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238 | 영 번째 이야기]
여름방학, 요즘 아이들의 하루는 어떤가요?
얼마 전이었습니다. 밤 10시를 넘은 시각, 아파트 상가 옆의 스타벅스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한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곳엔 30대 즈음의 남자 어른과 10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귀퉁이가 쭈글쭈글해진 A4용지가 마치 그들의 경계선 마냥 놓여 있었지요.
‘아! 저 아이는 지금 학습지 공부를 하는구나.’ 란 생각에 처음 놀랐고, 그 시간과 장소에 두 번 놀랐습니다. 카페의 두 뼘 반만 한 책상이 그렇게 아득해 보일 수 있다니요. 그토록 가벼운 종이 한 장이 새까맣고 무거워 보일 수 있다니요.
머리를 푹 숙인 아이와 아이의 뒤통수로 눈빛을 강렬하게 발사하는 어른의 모습. 반쯤 남은 아이의 분홍빛 스무디는 등줄기의 식은땀처럼 몽글몽글 물기가 맺힌 채 속절없이 녹고 있었습니다. 달콤한 스무디가 녹는 모습도 그랬지만, 한 잠이라도 더 잘 시간에 훤한 카페에 앉아 학습지를 보는 아이의 모습이 슬퍼 보였습니다. 심지어 다른 때도 아닌 지금은 여름방학이잖아요!
‘OECD 국가 중 아이들 주관적 행복지수 꼴찌’와 같은 거창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요즘 아이들의 삶은 어른만큼 퍽퍽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 준비를 해야 하고, 부모님이 선택해준 학원에 늦도록 있어야 합니다.
문득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무언가를 해보는 시간이 과연 하루 중 몇 시간이나 될까 궁금해졌습니다. (저 스무디는 스스로 고른 걸까 하는 생각도 함께요.) 유명하다는 학원에 등록하겠다고 학부모님들이 밤새 줄을 선다는 대치동 학원가 뉴스도 머리에 스치면서 학교도, 학습지도, 식사도, 하다못해 수면 시간도, 게임 시간도 모두 어른의 손에 달려있는 건 아닌지, 그동안 아이의 속내는 어떻게 변해갈지 말이죠.
물론 부모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괜찮은 대안을 찾는 건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 할 만큼 어렵지요.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꿈을 꾸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냉정하게) 정말 우리의 지금 모습이 괜찮은지 짚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새로운 마당을 꿈꾸며
제가 이제부터 탐험할 이문238은 이런 질문을 깊숙이 파고들어 마치 샘물을 긷듯이 아이 스스로의 온전한 생각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만든 일명 ‘아이들의 작업실’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는 텅 빈 용지를 받아 들고 스스로 생각하여 자기 시간을 씁니다. 텅 빈 용지를 어떤 이야기로 채우든 그건 오로지 아이의 몫입니다.
‘NO Adult’라 선언하고 아이들을 위한 본격적인 판을 펼친 것도, 천진난만한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작업실’이란 개념도 이 글을 처음 본 어른들에게는 낯설기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어른보다 보석같이 눈을 반짝거리고 먼저 행동하는 아이들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먼저 나서서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를 손으로 그리고 만들고 다음 단계로 키워나갑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놀랍습니다. 어른의 얇은 생각을 당차게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영리하고 거리낌 없으며 멋진 재능을 쥐고 있는 존재란 사실을 새삼 보여주거든요.
그렇기에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재미나고, 풍부하며, 또한 진지합니다. 저는 이 기발한 장소에서 생기는 아이들의 변화, 부모님의 변화, 나아가 사회와의 접점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왜 우리가 아이들의 학원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진짜 공부란 무엇인지, 미래 교육이란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할지, ‘4차 산업혁명’이라고 교육도 변해야 한다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하나씩 짚어볼 생각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이문238 안에서 움트고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낯선 호기심을 가득 안고 이문238의 기획자 이재준 선생님에게 꼬치꼬치 물어볼 요량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함께 고민하고 질문해도 좋겠습니다.
이문238, ‘아이들의 작업실’이란 엉뚱하고 기발한 장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내부적-외부적 상황에 기대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시간, 조금 다른 기회의 문을 여는 데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함께 들어주세요. 하나씩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연재 형식입니다. ‘구독하기’ 버튼으로 새글 소식을 받아보세요!
에디터/윤솔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