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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Sep 15. 2023

계속 이어질 거야

후배 K와 보냈던 시간


제 밑으로 후배가 들어왔는데 귀여워요.
꼭 저랑 샘 같은 사이가 된 거 같아요.


오랜만에 만난 K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꺼냈다. 이번달까지는 쉬고 다음 달부터 다시 제대로 공부할 생각이라며 시험준비를 하고 있는 K는 제법 중심이 잘 잡혀있는 모습이었다. 단단해진 느낌의 K를 보니 진짜 선배가 됐구나-라는 기특하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차올랐다.


저랑 샘이랑 일할 땐 후배가 없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후배가 생겨서 그런가, 꼭 샘이 저를 보는 기분으로 보고 있어요. 귀엽고 막, 샘도 저 귀엽게 보셨죠?


아아니? 내가, 널? 난 아닌데에?


장난 섞인 말투에 K가 곧바로 반응했지만, 그 반응마저 귀여워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곱창을 안주삼아 술잔을 부딪히면서도 너무 신기했다. 나는 H선생님께, 그리고 K는 나에게, K는 또 누군가로 차례로 이어지는 그 모습이.




내가 병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때였다. H선생님께 일을 배우고 독립해서 혼자 하는 일이 익숙해졌을 때쯤, 새로운 신규가 온다고 했다. 보통은 나보다 연차가 있는 선생님들이 프리셉터가 되기 때문에 무심코 넘기고 있었는데 세상에. 근무표가 나와 겹쳐있었다. 내가 누군가의 프리셉터가 된 것이다.


근무표를 보자마자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다. 누가 누구를 알려줘.. 나도 내 살길이 막막한데.. 쭈뼛쭈뼛 수선생님께 다가가 괜찮을까요?라고 질문했지만 걱정할게 뭐 있냐며, 딱 나 같은 사람으로 만들면 된다고 얘기하셨다.


믿는다는 수선생님의 미소에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지만 분명 삐꺽삐꺽 맞지 않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K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진짜 예뻤다. 쭉 뻗은 큰 키에 가녀리고 얼굴도 하얗고, SNS에서 피드를 휙휙 넘기다가 발견하는 모델처럼 생겼다.


무표정으로 있으면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였는데, 미소가 더해지니 강아지 같은 귀여운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사실 그때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누군가를 알려주는 역할이 되다 보니 나까지 더 긴장이 들어가 있어서 집에 오면 누워서 기억들을 증발시키기 바빴다.


더군다나 K뿐만이 아니라 그 뒤로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알려주다 보니 누구한테 어떤 걸 알려줬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으니. 나한테 잘 기억 안나다고 하는 H선생님과 똑같지 않나?


어쨌든, 그 흐릿흐릿한 기억들이 조금 더 선명해지기 시작한 건 둘이 따로 오프를 맞춰서 카페를 놀러 갔던 이후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사실, 둘 다 언제부터 친해졌는지 정확한 시점을 기억을 못 하고 있었지만 그럼 뭐 어때. 이제는 그냥 친동생 같은걸.



우리 둘이 좋아하는 최애 맛집인 곱창집!

 


저 근데 샘이 저 싫어하는 줄 알았잖아요.


술 한잔과 함께 K가 얘기했다.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니, 다른 선생님들은 질문들을 쏟아내기 바쁜데 나는 한 번도 사적인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비즈니스 파트너로만 보셨나 봐요! 진짜!


장난 섞인 말에 일만 잘하면 되지 뭐-라고 얘기하며 웃어버렸지만, 아마도 대인관계가 한번 일그러졌다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나아졌지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났을 때 선을 긋고 벽을 세우고 관찰만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한테 K는 새로운 사람에다가 일로 얽혀 있었으니 더더욱.  


K는 나중에는 오히려 사적인 질문들이 얽혀있지 않고 공적으로만 대해줘서 좋았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공적인 관계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둘이서 마주 앉아 사적인 이야기를 잔뜩 나누게 됐으니까.



바지락찜은 생각보다 맛있지는 않았다..

 


저는 들어온 후배한테, 샘처럼 해주려고요. 같이 드라이브도 가고, 술도 마시고. 잘해줘야지.


그때 내 운전실력 알지? 진짜 완전 초보인데 용인까지 어떻게 갔다 왔는지 몰라.


아 맞다. 근데, 저도 그러겠는데요? 저 끼어들기 못하겠어요.



차선변경도 어려워서 운전도 못했던 내가 어떻게 겁도 없이 용인까지 갔다 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같은 추억을 공유하게 됐다. 똑같이 초보운전으로 후배를 챙겨서 드라이브를 가겠다니- 똑같은 모습에 웃음만 나왔다.


그렇지만, 처음 만났던 5년 전과 다르게 훌쩍 커버린 느낌이었다. 그때는 정말 키만 컸지, 웃지 않으면 차가운 외모와 다르게 마음은 순둥순둥 여리기만 해서 후배들 중 제일 걱정했었는데, 어느새 제법 단단해진 마음이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아마 이 날도 시간이 지나, 그때 곱창집에서 했던 이야기들 기억나냐며 얘기하겠지. 그리고 또 마지막에는 사진 찍으러 가겠지. (근데, 이번 사진은.. 그냥 귀엽다고 하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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