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하게 행복했다, 수고했다 너도 나도!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날이 왔다.
육아휴직의 마지막 날, 기분이 묘하다. 24살 일을 시작한 이후 이렇게 길게 쉬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없다는 것의 요상함에 어리둥절하던 몇 주가 지나자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작은 생명체가 내 곁에 왔다. 그러고서는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육아휴직의 마지막 날이 나에게도 왔다.
필요에 의해 나를 찾는 '사람'이 아기 한 명뿐이었던 - 이토록 강한 강도로 나를 중요하게 찾는 사람은 그간 없었지만 - 시간은 끝나고, 다분히 여러 사람의 필요에 의해 다시 '쓰이는' 날이 어쨌든 돌아온 것이다.
크게 다를 바 없는 주말이었지만, 그래도 휴직 마지막 날을 기념하려고 오늘은 조금 다른 일정을 보냈다. 그 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도 하고 지금 이 기분과 감상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말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급하게 브런치를 켰다. 원래라면 떠오르는 것들을 간략하게 적어 <작가의 서랍>에 모셔두었다가, 다듬고 살을 붙여 발행하는 편인데 (풀어썼지만, 쉽게 말하면 그냥 게으른 편..) 오늘만큼은, 그냥 지금 이 기분을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오늘 나는,
전시회를 보고 왔다.
아기 외에 무언가를 '빤히' 본 적 없는 시간들이었다. 가끔 아기가 잠을 자는 시간에는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긴 했지만, 늘 5분 대기조였고 귀는 아기에게 향해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싶었고, 무엇을 하면 휴직 마지막 날이 뜻깊을까 고민하던 때에 그림을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에 가고 싶다'는 나의 지나가는 말을 놓치지 않아 준 친구 덕에 전시회에 다녀올 수 있었다. 복직 이후 아기를 봐주시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와주신 시어머님 찬스로 친구를 만나, 편한 마음으로 그림을 보고 '생활' 외의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란 것을 해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안 그래도 예민하지 못한 내가, 짧은 안테나를 힘겹게 뽑고 뽑아내 최선을 다해 아기에게 곤두세운 9개월이었다. 이제 안테나를 다른 곳에도 향하게 하는, 그리고 충분히 잘 '왔다 갔다' 하게 할 수 있는 연습을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회에 다녀온 것은 좋은 마무리자, 시작이었다.
축배의 맥주를 들었다.
오늘따라 유독 잠에 들지 않던 아기도 옆에 앉혀놓고 맥주를 한 캔 했다. 남편과 둘만 있었다면 특별한 멘트 없이 '짠'으로 끝났을 맥주타임이 살가운 어머님 덕에 '축하자리'가 되었다.
"우리 며느리 복직 축하합니다, 짠-!"
"축하..!? 축하할 일일까요, 어머님?"
"축하하려면 축하할 일이지!!"
나의 어리석은 질문에
테스형 같은 현명한, 연륜 묻은 답변을 해주셨다.
축하하려면 축하할 일이다. 정말로.
훌쩍훌쩍 커가는 시기의 아기가 나날이 새롭게 뽐내는 예쁨을 목도하지 못하고 지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내가 이렇게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간단해 보여도 정말 많은 것을 함의한다.
내가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수많은 행운의 교집합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가령,
아기가 아팠다거나,
내가 아팠다거나,
도움을 줄 어른이 양가에 아무도 안 계셨다거나,
돈으로라도 노동의 값을 매겨드리고픈 시터 선생님마저 못 찾았다거나,
돌아갈 직장이 없다거나,
등등의 상황 중 하나만 발생해도 나의 복직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축하하려면 축하할 일인 것'이었다.
마주할 상황이라면, 축하로 시작을 해보자!라는 어쩐지 성장소설 속 주인공 같은 마인드로 맥주캔을 '짠' 하게 되었다.
잠든 아기를 괜히 한 번 더 안고, 머리칼을 넘겨주고, 사진 도 한 장 남겨봤다.
엄마 육아휴직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아는 것 마냥 늦은 시간까지 안 자던 아기는 밤 열 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든 아기를 벅찬 마음으로 바라보다, 괜히 머리칼을 한 번 더 넘겨주고, 깨지 않을 만큼만 세게 안아봤다. 그리고 매일매일 아기에게 해주던 말을 한 단어씩 더 진하게 내뱉어봤다.
"서아야 사랑해, 엄마 아빠한테 와줘서 고마워.
"서아 덕분에 엄마 아빠는 너무 행복해."
정말 '찐'하게 행복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행복한 헌신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엄마를 간호하던 때, 조건 없이 엄마를 위했지만 마음이 행복하지 않던 시간이 떠올랐다. 괜히 눈물이 나려 했지만 잘 참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일'을 해야 한다 이야기하던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 생각하면 나는 조금 더 씩씩해져야겠다.
9개월의 성장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사진을 모아봤다.
처음 나에게 온 그 날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한데,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아기는
어느덧 제 몫을 하는 아기가 되었다.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 사실 충분한 제 몫이 아니겠냐마는,
혼자 고개도 못 돌려 손수 옆으로 뉘어 줘야 했던 아기는
어느덧 목을 가누더니 혼자 앉을 수도 있게 되었고, 앉는
것도 모자라 데굴데굴 구르며 온 집을 휘젓고 다닌다.
엄마가 주는 분유만 먹다가도 지쳐 잠이 들던 아기는
자기 간식인 줄 어떻게 알고 과자에 손을 왕창 뻗는 모습으로 엄마 아빠를 웃게 할 줄도 알게 되었다.
낮을 같이 할 때는 분명 크는 게 안 보였는데,
한 밤 지나면 커있고, 두 밤 지나면 새로운 능력을 얻는 아기를 보면서 표현 못 할 황홀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기상 알람을 맞췄다.
드는 생각이 많아, 쉬이 잠 못 드는 육아휴직의 마지막 날 밤. 돌려보고 싶은 사진과 영상이 수천 장이다. 사진과 영상만 봐도 행복에 겹지만, 그러나 사실은, 수천 장의 사진과 영상에도 담아내지 못할 만큼 찐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
숱한 사진과 영상을 뒤로하고 이제는 내일을 위해 잠을 자보려 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곳에 가기 위해 잠을 일찍 청하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이제는 조절해가며 써야 할 나의 시간들. 그동안은 나의 24시간을 아기에게 내어줄 수 있어 행복했다. '묶여있다' 생각해 갑갑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나 보니 나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나밖에 모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기분 좋은 책임감이 넘쳐났다.
이제 나의 작은 딸아이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나의 '쓸모'를 찾으러 갈 시간이다. 그리고 그 쓸모를 키워야 할 시간이 왔다.
스위치를 껐다 켜는 것처럼 간단할 리 있겠냐마는,
당분간은 9개월 동안 채운 찐한 행복을 자양분 삼아 '일하는 나'도 잘 작동시켜볼 생각이다.
나의 에너지를 뚝 떼어 뺏어서 일터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원동력 삼아 곱절로 키워낸 에너지를 나눠 쓰게 되는 것이라면 좋겠다.
주절주절 길게도 썼는데 그냥 오늘 밤 이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다. 수고했다, 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