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을 놓고 그린다는 것

수요일은 드로잉 시간

by 유하



작년에도 고민하던 것 같은데, 이제야 제대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주춤하게 될 테니까 바로 화실을 등록했다. 그리고 지난주, 첫 수업을 들으러 떨리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분명 자기 전에, 아니 그전에도 화실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며 20분이면 괜찮네! 했던 것도 잠시.. 첫출발은 아찔하기까지 했다. 비가 왔다. 많이...


새까만 하늘과 쏟아지는 비. 그리고 길눈이 어려워서 3번 이상은 가야 길을 덜 헤매는(?) 실력에 비가 와서 그런지 20분이 아닌 40분을 넘는 시간이 찍힌 도착지까지. 운전대를 잡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출발과 함께 흘러나오는 이클립스의 Run Run을 들으면서 내가 왜 더 일찍 안 나오고 여유를 부렸을까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행길은 초행길이고 비는 비였다. 아무래도 10시 도착이 아니라 아슬아슬 그 시간을 넘을 것 같다고 미리 연락은 했지만, 도착시간이 점점 10시를 사정없이 벗어났다.


겨우겨우 오피스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순간 등으로 식은땀이 쭉 흘렀다.

37층이라는데, 여기 27층밖에 없어.


빠르게 지도앱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는데, 옆 건물이다.. 주차 잘했는데, 아쉬움에 눈물을 머금고 빠르게 그 건물에서 빠져나와 제대로 된 장소에 주차하고 화실로 뛰어올라갔지만 20분 지각..


일찍 도착해서 화실을 구경하기는커녕, 들어가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있던 모든 수강생들이 쳐다봐서 민망함만 남았다. 오피스를 잘 못 알아서 다른 곳에 주차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았지만, 계속 부끄러움이 몰려와서 더 덥고 땀만 흘렀다.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그림을 그리면서 불규칙하게 뛰던 마음의 평안을 찾기는 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다음엔 꼭 일찍 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오겠다는 다짐만 가득했다.





그리고 오늘, 지난주의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일찍 출발했지만 아쉽게도 커피는 못 마셨다. 20분의 거리는 밤에 차가 없을 때였나 보다. 오늘도 어김없이 40분의 거리가 나오는 걸 보니, 오전에는 어쩔 수 없이 차가 막히는 구간인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주차장에 30분 전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화실로 올라왔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아서 지난주에 왔을 때 구경하지 못했던 화실 안도 구경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작품도 구경하고, 오늘 오시는 분들의 그림도 구경했다. 그림을 그리는 표현을 배우고 싶어서 소묘를 선택한 나와 다르게 다른 분들은 다 유화 혹은 수채화를 선택해서 그리고 있었다. 선생님 역시 소묘도 좋지만, 다양하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조언했지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평상시라면 그 조언을 듣고 나도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유화를 선택했을 텐데,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자체. 정말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 과정을 즐기고 싶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는 선긋기를 하고 명도표현을 하다가 다 못해서, 오늘은 지난주에 하던 명도표현을 마무리하고 그러데이션을 연습하고 도형을 그렸다. 도형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물의 기초가 되는 도형인 육면체와 원기둥, 구와 원뿔까지. 그 도형들을 그냥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닌, 기준선을 그리고 그 안에서 도형의 간격을 맞추고, 투시를 생각하고, 빛의 방향을 생각하면서 그리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이 과정이 어렵게 느껴졌다.


비율이 맞지 않아서 그런지, 묘하게 이상한 육면체를 다시 수정하고 그림자를 넣고 선으로 색을 표현했다. 색을 넣는 방법도 다양한데 도형은 그 특유의 질감을 살려주기 위해 선을 살려서 그린다고 했다. 아직 그 살려서 표현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삭삭삭하고 연필을 긋는 소리와 함께 고요해지는 시간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이래서 그림을 배우고 싶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평안한 느낌도 좋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그림을 배우는 게 처음이면서,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못할 수 있고, 이상하게 그릴 수 있는데도 육면체를 잘 표현해야지에만 꽂혀서 그리다 보니 과정을 놓치는 부분들이 생겼다. 그래서 오히려 육면체가 오히려 묘하게 이상해졌다. 밍밍한 느낌?


그 이상한 느낌을 바로 잡기 어려워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다시 육면체를 수정했는데, 기준선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걸 배웠다. 그리다가 이 기준선을 놓쳤구나.


다시 그 옆에 육면체를 그리면서 기준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은데,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서도 내 급한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을 조금 더 평온하게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도 좋지만, 과정을 잘 즐기자! 다음 주에는 육면체 마무리하고 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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