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몸 새벽글

'집'

새벽 글

by 지영훈

집을 생각하면 나의 평생 동안 고마운 곳이다. 나라는 생명체가 밤동안 잠을 청할 잠자리가 있는 곳이다. 추위를 막아줄 벽이 있고 하늘의 비와 눈을 막아줄 지붕이 있고 낮에 집 밖에서 활동하는 동안 신었던 신발을 벗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이 가지는 소중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살면서 외로움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하는 소리를 이 언택트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많이 듣기도 하지만 외로움보다는 집이 더욱 소중하다고 난 생각한다. 물론 그 집이 어떠한 집인지는 전제하지 않고 단순히 나의 몸의 누울 자리를 생각할 때 그러하다. 그러고 보면 누울 자리 하나 잘 만들고 잘 가꾸어야 하겠다. 누울 자리를 잘 가꾸는 것을 먼저 살피면, 침대를 살까? 침구들을 새로 구입할까? 아니면 오늘 침구들을 빨래하고 주변이라도 정리하자.


누울 자리 다음에는 집은 벽이 있어 집이 된다. 타인과 가족을 구별하는 벽이다. 아무리 낮동안에 좋은 관계를 가졌어도 일정 시간만이다. 서로 사이에 벽을 가진다. 그것이 오히려 중요한 것 같다. 결혼하면 부모와 벽을 가진다. 결혼하지 않더라도 성인이 되면 벽을 가지기 위하여 분가해 나간다. 만나기 위해서는 문 앞에서 노크를 한다. 방문 약속을 하고 가야 한다. 그렇게 거리를 가진다.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누군가 들어오고 나갈 때 노크를 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부부가 되면 무촌이 되어 한 집에서 산다. 아니 한 방에서, 한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된다. 잠이란 모든 경계를 풀고 밤에 오로지 무방비 상태에서 잠을 자는 동안까지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 의미 있는 일이다.


시간이 흘러 열매를 맺는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돌보는 집이 된다. 그렇게 일정의 시간이 지나면 각각 다시 거리가 필요하게 된다. 인격체로서 독립되어 자녀들이 각각 주체가 되도록 충분히 보호되면 관계에서 노크가 없으면 불편함이 생기는 되는 것이다. 부부도 그렇다. 한 몸이 되어 지내다가 다시 거리가 필요해진다. 관계가 멀어진다는 의미를 넘어선 더 깊은 의미에서 인간 존재로서 거리이다.


삶은 인생이다. 인생은 삶 속에 있다. 살아있는 생물의 일이므로 변할 수밖에 없다. 나라는 생명체와 너라는 생명체의 조건이 변화한다. 하나가 둘이 되고 그 하나가 다시 다른 하나와 합해져서 다시 둘이 되고 다시 하나를 더해 셋이 되고 넷이 된다. 그런 중에 집이 바뀌고 집 안의 사람이 바뀌어 변화를 꿰하기도 한다. 집안에 무엇이 있어야 좋은가?


집에 한결같이 있어야 할 것은 선함이다. 벽이 없기에 선 함이 깃들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마음도 육체도 안전할 수 있는 곳의 조건은 선함이다. 그 위에 인내와 한결같은 사랑이 필요하고 선함으로 하루의 곤함을 씻을 수 있고 에너지를 보충하여 문밖 세상에 그 선함을 가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벽이 없는 사회에서 노동과 일을 하며 그 선함을 도구로 베풀고 발휘하다가 집으로 들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면 때와 먼지와 진흙이 묻은 신발을 벗는다. 고단함과 더불어 새로운 것들과 자극과 경험들도 가지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쉰다. 선함으로 보충하고 그 선함을 가지고 다시 나간다. 그리고 경험을 가지고 다시 집으로 간다. 경험과 배움과 관계를 사냥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집으로 간다.


아! 나의 집!

나와 거리가 없어도 되는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 선함으로 가득 충전할 수 있는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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