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무엇이든 쉽게 놓는 사람이었다. 떠나가는 사람이었다. 정말 좋아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 박동이 바로 귓전에서 울려 퍼질 만큼 흥분되어 시작했다 한들, 왠지 모르게 나를 쿡쿡 쑤셔댄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도망치듯 그로부터 빠르게 멀어졌다. 들킨 도둑처럼 허둥지둥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때로는 깊은 사랑으로, 또 때로는 끝끝내 당도하고 싶은 꿈으로 내게 왔다.
나를 필요 이상으로 들뜨게 하는 것의 전율은 늘 찰나에 불과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한계에 봉착했다. 그 차갑고 둔중한 벽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이곤 했다. 나의 미족한 능력을 탓하고, 더 끓어오르지 못한 채 짜게 식어버린 헤픈 감정을 탓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사랑과 일과 꿈과의 이별을 맞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그 행위는 꽤나 반사적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길고양이처럼, 흐트러진 물살 사이로 빠르게 헤엄쳐 사라지는 송사리 떼처럼. ‘이제는 정말 그만둬야 하는 걸까?’라는 자문을 채 던지기도 전에 꽉 쥔 손의 힘을 전부 풀어버렸다. 참으로 멋없는 헤어짐이 판을 쳤던 지난날들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끝없는 이사와 전학으로 인해 늘 타인에게 있어 낯선 사람이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눈동자와 머리칼의 색이 다르지 않은 가난한 이방인. 언제든 떠나간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아주 잠깐 친구였던, 그저 낯가림이 심한 옆집의 남자아이였던 존재. 아버지의 잦은 이직과 친형의 중고등학교 진학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의 나에게는 내가 힘겹게 정을 붙인 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 말할 선택권이랄 게 없었다. 무언가 시작되기도 전에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그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말고는 정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따금 부모님을 향한 원망이 속 깊은 곳에서 복닥복닥 호흡하기도 했지만, 그 불건전한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죽였다. 부모님 또한 나의 한 번뿐인 어린 시절에 훼방을 놓고 싶어 했을 리 만무했고, 눈물을 머금은 채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였던 것뿐일 테니까. 더불어 그들이 내게 무한히 건넨 사랑은 가히 초월적이라 해도 무방한 것이었으니까. 고작 자신의 자그마한 불만 탓에 선한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결코 자식 된 도리가 아니지 않나. 그러나 그 갈 곳 잃은 불만은 그대로 걸음을 돌려 끝이 뾰족한 자책으로 변모했다. 나는 수시로 날카롭고도 불친절한 그것에 푹푹 찔렸다. 저 멀리 등 뒤로 유기하듯 무책임하게 놓고 온 일이나, 더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일과 마주하게 될 때면 늘 나 자신을 원망하고 무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뭐가 이렇게 가벼운 걸까, 왜 자꾸 훨훨 잘 날기만 하는 연을 자진해서 끊어버리고야 마는 걸까, 라고 생각하면서.
어른이 되고서도 그 지질한 버릇을 멈추지 못했다. 세월을 역행하는 철없음으로 매번 내 능력 밖의 일을 겁내면서도 동시에 동경했다. 내 속에서 약간의 희망 같은 꽃들이 피기도 전에 꺾이기를 반복했다. 하다못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용기를 꺼내 들지도 않고 쉽게 놓아준 것들을 가리켜, ‘그래도 낭만’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을 수 있다는 보편적인 법칙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한 번 펼쳐지지도 못한 채 버려진 책과도 같았다. 어딘가 근사한 말과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도 있을 만큼의 잠재력을 품은 채로 파랗게 죽어가고 있었다.
반쪽짜리 영혼을 허리춤에 차고 용케도 살아내는 날들이 실없이 이어졌다. 더는 무언가에 몰두하지도, 새로운 사랑이나 일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삶은 영 시시했다. 자기 것이 뚜렷한 성인이 되고자 했던 열망도 온데간데없고, 내가 그간 어떠한 일에 쏟아부었던 순수한 열정까지도 헛된 일로 치부되는 순간이 허다했다. 물론 주동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비겁하고 극단적인 자책이었다. 스스로를 조금도 포용하지 않은 어리석음이자 악행이었다. 그렇게 주야장천 허송세월 흘려보내던 중, 나는 해봐야 고작 서너 줄 정도 되는 문장 하나를 아주 우연히(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꼭 필연 같기도 했다) 마주했다. 그리고 그 문장은 삽시간에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완벽하게 바꿔놓았다. 더불어 깨달음의 묘미에서 오는 생명력 강한 기쁨을 알게끔 했다. 그 명문은 영국의 역사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아놀드 J. 토인비에 의해 쓰인 것이었고, 문장의 전문은 이러했다.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목표가 아니라 그 너머의 더 야심찬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점은 역설적이지만 참되고 중요한 인생의 원칙이다.’
