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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Mar 19. 2022

같은 얼굴


 친구는 함께 공부하자고 했다.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우리도 우리만의 언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말했다. 나는 넌더리가 났다. 오래전부터 조금씩 나는 지쳐있었고 이제는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웃기게도 피할수록 마주하게 됐다. 각종 기사와 SNS에 고통받는 여자들이 떡하니 보였다.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서 못 본 척하면 머릿속에는 누군가의 손을 뿌리치는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그려졌다. 나는 그 죄책감과 수치심이 싫어서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감정에 끄달렸다.


 몇 년 전, 혜화역에서 하루 종일 소리치고 다시 출근을 하면 "이것도 미투인가. 별 게 다 미투이네."라는 소리를 점심시간에 듣는 날이었다. 나는 한 젓갈도 건져내지 못한 우동을 밀어 두고 매슥거리기 시작하는 배를 문질렀다. 어느 날은 육아 휴직 후 복직한 동료에게 "당신도 혹시 맘충?"이냐는 조롱과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무안한 얼굴을 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뒷머리의 반이 빡빡 깎인 나를 보고 "왜 그러는 거야?"라는 질문을 받게 됐다. 어쩌다 치마를 입거나 머리가 좀 길면 "그래. 이렇게 좀 해."라는 말을 들었다. "남자 호르몬이 들어가야 예뻐지지."라던가 "무슨 자신감으로 화장을 안 해?"라는 말도 들었다.

 면접 자리에서 결혼 계획이 있냐는 질문이 익숙해질 때쯤, "결혼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머리가 왜 그렇게 짧아요?"라는 물음은 여전한 단골 질문이었다.


 나는 여자들을 만났다. 머리가 짧고 화장이 진한 여자, 머리가 길고 화장하지 않은 여자, 브래지어가 집에 없는 여자, 포르노 사이트 이미지 보정을 상사로부터 요구받은  여자, 불법 촬영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말을 들은 여자, 스쿨 미투를 경험한 여자, 성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여자, 온갖 폭력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책으로 낸 여자, 매주 일요일에 여자들과 함께 산을 오르는 여자. 아주 많은 여자들을 보았다. 내가 받은 그 숱한 질문들은 내 안에서조차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들을 만나고 소리로 내뱉어야 조금씩 부서져 내렸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닳아갔다.


 "나를 지키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에게도 찾아왔고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자 다짐했다. 친구들을 새로 만났다. 그저 만나서 재밌게 놀자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좋았다. 상을 받았다는 영화를 보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친구 집에서 떠들었다. 하지만 해가 지고 대화가 끝날 때면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내가 만났던 그 여자들과 똑같은 얼굴로 소리를 냈다. 나는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도 이 얼굴들을 보게 될 것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공부를 시작했다. 한 손으로 들면 손목이 힘 없이 꺾이는 두께의 고전을 골랐다. 나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댔다. 그리고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여자들이 쓴 글을 읽었다. 그 여자들은 살아남았다. 아니 그 여자들 역시 살아남았다. 살아서 글을 썼고 내가 그 글을 읽었다. 나는 그 여자들, 내 친구들, 내가 모르는 이름 없는 여자들을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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