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러브의 네 번째 레터
From. 김러브
이번 레터는 동물의 숲 배경음악을 들으며 썼어. 여니들도 이 음악 들으며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링크 넣어놨어(ㅋㅋ). 아래 버튼 눌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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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연아. 한 주 무사히 잘 지냈어? 금요일에 보낸 답장 교환일기 덕분인지 한 주가 금방 간 듯한 기분이 들어. 지난번에 기형도 시인을 다룬 레터 이후로, 나는 이삿짐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어.
가구는 많지 않은데 자잘한 짐이 너무 많아서 차를 두 대나 쓰는 바람에 현장에서 추가결제를 하기도 하고 … 퇴사일이랑 겹쳐 정신없는 나머지 버릴 것들을 추리지 못하고, 사야 할 가구를 사지도 못해서 2주가량이나 느긋하게(?) 이삿짐을 정리 중이야.
나는 자취를 오래 해서 그만큼 이사도 자주 다녔는데, 이삿짐 쌀 때마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건 익숙해지지 않더라고. 제일 난감할 때는 ‘대체 이 많은 짐을 어디다 두고 있었지?’, ‘이런 게 우리 집에 있었다고?’하는 기분이 들 때야. 보관하고 있는 짐을 구태여 꺼내 솎아낼 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나에게 이사는 짐을 정리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해. 몇 번의 이사로 얻은 경험이 있기에, 난 1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미련 없이 보내거든.
그런 나도 처분하기 힘든 물건이 있는데, 바로 ‘책’ 이야. 물론 책을 버리거나 나눈 적도 한 번씩은
있었지. 하지만 나는 보통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읽는 타입이라, 한 번만 읽은 책이라도 팔기는 무척
어렵더라고. 게다가, ‘언젠간 읽을 것이다.’라는 이 미묘한 마법의 문장… 큰맘 먹고 ‘당신은 제 책장과
함께 갈 수 없습니다.’라는 엄중한 선고를 하고도, 책에게 무제한 패자부활전을 주곤 하지.
‘언젠간 읽을’ 몫은 미래의 나에게 미뤄두고 말이야.
사실 나는 물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야. 음… 정정할게. 물욕은 많지만 이사를 할 때의 뒷감당이
두려워 소비를 신중하게 결정하는 사람이야. 다년간의 경험은 내게 소유에 대한 정당한 죄책감을 심어
주었고, 덕분에 나는 넘치는 물욕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는 물건을 (그나마)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 하지만 그 죄책감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책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아. 심지어 최근에는 독서모임,
레터어리 등 책을 사기에 너무나도 좋은 구실이 붙어서, 한 권씩 장바구니에 책을 담다 보니 어느새
스무 권이 되었더라고. 고양이와 내가 살기 딱 알맞은 아담한 우리 집이 책에 점점 공간을 내어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암울해질 찰나, 내 머릿속을 스친 한 권의 책이 있었어. 바로, ‘장서의 괴로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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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은 일본의 작가이자 서평가인 오카자키 다케시가 집필한 에세이집이야. 이 책은 저자 본인이 3만 여권의 책을 보유하면서 겪었던 여러 문제들과, 장서가로 유명했던 일본 유명 작가들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해. 책더미가 무너져 욕실에 갇히기도 하고, 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집이 기울거나, 심지어는 2층 바닥이 무너져 사람이 낙하하는 사고도 발생하지. 책이 너무 많아서 집이 무너진다니 … 상상만 해도 무섭다.
에피소드의 스케일만큼이나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의 장서량도 상상을 초월해. 2, 3만 권은 귀여울
지경이고, 13만 권이 넘어가기도 하지. 그렇다 보니 필요한 책을 찾지 못해서 새것을 사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져. 이쯤에서… 나는 내 책장에 있는 책의 개수가 궁금해졌어. 숫자는 상상에 맡길게.
어차피 본가에 있는 책과 지금까지 내가 처분한 책을 다 합쳐도 2만 권에는 택도 없거든(ㅋㅋ).
오카자키 다케시는 장서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헌책방 지기를 집으로 불러 대량으로 책을 처분하거나 집을 새로 짓기도 해. 비록 그 정도로 책이 많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는 책의 양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는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자는 건전하고 현명한 장서를 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해.
그래도 역시 책은 팔아야 한다. 공간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꼭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 원활한 신진대사를 꾀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지혜롭게 만든다. 건전하고 현명한 장서술이 필요한 이유다. 초판본이나 미술서처럼 수집할 가치가 있는 책들만 모아 장서를 단순화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그만큼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피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는 편이 낫다.
책이 여기서 더 늘어나면 책장을 새로 사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당장 읽고 싶은데도 구매를 망설인
적이 있었어. 막상 책장을 보면 한 번도 읽지 않은 책, 다시는 손이 가지 않을 책이 턱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야. 이 글을 읽고, 책을 비우는 건 내 책장을 휑하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지식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마음먹으니 읽지 않은 책을 처분할 때의 공연한 서운함도 한결 가벼워지고, 새롭게 들어와 활력을 더 해줄 책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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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막상 제목은 ‘괴로움’이지만 저자는 책 때문에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야(ㅋㅋ). 물론 서평 가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3만 권이나 모을 수밖에 없었던 근간은 책에 대한 사랑이니까. 그렇기에 장서로 인한 문제를 곤란해하며 책을 판 뒤에도, 큰 충격과 공허함으로 여전히 ‘장서의 괴로움’을 느끼는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해.
저자가 헌책방에 책을 대량 처분한 다음날, 자신의 아픔을 달래는 방법은 헌책 17권을 추가로 구매하는 거였어(ㅋㅋㅋ). 사실 이 책은 적게 소유하는 것에 대한 기쁨을 이야기하진 않아. 그보다,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책의 양을 유지하고, 잘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책장을 정리하고 싶을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책장에 남겨둘 책을 정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일본의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요시다 겐이치’의 말을 인용하며 ‘올바른 독서가’가 무엇인지 설명해.
(전략) …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지금껏 한 번도 펼치지 않고 책등이 바래질 때까지 방치해 둔 책장 속 책이 떠올랐어. 나는 다독가나 애서가가 되기엔 너무 게으른 사람이야. 이 책을 읽고서는 장서가도 쉽지 않구나, 생각했지. 그렇지만 ‘올바른 독서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담하지만, 세네 번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로 빼곡한 책장. 상상해 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왠지 모르게 든든한 기분이 드네.
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서재가 없는 자취방 구석을 턱 하니 차지하고 있는 책 무더기를 ‘짐’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어. 책으로 바닥을 뚫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것 또한 나만이 가진 ‘장서의 괴로움’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고 가장 기뻤던 건, 내 집 한편을 오롯이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거야. 책을 신중하게 고르고, 현명하게 비우고, 신선하게 채우고. 그럼에도 꾸준히 남아있는
책에는 내 손때와 메모가 가득 묻어있을 테니까, 내가 가진 책을 더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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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준비한 레터는 여기까지야. 재밌게 읽었어? 그랬으면 좋겠다ㅎㅎ.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난 이제 읽지 않을 책들과 작별 인사를 하러 갈게!
P.S.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철골과 시멘트로 집을 짓는 한국과 달리 일본 주택은 주로 목조를 사용하기 때문에 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집이 기울어지거나, 무너지는 사례가 발생하는 거라고 해. 그러니 우리 윗집이 장서가일 걱정은 접어두고 오늘 밤 편히 자 ꉂꉂ ( ˆᴗ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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