이후로 나는 상투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다. 이 문장을 등에 업고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기존에 내가 지녔던 구닥다리 관념에 또다시 걸려 넘어지지 말라고 나 자신에게 누차 강조했다. 그런 날들이 무탈하게 지속되고 새로운 습관이 몸 깊숙이 배기 시작하자, 나는 이전에 저질렀던 실수들에 대해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축축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건조한 삶이 드디어 한 방울씩은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일 앞에서 한숨 돌릴 줄 아는 법을 배웠다. 더 끓어오르지 못한 채 짜게 식어버린 헤픈 감정은 결코 헤픈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았기에, 잠깐의 쉼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단지 그간에 자신을 불살라가며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드리운 휴양지라고. 한계에 부딪힌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해야만 하는 일은 모두 끝냈으니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재정비를 하는 거라고. 사랑이건 일이건 최선을 다해 그에 임했다면 당연히 ‘잠시 멈춤’이라는 안내 표지판을 맞닥뜨리기 마련이고, 그것은 곧 내게 있어 성장의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고.
이렇듯 우리는 모두가 완성된 존재일 수 없기에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한다.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단 한 가지뿐이거나 한 가지가 아니라도 좋다. 지나치게 고집스러워 보이거나 사방팔방 흩어져 다소 산만해 보인대도 다 괜찮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어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타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아냥거림은 어차피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소멸해 버린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모퉁이에 단단한 각오만 걸어둘 수 있다면, 그 길에서 필시 마주하고야 말 고통과 권태를 나의 탓으로 돌리지 않을 자신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삶에 정답이란 없다는 뻔한 말은 사실 절대로 뻔한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우리는 모두가 다 다르게 나아가고 있고, 그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공식적으로 틀린 방향이라 표기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제야 언젠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에게 스치듯 해줬던 말의 온기를 보다 가득히 느낄 수 있게 됐다. 그것은 전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뜻이었고,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뜻이었고, 나의 휘청거림에 누구보다 커다랗게 동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네 마음이 제일 중요해. 그러니 돈 못 벌어도 괜찮고 가난해도 좋으니까, 네가 그 일을 하면서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아프다면 기꺼이 꽉 쥔 손에 힘을 풀어도 돼.”
“내가 대학 시절 교내 학보사 편집 국장직을 맡으면서부터 글쓰기에 대한 꿈을 키워왔었어. 물론 지금은 그 근처에도 가닿지 못한 모습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내가 그토록 원했던 길을 이렇게 네가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해. 대견하면서도 슬프단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잦은 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아빠는 이렇게 옆에서 아무 조건도 없이 응원만 하고 있을게. 쭉쭉 나아가게 해달라고, 그리고 조금은 덜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내게 해준 말의 분위기는 서로가 퍽 달랐지만, 말하고자 하는 요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어머니가 바란 나의 평안과 아버지가 바란 나의 순항은 전부 나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들이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는 다정이었다. 그들은 나의 행복이 그 무엇보다 우선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주눅 든 나의 얼굴을 보며 그들은 얼마나 큰 진동을 느꼈을까. 얼마큼이나 소스라치게 무너지고 있었을까.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시근머리 없는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게 어느 곳이든 나는 듯이 갈 수 있다. 숨이 찬다면 근처의 튼튼한 나뭇가지를 찾아 잠시 앉아 쉬기도 하면서, 마음이 멍울진다면 멈춰선 채 천천히 문지를 줄도 아는 여유를 가지고서, 그 길이 내리막길이라 한들 망설이지 않고 썰매 위에 오를 수도 있는 용기를 가지고서. 나도, 당신도 이렇듯 각자의 길 위를 지금처럼 개성 있게 거닐면 된다.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땔감으로 삼고서 내내 정다운 걸음을 내디디면 된다. 앞서 말했듯 틀린 길은 없고, 우리는 모두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
모두가 그럴듯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