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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Sep 11. 2023

일단, 주말은 힐링했습니다

벤허 보고 왔다아


무엇을 기록해야 하냐고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세요.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기록해두기만 한다면요.

-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김신지


책을 통해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게 되면서 느낀 건, 기록의 소중함이었다. 내가 미처 남기지 못했던 그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스쳐 지나가면 희미해져 버릴 그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쓰기로 했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보물은, 어쩌면 휘발된 기억 속에 남겨진 것들이 고물이 되어가는 걸 막기 위해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라도 기록해서 남기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행복한 순간이라면 더 남겨야겠지.





나 왜 안 깨웠어?

오전 10시가 넘어가는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고 벌떡 일어난 내가 거실로 나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일요일이라 동물농장에 빠져있던 엄마 아빠가 무슨 소리냐는 듯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빠 : 우리 오늘 3시잖아. 아직 시간 많은데?

나 : 무슨 소리야. 오늘 오픈런한다고 했잖아.

엄마 : 우리 밥 먹었는데?



어제 오픈런이라고 얘기했는데 밥이라니? 엄마는 듣지 못했다고 얘기했지만, 그럼 어제 대답한 아빠는 또 뭐람?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황당함 반, 짜증 반의 기분으로 우선 씻고 준비하기로 했다.


지난주에는 주말에 모처럼만에 자는데 일찍 깨웠다고 짜증 내더니, 오늘은 또 자게 했더니 안 깨웠다고 짜증이라니.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입장에서는 참 알다가도 모를 딸내미일 듯.(엄마 미안..)



의왕에 있는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파스타집



그렇다면 오픈런이 무엇이냐. 우리 집에서 자주 사용하는 이 단어는 좋아하는 음식점이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서 가자는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였다. 우리가 자주 방문하는 맛집은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간 위치에 있는데도, 오픈시간에 가지 못하거나 혹은 타이밍을 못 맞추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는 곳이었다.


그래서 여기 말고 혹시 다른 곳도 괜찮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해서 여기저기 도전해 봤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가게 되는 곳이었다.


어쨌든 완전한 오픈런은 아니라서 오픈시간을 살짝 벗어난 시간에 도착을 했지만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편한 자리에 앉아서 주문까지 했다. 굳이 오픈런을 외쳤던 이유는, 오랜만에 다 같이 뮤지컬을 보기로 했는데 그 근처에서 맛없는 것 먹는 것보다(근처에서 먹으면 이상하게도 항상 맛이 없었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식당에서 먹고 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뜻대로 진행되지 않은 마음에 속상했던 것 같다.



 


그래도 밥을 해결하고, LG아트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날도 좋고 오랜만에 뮤지컬이라니 기대되는 마음에 뭉쳐있던 마음이 풀어진 상태였다.


시작 전 카페에서 대기하다가 드디어 바코드를 찍고 안으로 입장했다.





후기를 남겨보자면, 규현이 나온다고 해서 더 궁금했었는데, 어쩜 무대와 함께 어우러진 그의 목소리는 때로는 호소력이 짙어서 순식간에 그 안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의 보컬발성이 뮤지컬인지 가요창법인지를 비교하기에는 뮤린이라 알 수 없지만 나는 규현의 새로움을 맛봤던 무대였다. 그래서 끝으로 흘러갈수록 복수에 사로잡혀있었으나 그 안에서 흘러넘치는 감정이 느껴질수록 마음이 울컥했다.


에스더로 나온 최지혜 배우는 처음 보는데, 성량이 진짜 풍부하더라. 무대를 잡아먹는 느낌이라 다른 무대가 궁금해질 정도였고, 메셀라로 나온 이지훈 님은 진짜 넘버 부를 때 무대를 찢는 느낌이었다. 분위기에 압도된 듯한 느낌을 받은 것도 있지만, 그의 서사가 나온 순간 진짜 찐 주인공은 메셀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나온 배우들이 다 훌륭했지만 그럼에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옥살이를 하다가 한센병을 앓게 된 벤허(규현)의 어머니인 미리암의 넘버였는데 아들을 생각하며 기도를 하는 그 장면이었는데 그 절절함이 무대를 순식간에 장악해서 눈물을 계속 쏟게 만들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의상도 예뻤다. 특히 무대에서 펼쳐진 수중신은 진짜 감탄을 했는데, 유일하게 아쉬웠던 건 전차신이랄까. 가족 모두 전차신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할 정도라.. 그 장면을 제외하고서는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이 많았다.





진짜 전체적으로 압도당한 무대여서 역시 뮤지컬은, 아니 뮤지컬을 떠나서 문화생활을 자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새로움을 또 한 번 경험해 준 이 순간들이 또 이렇게 기록으로 남는 순간 계속 꺼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진짜 주말 힐링이었다. 다음 주말은 어떤 걸로 채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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