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러브의 세 번째 레터
— 너는 언제부터 시를 좋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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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9일. 4년에 한 번 있다는 날.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친구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집을 선물한 뒤
받았던 질문이야. 이 질문에 나는 곧바로 나름의 대답을 했지만, 뱉은 대답 이후로
진짜 답을 찾기 위해 꽤 긴 시간 곰곰이 생각했어.
연아, 너는 시를 좋아해? 시집을 값 주고 사서 읽어본 적 있어? 음, 예전의 나에게 ‘시’는 내가 뚫고
들어가기 힘든, 작가의 고유한 언어로 둘러싸인 성곽 같은 존재였어. 소설에 비해 친숙한 글이 아니었지. 그런데 어떤 시집을 통해 시의 매력을 처음 느낀 뒤, 가랑비에 옷 젖듯 야금야금 시집을 모으게 되면서
지금은 시에 푹 빠지게 되었어. 그 문을 열어준 작품은 바로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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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어.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 그러나 89년 3월,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하며, 2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돼. 같은 해 5월에 나온 유고 시집이 바로 ‘입 속의 검은 잎’이야. 이 시집을 읽어본 여니들도 많을 거야. 지금도 시집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빠지지 않는 책이거든.
‘빈집’,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대표작부터, 교과서에도 실린 ‘엄마 걱정’이라는 시까지.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그의 시를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쓸쓸함’이야. 이른 나이에 겪은 누이의 사망,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사랑하는 이로부터의 외면 … 그가 삶을 통해
얻었던 깊은 내면의 상처와 우울, 그리고 상실감은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이지.
내가 이 시집을 처음 읽었던 건 아마 스무 살, 스물한 살이었을 거야. 시집을 처음 읽고는 무척이나
좋아서 빼곡하게 밑줄을 긋고 개중에 몇 개는 외웠던 기억이 나. 지금 생각하면 그 어렸던 내가 시인이
가진 우울과 상실의 정서를 공감했다는 게 신기해. 채 어른이 되지 못한 내 말랑한 심장에 생채기가 나는 기분을 시를 통해 느꼈던 걸까? 분명한 건,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시는 여전히 내게 큰 위로가 되어준다는 거야.
앞에서 내가 개중에 몇 개의 시는 외웠다고 했지? 그중 하나가 바로 ‘밤눈’이라는 시야.
오늘 내가 소개하고 싶었던 글이지. 여니들과 이 시를 꼭 나누고 싶어서 눈이 오는 밤마다 사진을 찍었어. 어느 날은 밤이 깊지 않아서, 어느 날은 진눈깨비라 사진에 담기지 않아서 …
완벽한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내가 올겨울에 찍은 가장 마음에 드는 밤눈 사진을 공개할게.
밤눈, 기형도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온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한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앞서 언급한 시인의 대표작 ‘빈집’, ‘엄마 생각’ 같은 작품과 다르게, 이 시는 행과 연이 없는 산문처럼 보여. 제시하는 상황이 뚜렷하거나 우리에게 익숙한 비유를 사용하지도 않지. 서정적인 문장은 가득하지만 막상 ‘네 속’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어. 그렇기에 다소 난해한 인상을 주기도 하고, 뚜렷한 주제 의식을 지닌 ‘질투는 나의 힘’처럼 강렬한 흡입력을 가진 작품은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어. 그럼에도 이 시는 읽을수록 그 매력이 구체화되는데, 내가 생각하는 ‘밤눈’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야.
첫 번째는 바로 상투성을 벗어난 표현이야.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그는 이 시를 적고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했다고 해. 시인은 상투적인 표현에 우리 감상의 몫을 무책임하게 넘기는 대신 온전히 그만의 언어로 밤눈에 관한 시 세계를 빚어나가지. 그렇게 적힌 ‘밤눈’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구절로 가득해.
두 번째는, 시적 화자가 열고 있는 ‘네 속’에 관해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야. 여니들은 어떻게 생각해? ‘네 속’이 연인의 마음일까, 자연의 한 장면일까, 자신의 내면일까?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의 나는 이 시가 ‘연인’이라는 시적 청자를 상정하고 있다고 여겼어. 그래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라는 표현이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와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나의 연인이 어떤 마음으로 다른 사랑을 꿈꾸었는지를 궁금해하는 화자의 모습을 그린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언젠가 ‘밤눈’이라는 시가 자연에 빗댄 ‘자아’와의 대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서는 이
구절이 다르게 읽혔어. 검은색 밤에 내리는 하얀색 눈일 수밖에 없는 자신이, 다른 사랑을 꿈꾸게 될 때
어떤 색깔이 될지에 대한 물음으로 들렸지. ‘네 속’이 가리키는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애정
시로도, 자연을 비유하는 시로도, 혹은 자신을 탐구하는 시로도 읽을 수 있기에,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라는 문장은 수만 가지의 의미를 지니게 돼.
마지막은, 이 시만큼이나 유명한 시작(詩作) 메모 때문이야.‘입 속의 검은 잎’의 자서와 뒤표지에 실린 글은 모두 ‘밤눈’의 시작 메모 일부분인데, 나는 이 시작 메모를 무척 좋아해. 담담하고 건조하게 적힌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시에 대한 애정과 시론(詩論)은, 밤눈처럼 따뜻하고 희망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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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겨울이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밤눈」은 그즈음 씌어졌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삶과 존재에 지칠 때 그 지친 것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비유는 자연(自然)이라고.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밤눈」을 쓰고 나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내면의 우울을 고찰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끊임없는 고통을 수반하게 돼. 그러나 시인은 절대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아. 오히려 그것을 주목하고 탐구하면서 자아를 지탱하는 부조리한 기억들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풀어나가지. 시작 메모의 마지막 부분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그의 선언에서 우리는 시인 기형도가 가진 삶과 시에 대한 결연(決然)함을 엿볼 수 있어.
시인의 이 시작 노트는 시인의 사후 발견된 시작 메모가 가득했던 푸른 노트와, 몇 편의 단편 소설,
그리고 중앙일보 기자로서 발행했던 기사와 서평을 엮은 유고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에 수록되어
있어. 지금은 절판되어 나도 중고로 겨우 구할 수 있었어. 이 책을 읽으면 그의 시집이 다시 읽고 싶어지고, 그렇게 번갈아 가며 읽다 보면 어느샌가 그의 작품이 이제 더는 새로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의 숨이 이 세상에 뱉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시리도록 아플 때가 있어.
그러나 기형도 시인의 말처럼, 따뜻한 봄이 오면 눈은 언젠가 눈물이 되어 이 땅에 스미게 되지.
그리고 다시 추운 겨울이 오면 우리는 밤눈을 만날 수 있고 말이야. 그의 글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시인의 숨결은 한 조각씩 우리의 마음과 몸을 빌려 이 땅에 영원히 서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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