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하여(3)
요즘 2030 세대가 부모 세대처럼 회사에 헌신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열심히 일하며 회사에 충성해 왔음에도, 40대가 되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를 불안해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충성의 대가가 반드시 돌아오는 건 아니구나 하고.
그렇다고 회사를 취미로 다닐 수는 없다. 억지로 눈치만 보며 하루를 버티기에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다. 그건 내 가치관과도 맞지 않는다.
고백하자면, 요즘 나는 회사 생활이 권태롭다. 누가 “지쳤나요?”라고 물으면, 솔직히 “네, 지쳤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지친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다시 활력을 찾고 내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자주 묻게 된다.
입사 3년 차가 되니 업무에 익숙해지면서도 여전히 궁금한 것들은 많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늘 밀려오는 다른 업무에 묻혀 사라진다. 회사란, 결국 ‘내가 궁금한 일’보다 ‘상사가 궁금한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곳이다.
직장인의 일 대부분은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다. 반복되는 업무는 흥미를 떨어뜨리고, 그 끝에 권태가 찾아온다. 요즘 나는 “일하기 싫다”, “집에 가고 싶다” 같은 말을 습관처럼 내뱉곤 한다. 처음엔 속으로만 하던 말이 어느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말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팀 분위기에 은근한 그림자를 만든다. 모두 힘든 와중에 더 무거운 말을 보탤 필요는 없다. 예전엔 이런 ‘징징거림’을 싫어했는데, 요즘 내 모습에서 그 기색이 보여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신입 때는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일이 익숙해지고 새로움이 줄어드는 어느 시점에 권태가 찾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는 6년 전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가고 싶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원까지 다니며 꿈꾸던 자리였는데, 막상 그곳에서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그만둘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날도 생긴다.
의욕이 있을 때는 ‘돈 받는 만큼 잘해야지!’라고 다짐하면서도, 업무가 끝없이 밀려올 때면 ‘내 회사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라는 마음이 들쑥날쑥한다.
어쩌면 직장 생활은 ‘수동적인 삶’을 택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간절한 꿈이 있었다면 지금쯤 내 이름을 걸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 여유롭게 사는 삶’을 막연히 바랐지만, 현실의 직장생활은 여유와 거리가 멀었다. 경제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시간=돈’의 구조 안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의 본질인 ‘개발’ 자체는 내 적성에 맞는다. 분석하고 개선하고 적용하는 과정은 여전히 재미있고 의미 있다. 다만 그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자잘한 업무들, 이른바 ‘잡일’을 피할 수는 없다. 직장인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위에서 시키니까 한다”라고 생각하면 일은 금방 지겨워진다.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위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일이다.
‘나도 궁금하다. 이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이 작은 마음 하나가 일을 조금 더 ‘내 일’로 만들어준다.
모든 일이 즐겁지는 않다.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선점이 보인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 보면 주인의식은 생기지 않는다. 내가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해 볼 때, 그제서야 일은 진짜 ‘내 일’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잘 풀리지 않는 프로젝트라도 “여기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건 무엇일까?”를 묻는 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자세.
그리고 팀 전체가 지쳐 있어도, 묵묵히 오늘의 일을 해내는 꾸준함이다.
지겹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미룰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면, 고되고 지겨운 일도 내 의지로 해내야 한다.
지금 맡은 프로젝트를 조금 더 소중히 여기며,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끝까지 가보는 것과 중간에 멈추는 건 분명히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