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안녕! 나야, 김러브. 이번 주 다야 레터는 잘 읽었어? 다야가 예고한 대로 지금까지 여니들이
보내준 편지에 답장을 준비해 봤어. 다음부터는 여니가 답장을 보내면 바로 차주 레터에 우리의 답 편지가 실릴 거야. 많은 답장 보내줘. 우리 정말 답장 닳을 때까지 본다니까 ㅋㅋㅋ >v<
그럼 교환일기 시작할게. 돌려줄 때 자물쇠 잠그는 거 잊으면 안 돼! :)
♫•*¨*•.¸¸♪✧
- Daya
나만의 행성을 갖는다는 것
홍채가 진짜 행성같이 보여서 아주 재밌는 접근 같아. 오늘도 감성 한스푼 채우고 갑니다 고마워~~
레터어리에게 도착한 첫 번째 편지야! 아무도 답장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는데, 보내줘서 고마워 ㅋㅋㅋㅋ 이 편지 받고 너무 신났었어. 그래도 연이들이 레터를 봐주고 있구나! 라는 게 직접적으로 확 와닿더라고. 앞으로 연이들이랑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고~ 홍채 행성 진짜 재밌지! 멋진 접근인 것
같아. 아직 내 행성은 어떻게 생겼을지 정하진 않았지만. 흥미롭고 재미있는 전시 앞으로도 많이 소개 해볼게, 기대해줘!
홍채해킹안당하게 조심해~
그 생각은 못 해봤는데, 꽤 현실적인 생각이잖아...? 혹시 연이 T야? 나도 T야. 진짜 조심해야겠다.
홍채 절대 지켜... 근데 연아 사주에 관심 있어? 나 사주 엄청 좋아하는데 연이 사주가 궁금해진다.
엠티라는전시 어디에서 어떻게 볼수있어? 찾아봐도 잘 안나와서 ㅠ
엠티는 서울대학교 파워플랜트에서 진행됐어. 레터가 발행될 당시에도 아쉽게도.... 이미 종료된 전시였어. 전시 시간이 딱 이틀뿐이었거든(ㅠㅠ). 이 답장을 보고 고민 되더라고. 비록 종료된 전시일지라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재미난 전시와 작가를 알리는 데서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종료된 전시의 후기를 전하는 게 연이들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겠더라. 앞으로는 되도록 기간이 긴 전시를 골라 소개해보려고. 그래도 독특한 컨셉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볼 수 있다면 연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혹시 다른 연이들도 보고 있다면 답장으로 의견 남겨줬으면 좋겠어. 박민하 작가의 엠티 프로젝트는 추후 확장 진행계획이라고 하니까, 인스타그램 링크 남겨둘게.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해!
- Kim love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가끔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문장이나 참신한 비유에 이끌려서 시집을 사곤 하는데 읽고 나면 늘 뭘 읽은 걸까? 싶은 마음이 들었어. 이해하지 못 한 시인만의 표현이 머릿속은 둥둥 떠다니는데 결코 내 마음엔 안착하지 못하는 거야. 계속 글이 헛돌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아... 난 시를 소화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깨달은 뒤로 시집을 멀리했어. 그런데 오늘 소개해 준 글을 읽고 다시 시집을 사고 시를 음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자신을 고찰하며 들여다보는 기형도 시인이 어쩌면 나의 감성과 잘 맞을 거 같기도 하고. 시집을 사러 갈 생각에 매우 들뜨고 설레네 ㅎㅎ 고마워! 좋은 시를 소개해 줘서!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의 나는, 일기에 ‘시는 시인의 불친절한 혼잣말 같다.’라는 푸념 아닌 푸념을 썼어. 모름지기 대한민국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시를 봤을 때 소재, 주제, 심상부터 정리해야
성미가 풀리는 것 아니겠어? 몇 페이지만 넘기면 소화하기 쉽게 해석본이 있는 시만 보다가, 성인이 되고
난 뒤에 처음 접한 시는 마치 거대한 덩어리가 규정되지 못한 채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었어.
조각내어 삼키기 쉽지 않았지. 그렇지만 아무리 어렵고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할지라도, 시인의 마음속
티끌이 내 것과 비슷하다는 걸 발견한 순간부터는 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어. 사는 게 너무너무 무서워서 내일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울었던 지난날 밤, 심보선 시인의 ‘청춘’이라는 시가 없었다면, 나는
관성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유난 떠는 내가 미워서 견딜 수 없었을 거야. 사랑과 이별에 지나치게 아파하는 나를 나약하다며 탓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이응준 시인의 시 ‘내 개의 눈동자에는’ 덕분이었지.
