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글 / 2022-1
‘무엇보다도’ 2022년 11월 9일
인생 몇 년을 살까?
하늘에 달린 일이지만 나 자신의 적극적인 태도가 하늘과 협연주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픈 날들이 때때로 있었다. 열이 38도에서 39도를 너 다섯 날 간 가므로 입원하여 위험한 고비를 넘겼던 시기는 내 나이 50대 초반이었다. 일했고 일하던 시기, 아픔의 상처는 넘치려는 물길에 물고를 내어 둑이 넘치는 것을 막아주듯이 나의 넘치는 일을 자연스럽게 줄이게 해 주었다. 코로나에 걸린 첫날에 숨이 턱턱 막혀서 호흡이 어려워 불안했고 그 밤을 정성스럽게 원격 지원하던 주변의 돌봄으로 잘 넘기자 또 쉽고 수월하게 아픔이 지나갔다. 원래 체증이 있었으나 몸을 돌보기 시작하고 기도하면서 스트레스를 없애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결정의 순간에 나를 내려놓게 함으로 더 중요한 것, 더 사랑하는 것, 선택하지 않았을 때 더 슬픈 것을 제하면서 가치를 선택하고 일을 다스리며 일의 양을 반으로 줄였다. 손해를 안 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 위에 ‘무엇보다도’ 택해야 할 것을 택한다. 가능했다. 스트레스를 오히려 덮었다.
아이러니하다. 스트레스를 받는 무거운 일이 그 핵심에 다가가자 오히려 그 일을 없애는 것보다 더 그 일을 해결해주는 키가 되었다. 기쁨이 되고 가슴에 자랑이 되고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다. 이 일은 3년간의 코로나 이후 공장-내가 18년간 일해 온-을 매각하려던 마지막 순간에 그 어려움을 감당하므로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세워 매각하지 않았을 때 가졌던 일에 대한 나의 스스로 진단이다. 그래, 그래서 ‘무엇보다도’ 그 무엇이 무엇일까? 자랑, 물질, 사랑, 만남, 명예, 그 시간, 건강 들 그 무엇보다도 택해야 하는 유기적인 종합체인 올바른 결정! 그 결정은 나로부터 오지 않는다. 축적된 기도와 미래를 향한 예측과 현재를 인지하는 종합적인 인지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힘이다.
이제 이 한 해를 조금은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이전과 이후를 연결하는 경계에서, 나의 인생 진갑을 지나는 경계에서, 아! 또 있다, 나의 자녀가 드디어 스스로 삶을 이루려 짝을 만나 떠나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난 그동안 썼던 글들과 앞으로의 인생을 이끌어주고 오늘을 오늘답게 행복하게 해 줄 글을 쓰기로 맘을 먹었다.
‘무엇보다도’ 난 그 매 순간의 선택의 이유를 찾아 기록할 때가 오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