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화의 열 번째 레터
몰래 누군가를 쳐다보다가 들킨 적 있어? 나만 보고 있다는 생각에 푹 빠져서 그 사람의 눈 코 입을 뜯어보다가 갑자기 눈이 마주치면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잖아.
나는 영화를 보면서 가끔 그런 일을 겪어. 극 중 인물이 제4의 벽을 깨고 말을 걸어올 때지. 제4의 벽이란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벽인데, 관객은 등장인물을 볼 수 있지만 인물은 관객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일방향 장치야. 연극에서 파생된 용어로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사용되고 있어.
이 벽은 무대 속 세계의 공고함과 관객의 몰입을 위해 기능하는데, 가끔 의도적으로 이 벽을 부수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작품이 나와. 오늘은 그들이 유쾌하게, 때로는 소름 끼치게 우리를 응시하는 순간에 관해 얘기해 볼까 해.
최근에 극장에서 <데드풀과 울버린>을 봤어. 두 캐릭터의 쿵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는 맛인 걸 알면서도 찾아가는 단골 식당 같았지. 영화 자체의 완성도보다 데드풀이라는 안티히어로의 특성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어.
자질구레해서 굳이 잡기도 귀찮은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결국 건드려선 안 될 신성한 설정들까지 감염시키고야 마는 모습이 발칙해서 마음에 들더라고. 숭고한 죽음을 이룩한 울버린의 아다만티움 유골을 휘두르며 싸우질 않나, 캡틴 아메리카의 FM 성향을 한껏 뒤트는 평행우주의 스티브 로저스와의 만담까지. <로건>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이뤄낸 히어로의 권위가 데드풀 손에 놀아나는 광경이라니… 데드풀 영화가 아니라면 언제 이 대단한 영웅들이 망가지는 걸 보겠어?
이보다 더 발칙한 요소는 데드풀만의 능력인 ‘제4의 벽 ㅈ까술’이었어. 디즈니의 인수합병 같은 시사 이슈를 언급하면서 20세기 폭스에 작별을 고하거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유니버스> 등의 영화를 패러디하는 장면이 나오거든. 데드풀식으로 바뀐 장면을 보고 있자니 뻔뻔하지만 밉지는 않더라.
객석에 짓궂은 농담을 던지며 추근대던 1편과 개별 작품을 넘나들며 흑역사를 청산했던 2편에서 나아가 3편에서는 ‘데드풀’이라는 캐릭터의 현주소에 직접 말뚝을 박는 수준급의 메타인지를 보여줘. 울버린의 안티테제로서 소박하게 활약하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기어코 울버린과의 합작을 통해 정반합을 이뤄내는 데드풀의 집념 자체는 어벤져스에 준한다고 생각해. 어쩌면 데드풀의 진짜 능력은 재생력이 아닌 영화 바깥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는 것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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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제4의 벽을 허무는 연출해 익숙할 텐데, 사실 꽤나 다양한 영화에서 이 연출이 쓰이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퍼니 게임>(1997)이야. 이 영화는 절대 왕좌에 앉아 등장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음하는 관객을 향해 냉소를 띄우며 말하지. ‘현실의 윤리가 이야기에 적용될 필요는 없죠. 당신은 그저 거기 앉아서 즐기기만 하세요.’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관음증 환자의 강박과 비슷해. 스크린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폭력, 범죄, 내밀한 대화, 야릇한 교감을 거리낌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이유는 견고하게 서 있는 제4의 벽 덕분이야. 창을 통해 다른 사람을 관찰하듯 관객도 어두운 밀실에서 네모로 뚫린 환한 빛의 세계를 바라보잖아.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래 지켜보는 일은 얼마나 짜릿한지. 도덕은 스크린 안에서 힘을 잃고 한 사람의 인격은 자주성을 잃은 채 등장인물로 전락해. 이야기에 종속되는 순간 그들의 고통은 관객에게 그저 오락거리에 불과하지. 몰입이 과해지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알 바야? 안전하게 스크린 바깥에 있는 이상 영화 속 피와 눈물은 모두 ‘이야기’일 뿐인데. 그런데 어느 날 영화 속 인물과 우리의 눈이 마주친다면? 안쪽 세계의 윤리에 무던했던 감각이 등장인물의 차가운 눈빛에 날카롭게 벼려지는 순간을 경험한다면, 아마 전에 알지 못한 불쾌함이 구역질처럼 솟구칠 거야.
<퍼니 게임>의 장르는 공포 스릴러야. 여름휴가를 맞아 별장을 찾은 가족에게 불청객이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뤄. 도중에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 이 영화는 관객이 기대하는 폭력의 끝을 보여줘.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살육보다 끔찍한 건 불청객이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야. 일가족의 목숨을 걸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영화의 러닝타임을 걱정하거나, 관객이 원치 않는 결말이 될까 봐 시간을 되감기 하는 등의 행동을 하거든. 제4의 벽 너머에 있는 우리의 비위를 맞추듯 말이야.
이 영화를 선택한 건 나지만 등장인물이 나를 의식하며 범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더라고. 단순히 선인이 패배하고 악인이 승리하는 결말이어서가 아니라, 제4의 벽을 방패막이 삼아 안전하게 폭력을 관전하고 싶었던 내 위선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겠지. 영화가 끝나고 암전된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전지전능한 관객의 위치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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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한 관객’은 이제 유효하지 않아 보여. 안전한 스크린 바깥에서 자극적인 이야기를 게걸스럽게 섭취하고 있지만 자칫 어떤 사건과 엮이는 순간 우리 역시 스크린 안쪽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으니까. 대중문화 콘텐츠뿐만 아니라 뉴스, 커뮤니티 게시글, 은밀한 온라인 채팅방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어나는 사건 사고와 이를 중계하는 글, 사진, 영상으로부터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 않아. 포식자가 희생양이 되는 건 한순간이지.
미디어에 등장하는 폭력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필요는 없어.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공포와 폭력을 구경하는 건 재밌는 일이니까. 하지만 우리가 앉은 위치가 과연 절대적인지 의심해 볼 필요는 있어. 이걸 간과한다면 나도 모르는 새 스크린 안쪽으로 잠식당할지도 모르니까. 두리뭉실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글쎄, 네가 사는 곳에도 제4의 벽이 있다는 걸 아직 눈치 못 챘나 봐. 음, 이제 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