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야의 세 번째 레터
연하! (연이 하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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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좀 친해진 것 같아서 '연하!' 해봤어. 벌써 4월! 시간은 참 빠르고 날도 따뜻해졌다.
아침 일찍 레터를 확인했던 연이들이라면 눈치챘을 거야. 발송 시각이 오전 9시에서 8시로 한 시간
당겨졌거든! 연이들이 학교, 직장 등 아침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에 레터를 읽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발송 시간을 바꿔봤어. 이제 막 발걸음을 뗀 병아리 레터인 만큼, 레터어리는 여러 가지
변화와 시도를 해보려고 해! 오늘은 전할 소식이 조금 많은데, 연이한테 레터어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 중이라는 걸 알릴 수 있어서 좀 뿌듯하다.
1. 레터어리 필진의 답장
그동안 세 필진이 '답장 쓰라'고 졸랐(ㅋㅋㅋ) 던 것 기억하지? 답장이 어느 정도 모여서, 레터어리도 답장 콘텐츠를 별도 발행 해보려고 해! 다만, 답장 콘텐츠를 쓰기 위해 일정량의 답장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에서 지치는 연이들이 있겠다는 생각에 이번만 일회성 답장 콘텐츠를 쓰고, 다음 주 레터부터는 그때그때 연이들이 보내준 편지에 대한 답을 쓰려고 해! 발행 예정일은 이번주 금요일이고, 이번주에 레터어리에게 편지가 한 번 더 도착해도 놀라지 말아 줘 :)
2. 인스타그램 개편
레터어리 인스타그램 팔로우하고 있지!? (안 했다면 해줘�) 인스타그램도 개편될 예정이야! 레터어리는 무엇보다 필진들의 개성 있는 글과 콘텐츠를 보여주기 위한 레터인데, 그림일기 계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뉴스레터와 같은 글자 매체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이 있어서 인스타그램
게시 양식을 변경하게 될 것 같아. 기존의 아기자기한 다이어리형태의 게시물은 우리가 신나서 기획했던
양식이었던지라 아쉬움이 정말 크지만(또륵..) 연이들이 편안하게 글을 읽을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기에
과감하게 변신해 보려고. 기대해 줘!
3. 새 팀원 소개 - 단단
새 팀원 '단단'이 들어왔어! 단단은 주영화, 다야, 김러브처럼 필진은 아니고, 레터어리의 마케팅을 맡아줄 새 크루야! 레터어리를 본격적으로 홍보해 준다니 나 솔직히 좀 설레고... '우리 뭐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단단은 인스타그램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할게! 소개 콘텐츠가 올라오고 나면 다음 레터 발행 때도 알려줄게, 꼭 확인하길!
몇 가지 안내사항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레터 시작할게!
성벽 바깥에서의 항해
사실 이번 레터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녹아있어서 선뜻 글이 잘 써지지 않았어.
조금 두서없을 순 있지만 천천히 풀어보려 해. 실은, 오늘 레터는 전시 추천이나 후기 글이 아냐. 다야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워. 우선, 내가 최근에 봤던 전시 《첫사랑은 흐려지기에 아름답다》에서 봤던, 마음을 빼앗긴 작품 사진부터 보여주고 싶어.
♫•*¨*•.¸¸♪✧
'티드로잉'이라는 기법으로 회화 작업을 하는 진수영 작가의 작품이야. 전시의 주제는 '첫사랑'이었는데,
작가의 첫 티드로잉 회화이기도 해. 이 작품을 만든 2009년부터, 찻물이 산화되어 색이 변화한 지금 까지 시간의 흔적이 담긴 작품이야. 티 드로잉을 작업한 시간과 사랑의 여정을 그린 지도처럼 보였어.
작가님과 작품 정보는 링크를 참고해 줘!
안전지대
연이들은 경계 바깥에 있다는 느낌에 대해 알고 있어? 내가 이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완전한 아웃사이더라는 느낌 말이야. 나는 늘 어떤 집단 안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아왔던 것 같아.
