿐더러 여유도 없어서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 더더욱 전시회와 관련된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지.



그랬던 내가, 원해서 가는 첫 방문이라는 그 설렘에 데이트 때나 했던 옷 뭐 입지라는 고민까지 했다.(결국 옷장에 있는 옷 꺼내서 편하게 입고 갔지만..) 거기다 다른 때는 혼자 잘 다니면서 미술관은 혼자 가려니까 왜 이렇게 어색한지.. 때마침 관심 있다는 동생의 말에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동생이랑 같이 갈 시간을 찾으려면 평일은 힘들어서, 주말에서 괜찮은 날짜를 찾는 것도 어려웠는데, 인기 많은 전시회라 그런지 예약이 꽉 차 있어서 예매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8월 내로 날짜를 찾았고, 오전 시간은 애매해서 오후 시간대로 예매했다.


그리고 당일날, 가는 길이 막힐까 여유롭게 출발했다. 사당 쪽에서 차가 막혀 시간이 좀 걸렸을 뿐,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좋아했는데 주차장에 차가 많아서 생각보다 주차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행인지 시작 전까지 시간여유가 좀 있어서 커피를 마셨는데, 불행인지 산미가 강해서 거의 못 마셨다.. 내 커피..



어쨌든, 못 마시는 커피는 뒤로하고 입장을 위한 번호표를 뽑았다. 그리고 입장 전 오디오가이드도 신청했다. 책에서 글로만 접하던 명화들을 실제로 보는 것도 있지만, 이왕이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보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동생과 사이좋게 하나씩 목에 걸고 입장을 했는데, 안에 사람이 정말 많았다. 자유롭게 다녀도 된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줄 서있는 사람들을 따라 벽에 걸린 명화를 봤다. 그리고 배경지식뿐만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명화를 봐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오디오 가이드 재생버튼을 눌렀다.


가이드가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자유롭게 보기에는 사람이 많은 것도 있고, 처음이라 그 전시회 자체를 즐기기보다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느라 한 장이라도 사진을 더 찍느라 바빴다. 어떻게 즐겨야 할지를 모르니 허리를 굽혔다 펴고 구도만 잡아서 사진만 찍느라.. 결국 출구로 나왔을 때는 머릿속이 하얗기만 하고 허리만 아팠다.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이 다양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직접 본다는 것에 사로잡혀 한꺼번에 다 담으려고만 했으니 오히려 더 뒤섞여서 기억이 흐릿해졌다.





그래도 생각이 나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 - 여인>과 <장 바티스트 그뢰즈- 여인>이다. 나는 분명 그림을 보고 있는데 꼭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드레스 표현이 꼭 만지면 촉감이 그대로 느껴질 것 같았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이 생생한 모습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액자 속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그 생생함도 생생함이지만 16세기와 18세기에 이런 옷을 입었고 나라는 걸 알게 되니 이 시대가 궁금해졌다. 특히 16세기에는 사치금지법의 규제로 부채 손잡이를 손으로 가려서 표현했다니.


아 이래서 전시회에 오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만 접했다면 분명 검은 건 글자고 하얀 건 종이라고 생각하고 궁금하다는 생각도 안 했을 것이고, 그 시야도 달랐겠지. 그림을 통해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걸 느꼈기도 하지만, 제대로 또 하나 배운 건 아무리 좋아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머릿속에 넣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림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은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몰라서 즐기지 않는 게 아니라 어쩌면 모른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즐길 기회를 날려버렸는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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