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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Mar 17. 2021

와인바

2021. 3. 18


  언젠가는 작은 와인바를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오래전부터 엇비슷한 계획을 품고는 있었지만, 최근 들어  계획에 살이 붙고 색이 입혀져  그럴듯한 꿈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좁은 평수의 아담한 공간을 구해 사각형의 목조 테이블을 서너  정도만 놓아두고, 나와 가까이 마주 앉아 술과 음식을 즐길  있는, 기다란  형태의 자리에 조금  많은 비중을  생각이다. 애초에 내가 와인바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이유도, 낯선 이들이 취기를 빌려  앞에 진솔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내놓을  있는 대화의 장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부터 파생되었으니까. 누군가의 진심을 듣고 그에 알맞은 대답을 내어주는 일은 언제나 눈물겹지 않나. 그중에서도 굳이 와인바를 택한 이유는 순전히 내가 평소 와인을 즐기기 때문이다. 비교적 다른 주종에 비해 ‘사랑이라는 단어와 가장 닮아있기도 하고.  싱겁다 여길 수도 있을 만큼 시시한 이유지만 정말 그뿐이다.  

  나는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탄다. 그렇다고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편은 아니다. 기분을 환기한다는 핑계로 누군가와의 잦은 약속을 잡는 일을 삼간다는 말이다. 괜한 감정 소모는 자칫 나름의 균형을  잡고 있던  외로움에 커다란 균열을 야기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와인바를 운영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원하건 원치 않건 손님을 계속해서 받아야만 하는 일이 조금은 강제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끊이지 않는 인적이 나를  지긋지긋한 슬픔에서 완벽히 구원해주리라는 믿음이  확고한 탓이다.

  내친김에 가게 전체의 인테리어에 대해서도 머릿속으로 선명히 그려보곤 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가구들을 주축으로, 그에 맞는 여러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싶다. 평소 아끼는 턴테이블을 내가 요리를 하고 술을 다루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곳에 놓아두고, 사랑하는 음악들로만 가득한 LP판을 올려두고 싶다. Emily Watts 버전의 ‘La Vie En Rose’ Frank Sinatra ‘Fly Me To The Moon’. 그리고 Bill Evans ‘Midnight Mood’ 같은 우아한 재즈 음악을 진종일 틀어둬야지. 재즈에 문외한이고 어차피 목숨  애호가는 아니기 때문에  가게를 찾아  손님이 어떠한 음악을 추천해주고, 나에게도  음악이  멋지게 들린다면 언제든  음반을 구해 턴테이블 위에 올려  의향이 있다. 그게 재즈가 아니더라도 아무렴 상관없다. 나와 음악적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의 만남은  나에게 들뜬 마음을 선사하니까. 그중에서도 ‘검정치마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이와 마주할 때면, 심장부에서부터 멎지 않을 것만 같은 전율이 번뜩이기도 한다.

   이외의 직원은 따로 두지 않을 생각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는 명소가 되기를 조금도 바라지 않고 있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렇다고 눈코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소위 핫플레이스 같은 분위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가게를 찾아준 손님들과 편안한 시간 속에서 잔잔히 서로의 삶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많은 부를 누리겠다는 욕심 탓에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기억할  있는 소중한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는 내가 와인바를 차리고자 하는 꿈을 갖게끔  이유에도 크게 어긋나는 일이기에. 조금은 힘에 부칠지라도  혼자서 소소하게 오랫동안 꾸려갈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거다.  

  메인 메뉴로는 그나마 자신 있는 명란 파스타를 앞세우고, 차차  많은 요리를 연구해 메뉴에 추가시켜야지.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앞에 두고,  사람의 하루를 조용히 들어주다 이따금 나의 하루 또한  위에 슬쩍 올려놓는 . 누군가의 사랑을, 이별을,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 정말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한껏 행복해지는 장면이다. 물론 글쓰기를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언젠가 내가 차리게   와인바가 나와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을 편하게 이어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내가 글과  속에만 사는 희미한 존재가 아니라, 단골 식당의 사장님이나 친한 친구처럼 언제든 찾았을  웃으며 반겨줄  있는 다정하고 선명한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내가 이곳에 매번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처럼, 당신도 내킬  그곳의 나를 찾아와 당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있게끔.


  맛있는 명란 파스타와 조금은 드라이한 레드 와인,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멋진 재즈와 목조 가구에서 풍기는 특유의 부드러운 향까지.  완벽한 배경들 위로 우리의 지극히도 평범한  속의 특별한 이야기들이 새벽녘 아무도 몰래 내린  눈처럼 소복하게 쌓일  있기를. 하루빨리 그런 날에   발을 디딜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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