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238 | 세 번째 이야기]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전자 벨 대신 진짜(!) 종을 울렸습니다. 매 수업이 시작하고 끝날 때마다 교무실 창문 앞에 매달린 수박만 한 종을 선생님께서 울려주셨어요. 그중 백미는 하교 종소리이죠. ’땡땡땡’ 소리가 교실과 운동장에 울려 퍼질 때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우다다다 몸을 내던지듯 밖으로 튀어 나갔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할 게 엄청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에 완성 못 한 두꺼비집이나 솔잎 둥지도 매만져야지, 등교할 때 본 사마귀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해야지, 집 가면서 먹을 과자 사야지, 땅따먹기도 한판 더 해야지.
참, 이제 와서 느끼지만, 저리 뒤돌아서면 까먹을 것 같은 (어른 말로 쓸데없다고 하죠.) 일들이 교과서를 붙들었던 시간보다 훨씬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오히려 그 작고 사소한 시간이 저를 키운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떤가요? 여러분을 키운 건 어떤 시간이었나요?
그래서일까요. ‘선생님이 기다리니까 모이고, 친구들과 모였으니 열심히 공부하자’ 고만 말하는 동요 ‘학교종’ 가사가 참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김메리 선생님, 왜 하교의 즐거움은 말하지 않으셨나요!) 아닌 말로 요즘 아이들의 시간이 도돌이표 붙은 딱 저 노랫말 같습니다. 하교하기 무섭게 또 ‘선생님 앞에 모여 공부해야’ 합니다. 방과후학교가, 학원이, 학습지가 고개의 고개를 넘어 기다린다고 하죠. 게다가 우리 어른들 조차 ‘학교의 연장선’ 이라거나 ‘제2의 학교’를 거침없이 고민하고 또 만듭니다. ‘학교’란 낱말이 붙은 사업이 호황이고, 학교를 끼고 ‘학원가’, ‘학원타운’을 짓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한 번쯤은 질문하면 좋겠습니다. 학교 뒤에 또 다른 ‘학교’를 꼭 덧대야만 할까요? 우리는 정말 하교의 즐거움을 함께 노래할 수는 없는 건가요?
방과후학교는 누굴 웃게 만드나요?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 주최의 ‘2019 서울형 혁신교육지구 정책포럼’에서 이문238을 소개했다고 들었어요. 현장 반응이 어땠어요? 제일 많이 나온 질문이 무엇이었나요?
이재준: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랐다”가 첫 번째고, “어떻게 운영을 하느냐”가 두 번째였어요. (웃음) 아마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도 비슷한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들어 이문238에 관심을 갖고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 감사해요.
혁신교육지구는 마을 교육 공동체를 말하는데 어떻게 보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의 연장선 같아 보여요. 그러고 보면 사회적으로도 이렇게 하교 이후의 활동에 관심이 굉장히 커지는 것 같아요. 맞벌이 가구 증가나 조기교육 열풍과 같은 해묵은 이슈를 차치하더라도 다양한 주제에 대한 아이들의 경험치를 늘려주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 반영된 거겠죠.
이재준: 맞아요. 교과목 틀에서 조금 벗어나서 여러 가지 활동을 직접 해보고 거기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 기회가 될 수 있죠. 방과후학교의 특징 중 하나가 ‘일시성’이잖아요. 프로그램을 언제든지 선택해서 바로 해 볼 수 있는 게 장점이죠. 그리고 그 선택을 아이가 스스로 할 수도 있으니까 더욱 좋죠.
그런데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입장에서의 속사정은 복잡한 것 같아요. 이미 여러 차례 기사화된 사실만 보더라도 ‘최저가 입찰로 위탁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인해 부실 운영 문제’가 큰 데다가 몇몇 업체에서는 ‘선생님이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요.
이재준: 학교에서 위탁업체를 선정하고 위탁업체가 방과후학교 선생님들을 운영하는 구조인데, 거의 대부분 최저가 입찰자가 계약 대상이 되다 보니까 결국 선생님의 처우가 열악해지는 거죠. 그러면 자연스레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쏟는 에너지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알겠지만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도 건강한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혀요.
아이들을 위한 일로 시작했는데 어쩐지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 꼴 같아요.
이재준: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만나는 선생님의 근무 환경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디나 그렇듯 기쁘게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일도 잘 되고, 힘도 나잖아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용역 계약 방식이라면 개선될 여지가 극히 적어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우리(어른)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을까? ‘아이의 장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시간이라면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왜냐면 이건 단순히 프로그램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야 하는 일이니까요.
