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러브의 열 번째 레터
어느덧 입추가 지났어. 아직도 더위가 가시질 않으니 실감은 잘 나지 않지만. 요즘이야 9월이 되어도 땀을 흘릴 날씨니까 여름이 참 길지. 난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는 주의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 날씨는 좀 너무해. 샤워하고 보송한 상태로 밖을 나와도 땀이 주룩주룩 나오는 날씨에는 짜증이 이만저만 나는 게 아니더라고.
오늘은 그런 연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고 차분하게 만들어줄 책을 가져왔어. 바로 백수린 작가의 단편소설집 『여름의 빌라』야. 상도 받고 많이 팔린 책이라 아마 읽어본 연이들도 있을 거야. 더워죽겠는데 웬 ‘여름’의 빌라냐고? 내가 오늘 소개할 글의 제목이 「폭설」이거든. (「폭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결말을 원치 않는 연이들은 책을 읽고 나중에 열어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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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주인공인 ‘그녀’를 관찰하는 시점으로 전개돼. 그녀는 열한 살이던 때 부모님의 이혼을 겪어. 엄마는 이혼 후 미국인인 케빈과 곧바로 재혼을 했고, 그녀는 한국에 남아 아빠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지.
아빠와 살던 그녀는 매 여름방학 한 달을 미국에서 보내게 돼. 엄마와 한 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미국에서의 한 달과, 조용한 집에서 저녁마다 찬밥을 혼자 데워먹는 한국에서의 여러 달은 그녀에게 시차보다도 더 큰 간극이었어. 그렇게 열네 살 여름방학을 맞아 미국에 간 그녀는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기로 결정해. 그 뒤로는 엄마가 그녀를 보러 한국에 왔어. 그러나 그마저도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지.
그녀가 엄마를 보기 위해 다시 미국에 갔을 때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어. 이별과 회사의 해고통보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그녀는 엄마에게 여행을 제안했고, 둘은 함께 로드트립을 떠나. 그리고 며칠간의 여행동안 그녀는 자신이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깨닫고는 혼란에 빠져.
다음날,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서 잠든 그녀가 깨었을 때 차는 눈에 완전히 뒤덮인 상태였어. 움직이려 해 봐도 차는 눈에 박히고, 휴대전화 신호조차 잡히지 않았어. 결국 그들은 차에 돌아와 바람이 잦아들면 나가서 눈을 치우기로 결심해. 차의 기름마저 점점 줄어가는 그때, 엄마가 그녀에게 말해. "넌 왜 연애를 안 하니?" 이 질문에 그녀의 감정은 폭발하고 말아. 그녀는 그동안 쌓아왔던 감정을 엄마에게 마구잡이로 뱉어내.
제대로 사랑을 받지도 못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은 배우긴 했겠느냐, 엄마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어떤 것들은 이미 내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른 엄마들이 우산을 가지고 아이를 찾으러 올 때마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풍경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는데 …….
엄마는 다만 앞을 응시할 뿐, 화를 내지도 않고 변명하지도 않아. 구조대가 와서 그들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말이야. 이번엔 그녀가 운전대를 잡았고, 그녀는 바깥이 어두워 부주의로 여린 짐승을 칠까 봐 운전하는 내내 두려워해.
그리고 사실은 이 모든 내용이 ‘그녀’가 열한 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를 낳고 그의 남편에게 하는 얘기임이 밝혀져. 주체할 수 없는 호르몬 때문에 이야기를 멈출 수 없던 그녀는, ‘이제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라는 그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그날 밤 엄마가 침묵을 깨고 했던 이야기를 말해줘. “짐승을 한 마리도 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우린 참 운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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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에 부모님이 이혼을 했어. 그때의 나는 ‘그녀’보다는 부모님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벌어진 상황에 좀 더 담담했던 것 같아. 매일 울거나 호들갑을 떠는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 태연했던 건 나 혼자였거든. 내 마음에는 마치 물에 젖은 솜 덩어리를 누가 부욱 찢은 것처럼 큰 구멍이 난 기분이었어. 구멍 뚫린 내가 초연할 수 있었던 건 남은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라. 나는 그 공백을 다른 것으로 채우는 법을 몰랐고, 내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혹은 그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선지를 선택하고 싶지 않아 마음속에서 영영 소거해 버렸으니까.
우연히 읽게 된 「폭설」 속 엄마의 모습은 어릴 적의 내 엄마와 면면이 겹쳐 보였어. 우리 엄마도 ‘그녀’의 엄마처럼 언제나 당당했고 항상 당신이 우선순위였거든. 나도 소설 속 ‘그녀’처럼 엄마를 원망했어.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내 엄마는 다르다는 느낌.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엄마의 일에게, 엄마의 삶 전체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겨 내가 선택받지 못할 때마다 익숙한 서글픔을 느꼈어. 딸로서 느끼는 서운한 감정과 엄마의 삶도 중요하다는 당위의 충돌은 내가 평생토록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였지.
