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코 히쿠치 특별전 : 비밀의 숲
오랜만에 동생과 전시회를 다녀왔다.
아침 일찍 다녀오자고 약속을 했는데 전날 늦게 잠들었더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전시회는 가야지, 침대와 더 붙어있고 싶어 하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동생이 오기 전 씻고 준비를 하니 그제야 잠이 좀 달아난 것 같다.
동생이 사 온 커피를 마시며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의미 없는 대화들이 이어졌었는지 정확하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스쳐 지나가며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 것 같기는 한데, 이 정도면 친한 남매지 뭐.
늦을까 했는데 그래도 전시회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오늘 더현대에서 만난 전시회는 <유코 히쿠치>의 작품들이다. 유코 히쿠치라는 작가를 잘 아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두세 달에 한 번은 방문해야지, 막연하게 잡았던 동생과의 약속에서 마침 눈에 들어온 전시회였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그런지 고양이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그림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고양이가 아닌 다른 분위기로 끌렸던 것 같은데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유코 히쿠치의 이번 전시회는 일본에서 10회의 성공적 투어 전시를 마친 <circus> 전시의 후속 편이자 다양한 주제들이 작가의 상상력과 결합해서 독특한 세계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독특했다.
독특하면서도 친숙하면서 낯설고, 아름다우면서도 무서웠다. 양면의 감정들이 제각각 날 서있게 한 작품이 아닌 어쩜 이렇게 조화롭게 표현을 해놨지? 감탄이 나왔다. 세계관도 독특했지만 그 세계관을 전혀 낯설지 않게 풀어내는 작가의 섬세한 표현력이 놀라웠다.
전시회를 다녀올 때마다 중점적으로 보게 되는 건 그들의 표현방법이다. 그들의 표현 방법을 따라 해야지, 가 아닌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도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식으로 그릴 수 있을까? 하고 상상을 하면서 보게 되는데 그 생각을 하면 꼭 정말 모든 것에서 벗어나 훌훌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다만 막상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망설이게 되고 그 망설임 끝에 그리던 것을 내려놓게 되지만.
다만, 이 전시회를 보면서 해보고 싶다고 느낀 건 어떤 표현이든 내 표현 방법으로 그림을 그려봐야겠구나였다. 정말 뭐든 그려야겠구나 싶었다. 완벽하게 그리지 못해서, 예쁘게 그리지 못해서, 내 눈에는 너무 난해한 그림들만 있는 것 같아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실제로 꺼내지 못해서 답답한 마음에 멈추고 또 멈추게 되는 상황들이 있었는데 작가의 말이 쿡 하고 마음을 찔렀다.
저는 이동할 때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무언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의 표현이 섬세해지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계속해서 그릴 수 있는 이유는 이 꾸준함과 몰입하는 시간 때문이겠지. 해야지 해야지-가 아닌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 그리고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표현해 봐야지.
일기일회, 오늘의 한 줄 : 이래서 전시회는 안 갈 수가 없다. 다녀오고 나면 마음이 화르륵 불씨가 살아나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