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글
‘ 말해야 하는 ’
말 수를 줄이고 싶은 날이 있었다.
필요 없고 무익하거나 갈등을 일으키고 다툼을 부르는 말을 한 후에는 더욱 그랬다. 말하고 보아야 그 말이 후회할 말이라는 것을 깨닫다가 어느 순간부터 말하기 전에도 이 말을 하면 난 후회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직관을 통해 그것을 갈파하고 알아도 훈련되지 않은 입은 그 말을 바깥으로 내어 놓고야 만다. 더 철없던 시절에는 이런 갈등도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적도 있었다. 그것이 우리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하는 말들을 하면서 주변에 대한 배려 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다하는 어른들이나 타인을 보면 부럽기까지 했다. 삶이 나이를 내게 얹어주기 시작하고 사려 깊은 묵상을 추구하면서 말의 중요성과 말로 기인한 많은 좋고 얹잖은 일들이 나의 인생에 발생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상대적이기도 하지만 더 낫고 진화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깨달아 가므로 말의 가치를 차츰 더 알게 되었다.
진갑의 나이가 되었다. 말을 절제하는 것이 조금 되어갈 즈음, 때로는 그냥 일상을 소묘하는 말이 할 말없는 부부 사이를 위해 엄청 유익하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하루에 물의 섭취를 어느 양 이상 하라는 의사의 충고처럼 난 내게 물과 같은 흐르는 말이 내 주변을 윤기 있게 하는 것도 느낀다. 나의 편견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을 넣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을 말의 표현으로 소묘할 때 혈액이 내 몸의 핏줄에 흘러 피가 맑아지고 영양분을 골고루 잘 공급할 수 있듯이 하루의 일상이 맑아지고 공기의 흐름을 타고 소통의 길을 제공되는 것을 느꼈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좋은 말은 일상의 소묘하는 말을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느닷없이 간혹 나오게 되는 것 같다. 마치 영양 있고 맛있는 다크 초콜릿처럼 좋으면서도 맛있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오늘은 일상의 소묘를 넘어 말의 절제를 가지고 꼭 내가 말해야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꼭 말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좋은 말이어야 하며 내가 가꾸어 온 정체성을 잘 드러내야 하는 말이어야 하겠다. 또 부당할 때 격한 감정을 다스린 상태에서 어떤 사실을 때에 맞추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말이다.
그리고 깨달아 가면 생명이 다 그렇듯이 나에게 일어났던 기적의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것들은 기적일 수도 있겠으나 내 품은 기도의 결과나 응답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그런 것을 나누는 말이다. 마음에 무엇을 바라왔는지도 중요하지만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야 마는 기도를 불렀던 바람들이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가져오는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말해야 하는 놀라운 일들에 대한 내 삶의 새로운 살아있는 증명이 될 것이다.
무엇이 놀라운 일이었을까?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해 보자. 첫째는 내가 그 많은 정자를 이기고 태어난 잉태의 순간이다. 우연일까? 둘째는 내가 생명을 이 시간까지 육체의 앓았던 여러 아픔의 시간들을 지나 생명이 내 육체 안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그토록 많은 신이 있지만 그중에 어떻게 난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도록 하나님을 찾고 마음에 견고하게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고 믿음을 받게 되었는지도 놀랍디. 넷째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 지금의 가족들이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다섯째는 많은 재능 중에 한 가지 무용이라는 장르를 택하고 이제가지 연마하고 안무할 수 있는 무용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다. 예를 들면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에게 전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누고 꼭 말해서 가족의 일원인 나를 증명하는 이런 놀라운 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의 것들이다. 그리고 말의 하여 나를 아는 너의 것도 되어야 한다.
놀랐다. 여기에서 말할 수 없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말해야 하는 놀라운 일이 내 인생에서 너무도 많다. 시간도 지면도 모자라는 오늘은 여기까지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