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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May 21. 2023

2023년 상반기에 만난 여성들


올해 초부터 여성단체 일을 하면서 만났던 멋지고 귀여운 여성들을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첫 번째, 황량한 도시에서 햇살을 틔우는 사람. 김심지씨.
알고 지내던 선생님의 도반으로 올해 첫 모임에 참가한 분이다. 모임 안내 문자를 보냈을 때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늦으니 진행 질문을 알려달라고 하셔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진행자인 나조차 ‘가볍고 재밌게’라는 마음으로 기획했는데 이렇게나 정성스러운 태도라니. 무엇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점을 정확하고 정중하게 요구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심지가 단단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씨의 첫인상은 눈빛이 곧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보낸 문자처럼 사람을 어떤 오해 없이 또렷하게 보는 사람이었다. 그것의 바탕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느껴졌다. 그가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자신이 만난 여성들에게 위로를 받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다른 여성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고, 따뜻한 사람이 고 싶다고 했다.
사실은 나와 다른 결의 사람을 만난 낯섦이 있었다. 나는 친절하나 무심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곤 하는데 실제로 웬만한 개인에게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인류애로 가득한 햇살 같은 사람을 만나니 빛 너머에 그림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묘한 불편함을 감추며 친절함을 최대치로 올리고 있을 때, 심지씨는 차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깊은 생각에서 느껴지는 이야기의 무게가 그의 눈빛을 타고 전해졌다. 심지씨는 초가을의 볕 같은 사람이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은 쓸쓸한 공기가 느껴지지만 그만큼 따뜻한 햇빛 한 줌이 소중하다. 그 빛이 심지씨였다.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심지씨를 생각한다. 뭉근하게 따뜻한 그의 온기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노곤해지고는 한다.

두 번째, 공주 아니고 왕. 강민주씨.
양귀자의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주인공 이름이 강민주이다. 책을 본 이라면 알겠지만 강민주는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대단하고 신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인물이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다른 이들에 군림하려고 하는 점이 아주 자연스럽다. 이 분의 이름이 강민주인 것은 소설 속 강민주와 아주 흡사한 본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대감댁 한 애기씨같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에 나는 흡사 되련님 뫼시는 머슴이 된 것 같았다. “선생님. 이것 좀 드십셔. 헤헤.” 하며 웃는 내가 좀 싫었다.
민주씨는 마지막 회차 모임에 참가했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서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질문을 하면 간결하게 정리된 답변이 나왔다. 내가 진행을 할 때면 옆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에 뺨 한쪽이 그을리는 것 같았다. 심지씨의 눈빛이 직선으로 왔다면 민주씨의 눈빛은 사선 아래를 향한달까. 그 옛날 왕좌에 앉은 자만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신기한 은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말 신이 났다. 세상에나. 강민주 같은 여성이 내 눈앞에 있다니. 나는 민주씨가 말하는 족족 크게 웃었다. 남들과는 다르다 못해 특별한 말이 너무나도 통쾌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씨의 화수분 같은 매력에 흠뻑 적셔지고 있었다.
“공주처럼 컸어요.” 라는 민주씨의 말에 ‘공주 아니고 왕인 것 같은데요.’ 하고 주접을 떨려는 입을 막느라 바빴다. 모임에 오기 전에는 어떤 얘기도 안 할 것 같았는데 하게 되었다는 민주씨의 말에 뿌듯함을 느끼며 애기씨 가는 길을 배웅했다.

세 번째, 기세가 좋다. 우리 단체의 모든 사람들.
‘기 센 여자’라는 말은 확실한 부정의 뜻을 담고 있다. 불편하기 때문에 배척해야 하는 존재인 기 센 여자라는 말은 여성을 가두는 수많은 말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기억은 흐릿하나 몇 년 전에 ‘기가 센 것이 아니라 기세가 좋은 것이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그 문장을 그대로 그려낸 날이 있었다. 2월에 우리 단체의 총회가 있었고 많은 분들이 모였다. 연륜과 사회적 위치에서 나오는 어떤 바이브가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누구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는 들떴다. 대단한 기세를 가진 사람들 틈에 있으니 시든 콩나물 같은 기운을 가진 나도 빳빳한 풀잎정도는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끝까지 버텨온 자만이 지닌 자부심이 모두에게 있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여성들 모두를 사랑하게 되었다.

쓰고 보니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누군가 귀여워 보인다면 사랑에 빠진 것이다. 2023년 상반기에 만난 귀여운 여성들 마침. 하반기에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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