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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Oct 19. 2021

나는 당신과 노는 게 제일 좋아요.

나는 당신과 노는  제일 좋아요. 그러니까 우리 자주 만나요. 눈이 오거나 비가  , 날이  좋거나 달이 예쁜 밤에. 별의별 핑계를 전부 긁어모아서라도 틈만 나면 만나서 같이 놀아요. 커피를 마셔도 좋고,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고 술을 같이 마셔도 좋겠어요. 당신과 함께 하는 거라면 어느 하나 즐겁지 않은  없을 테니까. 당신이 만약 우리 집에 불쑥 놀러  주기라도 한다면 맛있는 명란 파스타도 대접할게요. 레시피 없이도 만들  있는 유일한 요리인데 맛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라서요. 직접 만든 유자청을 양껏 넣은 향긋한 유자차도  잔씩 나눠 마셔요. 그것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몹시 완벽한 하루가  것만 같습니다.

우리 둘 사이에 뿌리내린 사랑의 몸집을 끝도 없이 키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저 자주 만나서 시답잖은 내용과 퍽 심오한 내용이 고루고루 잘 섞인 대화를 나누고, 서로가 좋아하는 색깔이나 가슴속에 하나씩은 필히 품고 있을 가장 아끼는 음악,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계절과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입 안 가득 머물 수 있었던 꽃의 이름 정도만 나누고 선명히 외운다면, 우리가 심은 사랑은 금방 이파리를 틔우고 하얀 꽃을 건너 아주 탐스럽고 달큼한 열매로 영글고 말 거예요.

언제 내가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냥 나는 남들보다 조금 걱정이 많다고. 그래서 꽤 자주 혼란스러워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넘칠 만큼 차오른 슬픔이나 고통 같은 악한 것들을 당신의 발치에 흘려버릴 수도 있다고 말이에요. 아직도 자칫 방심할 때면 호흡이 어려울 만큼 깊숙한 우울함에 잠겨 버리기 일쑤인데요. 그래도 꼭 구원인 것만 같은 당신 생각 한 번이면 온몸이 비늘로 덮이고 지느러미가 생기다가 끝끝내 스스로 넓은 아가미까지 만들어 내서는, 칠흑처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울 속에서도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한낱 모양만 그럴싸한 사랑인 줄 알았던 당신이, 실은 귀한 호흡이자 생명이며 동시에 다신 없을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머리맡에 무심코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가까운 날의 밤부터 눈이 올 수도 있다는 DJ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가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좋은 핑계가 생길 수도 있겠어요. 그러는 저는 그 밤이 전부 하얗게 뒤덮이기 전에 늦지 않도록 단골 미용실에 들러 머리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당신이 좋아할 법한 연보라색 스웨터도 한 장 사둬야겠습니다. 여유가 조금 남는다면 퍽 수수한 디자인의 안경도 하나 장만해볼까 해요. 진한 갈색의 뿔테 안경이라면 좋겠는데요. 안경을 쓰고서 멋쩍은 듯이 인사하는 내 모습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선한 인상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간 얼마를 만났고 또 서로를 얼마나 섬세히 알고 있건,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는 손톱만큼의 변함도 없으니까요. 지금도 여전히 당신 앞에 서야만 할 때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되어 온몸을 배배 꼬기에 바쁜 순간을 지나 보내야만 합니다. 그러고는 퍽퍽한 호밀빵 같은 것에 목이 막힌 사람처럼 먹먹한 목소리를 세게 쥐어 짜내며 이렇게 말하기도 하겠죠.

 

많이 좋아해. 나는 언제나 너랑 함께 노는 게 제일 좋아.


그러니까 우리 자주 봐요. 그래야 정이란 것도 펑펑 쌓일 테니까요. 이왕이면 당신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이 들어서, 갈라서려야 그럴 수 없는 끈끈한 사이가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만나서 오래도록 웃고 떠드는 게 좋겠어요. 부디 이런 나의 적극적인 사랑이 당신에게 큰 부담으로 가닿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찰나의 순간에 당신과 나의 잔뜩 해져있던 낡은 마음이 자취를 감추게 되기를. 또한, 그 공을 당연한 듯 서로에게 돌리며 고마운 마음을 쉴 새 없이 전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랑이 되기를.

괜찮다면 우리 오늘은 와인이라도 마실까요. 당신 취한 모습이 유난히 예쁘기도 해서요. 당신이 좋아하는 감자칩도 종류별로 여러 개 준비해놓았어요. 적당히 얼굴이 붉어지면 우리 멀끔히 씻고는 같이 누워요. 서로의 살갗이 보드랍게 마찰하면 그날 밤은 깊은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자주 만나요.

틈날 때마다 만나서 지겹도록 세게 껴안아 보기도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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