무난하면서도 그럴듯한 타이틀의 집단에 속해서, 나라는 개인을 드러내기보단 조화로운 내부자가 되어
살기를 선호했던 거지. 튀더라도 '안전함'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튀기를 바랐고, 나의 드러남이 남들 눈에 거슬리지 않는 상태로 남기를 원했어. 나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대학원도 영화 이론을 전공했는데,
전공이 그랬으니까 당연히 내게 직업의 선택도 영화와 관련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영화'는 공부를 넘어서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어. 남들이 영화에서 1을 볼 때, 나는 적어도 5는 봐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쓸 땐, 그냥 좋았을 뿐인데,
어떻게 해야 좀 더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나타내야 할지 고민하는 수준에 이르렀어. 영화가 사회적으로
차지하는 맥락을 찾는다거나 비판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는 나만의 기조 같은 게 생기더라고. 실은 나를 압도하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영화가 주는 특별한 순간을 사랑한 건데 말이야. 그저 좋아서 했던 공부와 학위가 나를 옥죄는 족쇄가 된 거야. 인스타그램에 종종 올리던 영화 리뷰도 그 텀이 차츰 길어지다가,
어느 순간 쓰지 않게 되었어.
'무지'라는 해방
그즈음부터일까, 전시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야. 영화를 볼 땐, 쉴 새 없이 스쳐가는
장면들을 계산기처럼 머릿속에서 분석했어. 새로운 장면을 곱씹고 감독과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찾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프레임 안에 멈춰있는 미술 작품들은 나와 가만히 눈을 맞추며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말을 걸어주더라고. 이유 없이 그저 좋아서 "좋다"라고 했는데, 자유롭다는 기분이 들었어. 그때부터 생각했지, 모른다는 건 일종의 해방이라고.
누군가는 내가 무식해서 용감한 거라고 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어. 미술과 전시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아무런 제약과 터부 없이 순수한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비로소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을 설득하고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독립 큐레이터 활동과 레터어리를 시작하게 됐어.
종종 내가 속한 필드에서 일하고 싶지만, 전공을 하지 않아서 속상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해. 대학과 전공이라는 집단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의 처지를 조금은 비관하거나, 메인스트림에 끼지 못해 소외감을 느껴서 내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있어. 전시 기획이나 독립 큐레이터 활동을 할 때의 나도 그래.
메인 스트림의 성벽은 아주 높고 두꺼워서 나 같은 사람은 쳐다보기도 어려울 정도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외부자이기 때문에 성벽 안에서 만들어낸 터부나 관행에서 자유로워. 바깥의
눈으로 큰 그림을 볼 수 있어. 경계 바깥에 있다는 건 제약 없는 가능을 보장하는 거지. 그리고 이 기쁨은 성벽 바깥의 사람들과 충분히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끼리 재미있게 즐기다 보면, 언젠가 성벽 안의 사람들도 궁금해서 창문을 열고 말 걸어줄지 몰라.
위에 언급했던 전시는 오랫동안 공인된 기관에서 지원을 받지 못했거나, 각자의 단계에서 정체되어
성장통을 앓고 있는 작가들의 초기 작품들과 제작 과정들을 회고하는 단체전이었어. 그 전시의 서문은
'아마추어리즘'이란 테마로 그들을 한 데 묶었어.
『미술 구술: 전시 보기와 말하기 매뉴얼』의 공저자 이여로 작가는 '아마추어리즘'을 각자의 만들기 속에서 가치와 인정과 행동의 체계를 정립하는 과정이라 정의한다. 또한, 관행/제도적 인정하에 예술이다 아니 다를 논하기에 앞서 자기만의 만들기에 몰입하는 모든 이들은 '작가'로 불린다.
오상은, 첫사랑은 흐려지기에 아름답다
제도적 인정여부로 작가를 논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창조적 몰두를 하는 사람들을 '작가'로 부른다는
의미였어. 그럼에도 나는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움이 이들을 다 담기엔 작다고 생각했어. 그 단어가 오히려 이들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거든. 제도와 관행의 구분으로 작가와 작가가
아님을 나누는 건 슬픈 일이야. 기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다른 대안은 없을까?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이 흑과 백의 이분법적 체계에서 벗어나 제3의 선택지를 찾고자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앞엔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푸른 바다가 펼쳐졌어. 중요한 건, 잊지 않고 우리가
탄 뗏목의 노를 젓는 거야. 열심히 젓다 보면 저 멀리 나와 같은 뗏목의 주인을 만나 그들과 스치고 겹쳐지며 함께 항해하겠지. 나도 이제는 다시 영화와 화해해 보려고. 영화가 지닌 있는 그대로의 마법을 믿어보기로, 그 파도에 다시 휩쓸려 보기로 했어. 그리고 독립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도전도 이어가 보려고 해.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연이들은 꼭 답장해 줄래? 우리 레터어리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만나자.
From. 다야가
* 금요일에 레터어리의 답장 콘텐츠가 발송된다는 것 잊지 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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