학원은 어떤가요? 방과후학교 보다는 학원에 크게 비중을 두는 집도 많아요. 특히 예체능의 경우 1:1 트레이닝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재준: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1:1 방식이 아이들의 주체성을 잃게 만들 때도 있어요. 기억나는 게 우리 첫 아이가 7살 때인가, 미술학원을 다녀와서 이제 학원 가기 싫다고 울더라고요. 그렇게 그리고 만드는 걸 좋아하는 애가 말이죠. 글쎄 알고 보니까 자기 딴에는 사슴을 한창 그리고 있는데 새로 온 선생님께서 딱 보고 한마디 하신 거예요. “이건 사슴이 아니야. 사슴은 이렇게 그리는 거야.” 그러니 얼마나 슬퍼요? (웃음) 사슴처럼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자기가 생각해서 그리는 것이 중요한 걸요. 어른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 시작하면 결국 아이는 자기 안의 것을 표현하는 것보다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게 돼요.
만약에 애들이 학원에서 매일 훌륭한 작품을 그려온다? 그러면 집에서 한 번만 더 그려보자고 해보세요. 아이가 천재가 되어가는지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거예요. ‘어려서부터 잘해야 한다’, ‘그러니까 어른인 내가 도와줘야지’, 그런 생각이 아이의 시간을 생각을 야금야금 뺏어가요.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 주체성을 쌓는 시간을 뺏기는 것과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평가’란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거네요. 굉장히 무서운 일이란 생각이 드는데…. 참, 그래서 대안학교를 만든 것 아닌가요? 기존의 평가 시스템에서 벗어나겠다는 취지로 생겼잖아요.
이재준: 대안학교가 기존의 평가 구조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모두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게 현실이죠. 학교에서 평가받지 않겠다고 마냥 사탕 고르듯이 만만하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기준을 살펴봐도 그래요. 대게는 “우리 아이는 좀 특별해” 또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네.”가 판단 지점이 돼요. 그러니까 부모님의 시각으로 너무 일찍 아이의 정체성을 재단해 버려요.
정말 그런가요? 아이가 직접 대안학교에 가겠다고 해 보냈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리던데….
이재준: 아이가 결정했다면 좋죠. 그런데 그 결정까지 부모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아이가, 부모님이 기존의 ‘학교/학원’ 세트를 따라가지 가지 않으려면 등을 돌려 대안을 찾아야 하는 방법밖에 없네요. 그러니 어차피 결정할 문제라면 하루라도 빨리 노선을 정해 하나라도 더 공부하도록 만들게 되고. 그냥 저는 중학교, 적어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이라도 아이들이 편하게 놀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어요. 놀아야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좋은 것도 알고 싫은 것도 알지.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이재준: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만드는 모든 프로그램이나 정책이 ‘아이들은 혼자서 잘 못 해’란 생각에서 출발하잖아요. 제가 볼 때는 먼저 아이들을 믿는 게 중요해요. 더 많이 알려주는 학원, 더 똑똑한 선생님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발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아이에게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면 좋겠어요. 꼭 연필 잡고 무언가를 배워야만 제대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그죠? 생각해보면 저희 엄마도 제가 책상에 안 붙어 있으면 노는 거 아니냐고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오셨어요. (웃음) 왜 우리는 이렇게 잠깐이라도 틈을 두거나 쉬는 시간을 갖는데 야박할까요?
이재준: 인터넷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리 “쉬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막상 누가 “그래? 그럼 쉬어” 이러면 어쩔 줄 몰라한다고. (웃음) 제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인데 제대로 쉬어본 경험치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 또래 세대가 여가로서 ‘쉼’을 제대로 누린 적이 얼마나 있겠어요? 우리는 생산성이 없는 걸 못 견뎌하죠. 그러니까 생각을 멈추거나 잠깐 일상의 틈을 갖는 데에 기대치가 없어요. 이건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교육이란 관점에서도 쉬는 걸 못 보는 거죠. 지난번에 말했던 것 기억나요? 교육(education)은 채우는 게 아니라 끄집어낸다는 것. 이 사실만 알아도 문제가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요?
보이지 않는 투닥거림. 아이는 “왜 우리는 못할 거라 생각해요?”라고 외치고, 어른은 “우리가 더 많이 아니까 알려줄게” 합니다. 결국 아이와 어른 사이의 신뢰 부족이 상황을 더 꼬아버리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의 믿음이 중요하다던데, 이 부분에서 만큼은 먼저 어른이 시원하게 팔을 벌려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믿고 조용히 지켜봐 주는 일부터 해볼까요? 아이들이 말하는 시간이 더욱 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문238에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득합니다. 혼자 신나서 만든 다음에는 엄마한테, 아빠한테, 샘들한테, 친구에게 자랑하기 바쁘거든요. 기뻐서, 뿌듯해서, 자랑하고 싶어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쉬지 않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 있는 부모님이라면 금방 이곳의 기운도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곳의 믿음이 출발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려고 합니다. 그토록 많이들 궁금해하셨던 이문238의 운영 방식도 살짝 물어보고요.
이문238, ‘아이들의 작업실’이란 엉뚱하고 기발한 장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내부적-외부적 상황에 기대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시간, 조금 다른 기회의 문을 여는 데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함께 들어주세요. 하나씩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연재 형식입니다. ‘구독하기’ 버튼으로 새 글 소식을 받아보세요!
에디터/윤솔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