그래서 설명하지 않아도 소설 속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 그녀보다는 조금 낫겠다. 다행히 브래지어를 차는 법은 엄마에게 배웠으니까.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친척들이 모이는 곳에서 나는 늘 ‘내 엄마’의 험담을 들어야 했어. 명절마다 아빠와 계모조차 가지 않는 친가에 혼자 가야 했고, 그 자리에서 할머니는 나를 앉혀놓고 이빨 복은 있는데 며느리 복은 없다며 엉엉 울었어. 우리 엄마 돈으로 금니를 했는데.
나를 사랑하고 챙겨주는 친척들이 나를 낳아준 사람을 욕했고, 나는 그들을 사랑함과 동시에 미워할 수밖에 없는 혼란 속에서 제대로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한 채 정말 괴로웠어. 지금도 명절만 생각하면 지긋지긋할 지경이니까.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상황에 놓인 게 다 엄마 탓 같은 생각이 드는 거야. 마치 눈에 파묻힌 차 안에서 소리 지르던 그녀처럼, 나는 내가 겪은 사소한 부당함을 다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치환했어. 엄마표 음식 한 번 먹어본 적 없는 것, 생일에 엄마가 내 미역국을 한 번도 끓여주지 못한 것, 그래서 내가 말랑한 진흙 같은 땅 위에 서 있는 기분인 것도, 상처를 한 번 받으면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무한히 나를 좀먹는 것도 다 엄마 탓인 것만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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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애당초 가족의 불행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엄마였다. 엄마가 아빠에게 이혼을 요구했을 때, 이모와 외할머니조차 엄마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나중에 누군가를 통해 들었다.
- 백수린, 「폭설」 중에서
「폭설」 속 그녀는 조심성이 많고, 엄마는 주저함이 없어. 그녀는 두려운 상황에서 엄마를 공격해. 이 모든 것이 애당초 엄마의 잘못이었다며 말이야.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오해와 원망은 그녀의 시야를 더욱 좁고 어둡게 만들어. 그 누구도 엄마의 편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연민을 느낄 수 없어. 지인 한 명 없는 낯선 땅에서 고작 일 년에 한 달 남짓 딸을 볼 수 있었을 엄마의 마음도 이해할 수 없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랑 없는 결혼생활 아래 자라 그에 대한 결핍이 있음을 헤아리는 것도 그녀에겐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나 제삼자인 우리는 알 수 있어. 엄마의 마음 안에 딸에 대한 사랑이 분명히 있었다는 사실을, 브래지어나 생리대 착용법을 몰라 당황했던 딸의 반대편에는 그것을 가르쳐주지 못해 마음 저려할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조심성 많은 그녀가 부주의로 여린 짐승을 칠 까봐 마음 졸이던 순간, (그녀가 보기에는) 주저함이 없고 자유로운 엄마 역시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 ‘짐승 한 마리 치지 않고 올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라고 말해. 어쩌면 이 말은 엄마가 그녀를 낳고 기르며, 그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짐승 한 마리의 목숨에도 연민을 느끼는 엄마가 하물며 딸에게 느끼는 감정이란 어땠을까. 조심하려 해도 자신의 부주의로 딸을 상처 입히고 해할까 봐 모든 순간에 마음을 졸이고, 그럼에도 딸이 자라준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결말에 이르러 그녀는, 우리처럼 제삼자가 되어 더 멀어지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엄마를 이해해. 자신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그녀 자신의 ‘엄마’에게 더 가까이 가는 방법으로 말이야. 케빈과 사랑에 빠졌을 때, 눈에 파묻힌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딸의 원망을 듣고만 있을 때, 조심성 많은 그녀와는 다른 성정을 가진 엄마가 ‘짐승 한 마리 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운이 좋구나’라는 말을 할 때. 어쩌면 서로 사랑하는 부모 아래 자라지 못한 아픔을 딸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에 떨었을지도 모를 엄마의 마음을, 그녀는 수십 년 전 그녀와 같았을 한 아이를 낳고 깨닫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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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 모든 이야기를 나와 엄마에 투영하기엔 무리가 있겠다. 엄마는 외도를 하지도 않았고, 독문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여기 나오는 엄마만큼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떨어져 살았어도 고작 한국 안이었으니 내가 엄마에게 느끼는 각별함의 깊이도 다를 테고 말이야. 그렇지만 이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마다 매번 울게 돼. 우리 엄마도 내게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쩔 수 없는 시련 속에서도 엄마로 인해 내가 상처 입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마음을 졸였을까? 이미 내 상처는 오래전에 묻어두었고, 그렇기에 내가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꺼낼 일은 없을 거야. 다만 이 책을 읽고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나의 관계 바깥에서 엄마를 봤어. 마치 내가 소설 속 ‘엄마’를 본 것처럼. 이혼했을 당시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아팠다’고 말한 엄마. 그때 엄마의 나이는 고작 서른아홉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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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내 마음 군데군데에는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의 가장자리에는 엄마에 대한 오해가 묻어있어. 지금은 미움과 원망과 사랑이 얽히고설켜 나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로 감정의 타래가 커져버렸고.
그렇지만 내가 언젠가 아이를 낳는 날,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엄마를 많이 많이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는 엄마가 살아갔던 삶의 모든 모순을 조건 없이 껴안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내 마음의 모든 구멍들을 오해가 아닌 다른 것들로 메꿀 수 있게 될 거야. 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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