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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Mar 19. 2022

일하는 기쁨

사랑하는 일과 사랑해야 하는 일


  10개월의 백수 생활을 마치고 이직하였다. 이렇게 오래 쉴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다시는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퇴사했는데 다시 회사를 다니면 무슨 소용인가. 물론, 그 소용은 벌이에서 찾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퇴사 후 생활과 구직 기간 동안 이전과는 다른 사실을 알아차렸다.


 첫 번째, 나는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한동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집에서 혼자 일한다는 생각에 뜻 모를 부담이 덜했다. 가장 편안한 집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일 자체가 가뿐하게 느껴졌다. 사실 인턴을 시작할 때부터 '이번까지만 일하고 회사 다니지 말아야지.'가 고정값이었던지라 나조차도 나를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0개월을 놀아보니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는 더욱 그렇다. 돈에 상관없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면 가슴에 불이 붙었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내는 사람일 뿐이었다.


 두 번째, 생각보다 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전 직장은 여러모로 내게 적합한 근무 환경이었다. '내 일만 잘하기'가 가능했다. 칼 같은 정시 출퇴근이 가능했고 연차 사용 역시 자유롭고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업무 강도도 적당했고 연봉과 복지 역시 적당했다. 직장 생활이 꽃밭일 수 없으니 이 정도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배터리가 닳는 줄 모르고 나댔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에 괜한 책임을 진다거나 불만을 쌓아두고 티를 내지 않는 일들을 반복했다. 나는 그저 인정받음에 매달렸다. 내 마음이 어떤지는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개운하게 퇴사를 하고 명상을 시작하면서 응어리가 많이 사라졌다.


 세 번째,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작년 1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회사에 입사했다. 그 말은 한 달에 한 번씩 퇴사를 했다는 것이다. 퇴사라고 부르기도 창피하지만 말이다. 11월의 구직 조건은, '알만한 기업+전보다 높은 연봉+자격증 관련 직무'였다. 조건에 딱 들어맞는 곳에 입사했다. 하지만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수직적이다 못해 내리꽂는 문화, 무조건 1~2시간 후에나 가능한 퇴근은 고려하지 못한 조건이었다. 장단점이 극단에 가있는 회사였다. 나는 장점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했다.

 12월의 구직 조건은, 내 발로 나왔지만 나 자신이 한심한 기분과 갚아야 할 빚의 압박으로 '전보다 높은 연봉'만 생각했다. 다행히 집과 가까운 거리에 그 정도면 괜찮은 연봉을 주는 곳을 갔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내부시설이 있어 보였다는 점이다. 그럼 뭘 하나. 점심시간이 따로 없는 업무 강도와 인간관계를 향한 불필요한 서비스 정신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았다는 말이다. 그만둔 것에 후회는 없었지만 이때부터 나를 좀 싫어했다.

 1월은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그냥 아무 회사나 들어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정말 아무 곳이나 들어갔고 식겁하고 그만두었다. 연봉이 높고 점심이 맛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월에 지금 회사로 이직을 했다. 20대 초반에 5인 미만 사단법인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5인 미만 사업장은 절대 가지 않는다고 결심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곳에 정착하였다.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장의 경력과 규모에 비해서 괜찮은 매출이 월급을 제 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업무 강도도 적당하고 인수인계 기간은 충분하며 하고자 한다면 다른 직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직 완료!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모두 껍데기였다. 돈을 좀 더 받았으면 좋겠고 이름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고 내가 인정할만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것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이 나를 초조하게 했다. 남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조건들을 메꾸려고 발을 동동대는 내가 하잘 것 없이 느껴졌다. 퇴사하고 쉬는 동안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사랑하는 일을 하거나,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자.'라고.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하는 일도 잊지 않고 한다. 그게 10개월의 백수 생활을 끝마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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