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화의 세 번째 레터
잠금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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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나 있지, 나는 종종 신비로운 일을 겪어.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조명이 켜지며 관객들이 극장을 빠져나가도, 귀갓길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봐도 여전히 내 영혼은 은막 앞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그렇게 하루 이틀 살다 보면 영화 속 장면과 유사한 상황을 목격할 때가 있어. 그 순간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움에 고양되곤 해.
누군가는 '영화 같다'는 수식어를 아름다운 풍광, 신기한 우연, 비일상적 체험을 설명할 때 쓰겠지.
반면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일상에서 만날 때 사용해. 단순히 '영화 같다'며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이거 그 영화 같다'라고 호명함으로써 평범한 순간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거지.
♫•*¨*•.¸¸♪✧
오늘은 너에게 최근 겪었던 영화 같은 순간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싶어. 얼마 전까지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오키쿠와 세계>를 많이 추천하더라고. 그들의 안목을 믿는 편이라 퇴근 후 곧장 영화관으로
향했어.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제목이 '오키쿠의
세상'인지 '오카쿠의 세계'인지 계속 헷갈리더라니까ㅋㅋ
영화의 배경은 1858년 일본 에도 시대야. 국가 권력은 천황이 아닌 막부와 사무라이의 것이었고, 이들은 쇄국 정책을 펴서 외부 세력을 통제했어. 급격한 경제 발전과 함께 번영을 누렸던 것도 잠시, 1868년 메이지유신이 도래하면서 일본의 빗장은 제국주의에 의해 풀리게 돼. 이 영화는 일본이라는 섬나라가 바다
건너 세상을 향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하던 때를 다뤄.
'오키쿠'는 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이야.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인 오키쿠는 마지막 결투에 나선 아버지를 쫓아갔다가 목에 칼을 맞고 목소리를 잃어.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혈혈단신이 된 채 여생을 떠안게 되지. 오키쿠가 사는 마을에는 똥 (인분이라는 고급스러운 용어는 사용하지 않을게. 밥 먹고 있었다면 미안)을 사고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야스케'와 '츄지'가 주기적으로 방문해. 두 사람은 마을에서 산 똥을 농촌까지 옮긴 다음 농민에게 비료로 판매하는데, 아무래도 똥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멸시를 받아. 그렇지만 천황이든 사무라이든 백성이든 먹고 싸는 데엔 예외가 없잖아? 야스케와 츄지는 괴팍한 고객에게 욕을 들으며 똥을 뒤집어쓰는 모욕을 당해도, 흘린 똥을 맨손으로 주워 담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절대 삶을 비관하지 않아. 오히려 "여기선 웃어야 해!"라며 박장대소하지.
살아있을 적 오키쿠의 아버지는 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눠.
“자네, 세계라는 말을 아나?"
“아뇨, 모릅니다. 읽고 쓸 줄도 몰라서...”
“이 하늘의 끝이 어디인지 아나? 끝 같은 건 없어. 그게 세계지. 요새 나라가 어수선한 건 이제 와서 그걸
알아서야.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야. 이보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말해줘. 그 말보다 좋은 건 없어.”
이후 츄지는 오키쿠와 사랑에 빠지게 돼.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에 무릎을 꿇고, 사랑하는 여자는
목소리를 잃고, 사랑하는 남자는 똥 장사꾼으로 천대받는 세계에서 두 사람은 불행했을까? 아니.
불행하기에 그들이 이해하는 세계는 너무나 모호했고, 그들 눈앞의 서로는 너무나 사랑스러웠으니까.
츄지는 오키쿠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어. 사무라이가 알려준 '세계 せかい'라는 단어를 떠올리려고 애쓰다가 이내 포기하지. 대신 온몸으로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라고 표현해. 하늘을 가리키며 원을
그리다가, 가슴을 퍽퍽 치다가, 자리에 주저앉아 눈이 소복이 쌓일 때까지 땅바닥만 때려대지. 그런 그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없이 안아주는 오키쿠의 모습은 다정하고 애틋해.
나는 이 영화를 본 다음날에도 영화관을 가려고 집을 나서고 있었어. 저녁을 대충 때운 탓인지 길가의
국화빵 트럭이 눈에 띄더라고. 처음 보는 그 트럭에는 처음 보는 노부부가 국화빵과 와플, 옛날 호떡을
굽고 있었어. "국화빵은 얼마예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국화빵 1 봉지 3천 원'이라고 적힌 안내 문구를
가리키더니 손가락 7개를 펴더라고. 두 분 다 말을 하지 못하는 거였어. 이내 손님들이 밀려들면서 두 분은 허둥지둥 대기 시작했어. 와플을 주문한 손님에게 호떡을 내밀거나, 국화빵을 잘못 뒤집어 앙금을
쏟기도 했지. '미안해요' '다 해서 오천 원이에요' '이건 시간 좀 걸려요' 모두 수신호였어.
버스 환승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잠자코 기다렸어. 옆에 선 손님이 "근데 옛날 호떡이 2천 원이라니...
너무 비싸다"라고 말을 걸길래, 노부부가 들을 수 있도록 "하하, 워낙에 물가가 올라서..."라고
얼버무렸어. 비싼 건 사실이었지만 그걸 두 분이 듣지 못하기를 바랐거든.
이윽고 내 손에 따끈한 국화빵 7개가 쥐어졌어. 환승 시간을 놓쳐서 낭비한 버스비를 포함하면 4천5백 원짜리였지. 내가 열 살 때는 열 개에 천 원이었는데... 세월이 야속하더라. 그래도 어쩌겠어.
나는 국화빵이 식지 않도록 옷 속에 봉투를 품고 버스에 탔어. 창밖에 흐르는 풍경을 보면서
'아, 방금 영화 같았다'라고 생각했지.
오키쿠와 츄지는 어떻게 늙어갔을까? 아마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지친 몸과 나이 든 마음으로 여전히 살아보겠노라 아등바등 대며 함께 국화빵을 굽는 모습. 분주히
움직이던 노부부의 쭈글쭈글한 손도 과거에는 매끈하게 서로를 안았겠지. 지나간 청춘과 현실 내음
진득한 트럭 사이에서 두 사람의 세계는 참으로 작고 단단해 보였어.
내가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인 것 같아.
단순히 길거리에서 국화빵을 사 먹는 경험조차 이만큼 거대한 감상으로 다가오니까.
그날 나는 거대한 감상 앞에 무력하게 항복했어.
가능하다면 앞으로 몇십 년이고 '영화 같은 순간'을 만나 쪼개지고 부서지고 싶네.
Fro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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