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cript. 가끔은 진실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니까.
천선란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 <노랜드>를 읽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님이라서, 첫 번째 단편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에 이어 두 번째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했을 때 이전작에서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이 떠올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했다. 초판본에는 작가님의 사인이 첫 페이지에 인쇄되어 출간된다는 건 책을 받고서 알았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천선란 작가님의 글에서는 언제나 인류에 대한 연민이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이면엔 그들을 향한 끈질긴 믿음과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어서, 그리고 끔찍하도록 현실적이라서 처음엔 내가 읽고 있는 게 SF 소설이 맞나?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가고, 이제까지 나는 SF라는 장르를 너무 간과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지금껏 내가 찾아 헤맸던 낭만과 사랑이 가득했다. 말로는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정의 내려진 기분이었다.
기억에 남는 챕터들을 적어보기 전에 우선, <노랜드>는 <어떤 물질의 사랑>과는 너무나도 다른 결의 이야기였다. 물론 나는 <어떤 물질의 사랑>으로 작가님께 폴인럽 했기 때문에 처음 책을 읽고 느꼈던 그때의 그 기분, 조명, 온도, 습도... 가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있어 그 향수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치가 아주 높았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노랜드>는 <노랜드>만의 분위기와 뚜렷한 메시지가 다시 한번 나를 사로잡아주었기 때문에, 두 번째 단편집 또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걸 신선한 충격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노랜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챕터는 <푸른 점> 이었다.
'창백한 푸른 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주가 세계지도와 같다면 지구의 방위는 어디쯤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발전은 멸망에 비례했다.>, <혼돈은 지구보다 더 빠르게 사람을 멸망시킬 테니.> 라는 구절이 계속 맴돈다. 딱 요 근래 인류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 무너져가는 환경, 염원하던 일들의 실패, 절망... 가끔은 인터넷이 이렇게까지 발전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을 텐데... 싶은 소식들이 들려올 때면 마음이 힘겹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게 어색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예고된 멸망을 기다리며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후회나 포기, 자책이 아니다. 그들이 함선을 타고 다른 우주로 나아갔던 것처럼. 지구에서의 기억은 남겨두고 떠나겠다 다짐했던 것처럼. 지구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먼저 떠난 이들에게 <'계속 가라.'> 고 했다. 그 한마디의 문장이 나를 위로했다.
<바키타> 에서 느꼈던 감정은 내가 주인공과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었을까. 멸망한 행성에도 생명은 숨 쉰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도 같다. 주인공은 멸망한 지구에 불시착한, 지구를 떠났던 '인간'이고, 우주로 돌아가기 전 다시 마주한 지구를 기록한다. 주인공의 기록에는 그가 사랑했던 지구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 과정에서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지구는 한 때 자신이 살고, 숨쉬었던 행성임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주인공이 지구를 떠날 때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은 현실의, 현재의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하는 충고이자 마지막 경고처럼 들렸다. 동시에 그가 반성하는 과거와, 다음을 기약하는 굳은 의지가 날 크게 흔들었다.
<문명의 흔적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치열하게 쌓아 올린, 인간이 인간을 죽이며 쟁취하려고 했던 그 번영은 결국 우리가 내뱉은 잔해로 무너진 격입니다. ... 변화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과 기록을 남겨봤자 이 기록을 흥미롭게 들어줄 인간이 지구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그 인간은 이미 진화 이전의 개체로 사라졌다는 생각이 저를 우울하게 합니다.>
... <저는 벌써 고민입니다. 우리가 살았던 첫 번째 지구에 대한 기록을 남길 것인지에 관해. 그래도 대장님, 저는 인간이 바키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두 번 다시 어떤 것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에게> 는 정말 많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내게 가장 뚜렷하게 전해진 메시지는 딱 하나였다. 그동안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수없이 외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추모했던 이들을 떠올렸다. '다음은 괜찮을 거야. 네가 누리지 못했던 남은 삶의 행복과 영광을 다음 생에 덧붙일 거야. 그럼 다음 생은 행복만 가득할 거야.'
우리에겐 바라고, 또 바라고, 잊지 않겠다고 또 한 번 되새기게 되는 죽음이 있었다.
이외에도 스스로 인류의 무기가 된 사람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 <흰 밤과 푸른 달>, 두 개의 인격에 대한 <제, 재>, 복제된 기억에 대한 <옥수수밭과 형>, 허물어진 유토피아 <두 세계> 그리고 <이름 없는 몸>, <우주를 날아가는 새>,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까지. 모두 놓칠 수 없는 이 세계의, 이 우주의 어디선가 들리는 작은 소음에 귀 기울여 보길 바란다. 내용을 요약하지 못한 뒤쪽 세 개의 챕터는 돌이켜 생각해봐도 어느 한 가지로 형용할 수 없게 복잡하고도 무거운데 감동을 주는, 한마디로 달콤 씁쓸한 이야기다. 책의 후반부에 실려있는 글들인데, 읽고 나면 조금 지칠 수도 있으니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작가의 말을 보면 '읽고 나면 지치는 책이 될까 봐 두렵다.'라고 적어두셨는데, 정답이다. 솔직히 나는 <노랜드>를 읽고 나서 조금 지쳤다. 하지만 나 역시 가끔은 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떠올리고, 지치고 싶어 책을 읽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주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모든 글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는, 작가님이 바란 행복과 사랑이 간간히 나를 웃고, 울게 만들었다. 분명 '이유 없이 살아가자는 말을 너무 길게 한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내게 <노랜드>는 오히려 그 이유를 만들어준 책이 됐다. 참 신기하게도.
<노랜드>를 읽다 보면 이 지구는 인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외계인이고, 침략자이고, 동시에 파괴자의 입장에서 이 지구를 잠시 빌려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제목이 <노랜드> 인 것이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누군가의 세상.
<노랜드>는 어쩌면 누군가에겐 무력감을, 우울감을, 분노를, 오만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천선란 작가의 글이 끔찍하도록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실제로 우리 주변의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있을 일이고, 훗날 나의 미래일 수 있는 일이다. (혹은 과거였을지도 모르고.) '글'의 마법 같은 일들은 대개 이런 부분에서 나타난다. 해결될 수 없는 일들이 마법처럼 해결되고, 시련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본다. 이 글에서 모든 주인공이 해피엔딩을 맞이했다고 할 순 없지만 인물들은 각자의 최선을 향해 나아간다. 각자의 가장 옳은 방법을, 조금 더 나은 다음을 위해서, 스스로를 혹은 다수를 위해서. 그런 다짐들이 인류를 성장하게 한다. 나 또한 인류가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기를 바란다. 모두가 입을 모아 예상하는, 이미 정해진 끝들은 멈추거나 걷잡을 수 없다. 그래. 하지만 가끔은 진실보다 믿음이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