시를 읽다가 규정하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비워두고 남겨두자.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가 빈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거야. 내 레터를 읽고 시를 다시 음미해보겠다고 해주어서 고마워. 내가 앞으로 살면서 듣게 될 말 중 이보다 더 영광인 말이 있을까 싶어. 연이가 찾고 싶은 그 문장을 발견할 때까지, 나도 좋은 시를 많이 소개할게. 우리 오래 보자!
답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번 레터. 사무실에 앉아 열어본 이 한 통의 레터는 단숨에 나를 스물 한 살 겨울로 데려다 놨어. '어떤 시인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기형도라고 답하게 된 건, 그 무렵 서점 한 켠에서 만난 가볍고도 쓸쓸한 시집에 엮인 고독의 낱말 혹은 고독의 또 다른 이름들로부터 비롯되었을까? 부끄러이 여기던 고독이라는 감정을 담담히 끌어안는 시 속에서 나 역시 참 많은 위로를 받았어. 다른 시대에 살았던 시인으로부터 받는 위로는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나를 살게 하네. 나는 기형도 시인의 전집에서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는 산문을 처음 접했는데, 지치기 위하여 떠난 여행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가 인상에 남아. 문득 대화가 잘 통하는 러브씨가 떠오르는 장면들. 네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기형도라는 시인을 만나고, 사랑하였음을 알게 되어 기뻐. 좋은 글 고마워. 삶에 치이느라 잊고 있던 마음을 꺼내보게 해주어서!
고마워, 연아. 답장을 읽고 나니 기형도 시인에 대한 레터를 적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비하인드를 말하자면, 이 레터는 발행일 새벽에 완전히 새로 적은 글이야. 초고 역시 밤눈 시작 메모에서 출발한 레터였는데, 좋아하는 시인이다 보니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지… 글이 길을 잃었더라고. 욕심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적었어. 부담감이 컸는데, 여니가 좋아해 줘서 무척 기쁘다.
지난 레터를 적고 나서 ‘입 속의 검은 잎’을 다시 한번 쭉 읽어보았어. 이전에는 그저 고독을 ‘다룬’ 시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재독 했을 때는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기꺼이 그 속으로 뛰어들어 침잠하는 느낌을 받았어. 여니가 적어준 것처럼, 이른 나이에 영면한 시인이 남긴 불행, 증오, 절망, 죽음에 대한 시선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내게도 큰 위로가 돼. 절망이 담긴 내 검은 페이지를 외면하지 않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치유가 아닐까?
언젠가 <짧은 여행의 기록>도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 레터에서 짧게 소개했던,
기형도 시인의 단편소설도 꼭 알려주고 싶어. 그날까지! 우리 오래 보자.
- Zoo young flower
국화빵과 세계
우리 동네 역 앞에 SUV보다 작은 사이즈의 차 안에서 몸을 구부리고 붕어빵을 구워 파시는 할아버지가 계셔. 차 밖에서는 아내분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붕어빵을 담아주셨어. 추운 겨울 그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드는 요상한 감정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영화같은 장면에 무력하게 항복하는 마음이었단 걸 레터를 읽고 깨달았어.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눈물 날 거 같아 이 마저도 영화같네!!
답장에 어떤 말을 적을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붕어빵의 계절이 지나고 봄이 왔다는 걸 깨달았어. 나는 지금 다른 대륙을 여행 중이야. 한국에는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을 윤도현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통해 들었어. 내가 귀국할 즈음엔 연이 너와 내가 마주쳤던 노부부의 노점상도 문을 닫았겠지.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연이 너도 경험했다니 정말 신기하다. 기억을 나눠줘서 고마워. 우리가 삶의 한 단면을 마주하고 무력하게 스러질 줄 아는 사람이라서 다행이야. 작고 초라한 것에도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니까. 그걸 알아주는 네가 있어서 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해지는 기분이야.
이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찾아오면 나는 아마 네가 보낸 답장을 떠올릴 거야. 어느 붕어빵 트럭 앞에서 마주친 모든 사람에게서 네 존재를 느낄지도 모르겠네. 따스한 눈을 가진 너만의 작은
아름다움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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